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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의 퍼스펙티브] 2030 “트럼프는 싫지만 미국은 좋아”

중앙일보 2017.08.17 01:00 종합 26면 지면보기
한국인의 대미 인식
전 세계가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비판으로 들끓던 2003년. 한국의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석상에서 이렇게 발언한다. “동맹관계를 존중하고 또 오랫동안의 우호 관계와 미래의 우호 관계를 고려해 미국에 대한 지지 의사와 지원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것이 우리로서는 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 여러 가지 비판적 의견과 반대 여론이 있고 또 그것은 나름대로 명분을 갖추고 있는 것이나, 이 문제는 역시 국익이라는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는 트럼프 이후 미국 비호감
반면 한국의 대미 호감도는 높아
트럼프 리더십 비판하면서도
미국을 실용적 측면에서 좋아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이후
젊은 층의 대미 호감 지속돼
한편에서는 평화를 추구하면서
현실의 제약을 고려했기 때문

 
선거운동 과정에서 강렬한 반미주의 수사를 숨기지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일 년 만에 고뇌에 찬 실용적 동맹정책을 선택했다. 이어서 노 대통령은 국군 비전투병 3000명을 이라크에 보내는 결정을 내렸다.
 
한반도에 군사적 위기가 수십 년 만에 최고조에 달한 요즘, 평화를 지키기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의 무게는 몇 달씩 파병을 고민했던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도 쉽사리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무거울 것이다. 문 대통령의 고뇌는 당장 눈앞에 닥친 생(평화)과 사(전쟁)의 문제다. 수천㎞ 떨어진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글로벌 테러 전쟁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생사의 문제다.
 
문 대통령은 ‘지금 여기’에서 한반도 평화를 견지해 나가는 데에 두 개의 거울을 비춰볼 수 있다. 하나는 역사의 거울. 문 대통령이 십여 년 전 청와대에서 매일매일 지켜보던 노무현 대통령의 실용주의 고뇌를 오늘의 현실에 비춰보는 것이다. 평화를 지키는 데에 그때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라졌는가? 또 하나의 거울은 시민들의 여론의 거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팽팽히 맞선 파병 찬성론과 반대론 사이에서 고뇌해야 했지만, 지금의 여론 구조는 분열보다는 하나의 구심력이 뚜렷하게 작용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의 수많은 여론조사는 다수 시민들이 미국의 일방주의와 힘의 외교를 비판하면서도 우리의 안정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결국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보는 실용적 태도를 일관되고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협력할 상대는 미국
 
역사와 여론의 거울을 비춰볼 첫 번째 대상은 2003년이나 지금이나 전 세계의 흐름을 좌우하는 미국의 역할이다. 백악관에 어떤 인물이 앉아 있는가에 따라서 여전히 전 세계의 경제·평화·안보는 출렁거린다. 특히나 핵무기 개발에 올인해 온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의 고민을 떠안게 된 일차적 뿌리도 글로벌 질서를 좌우하는 백악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은 급격히 공세적 일방주의로 기울고 있었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구촌 모든 나라는 미국 편이 아니면 테러리스트의 편이라는 간단한 이분법을 전 세계에 강요하고 나섰고, 이라크 침공 전쟁에 대한 지원 여부는 간편한 이분법의 잣대가 되었다.
 
일방주의로 무장한 미국 부시 행정부의 테러 전쟁에 대한 전 세계의 여론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인 영국·독일·프랑스에서도 미국 외교에 대한 지지와 호감도는 거의 반 토막으로 추락했다. 이 무렵 한국 사회의 여론 역시 전 세계적 대미 비판 여론과 맥을 같이했다. ‘미국에 대해 호감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긍정 대답은 이전의 70% 수준에서 50%로 하락했고 이 같은 싸늘한 시선은 이슬람 국가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한동안 평온하던 세계와 미국의 관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돌변했다. 경제적으로 몰락하고 있는 미국 산업노동자 계층과 중산층의 분노를 기반으로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닥치는 대로 구사하기 시작했다. 무슬림 국가 시민들의 미국 여행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이 행정명령은 연방법원 판사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이 내려지는가 하면 멕시코와의 국경에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한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 건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회복시켜 놓은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트럼프 행정부 이후 다시금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그래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통적 우방인 영국·프랑스·독일의 대미 호감도는 다시 50% 아래로 떨어졌다. 또한 미국의 뒷마당이라는 멕시코와 브라질의 대미 호감도 역시 각각 47%, 50%로 떨어졌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한국의 시민들이 이들 국가의 대미 호감도의 급격한 후퇴와는 대조적으로 75%라는 높은 대미 호감도를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에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3년 전 세계적 대미 비판 여론에 동참했던 한국의 시민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제일주의 이후에도 높은 대미 호감도를 유지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 비밀은 지금 우리 시민들이 드러내는 대미 호감은 이중적이면서도 실용적이라는 데에 있다. 첫째 한국의 시민들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우리 시민들의 신뢰도는 17%에 불과하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88%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갖췄다고 보는 한국 시민은 겨우 18%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보통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있다고 보는 비율은 고작 19%다. 그의 리더십 스타일을 위험스럽다고 보고 있고(76%)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과의 관계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보는 비율이 거의 절반에 가깝다(43%). 그럼에도 우리 시민들은 압도적으로 미국에 대한 호감을 유지하고 있고(75%, 이상 퓨리서치센터 2017년 6월 조사), 우리가 협력해야 할 국가는 중국(22%)보다 미국(67%)이라고 믿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아산정책연구원 2017년 6월 조사)
 
달리 말해 지금의 시민들의 이중적 대미관은 10여 년 전 한·미 관계와 국익을 고뇌하던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과 꽤 닮아 있는 셈이다.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 힘과 대결을 앞세우는 리더십을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대미관은 과거 냉전시대의 맹목적 친미주의와 구분된다. 또 북한을 포함한 사회주의 세계와의 대결을 위해서 불평등한 한·미 관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유·인권 등의 가치를 쉽사리 외면하던 냉전 친미주의와도 구분되는 실용적 사고가 우호적 대미관의 핵심이다.
 
젊은 층, 실용적 대미관 유지
 
지금의 이중적이고 실용적인 대미관을 주도하는 층은 냉전 친미주의에 기울어 있는 60~70대도 아니고, 냉전 반공주의에 맞서 싸워온 40~50대도 아닌 20~30대 젊은 층이다.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중국(13%)보다는 미국과의 협력(74%)을 압도적으로 중시하는 60대 이상의 기성세대는 사실 미국적 사고가 우리 사회에 수용되는 것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47%). 반면에 18~29세의 청년층은 중국(22%)보다 미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67%)고 느끼는 점에서 60대 이상 기성세대와 인식을 공유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는 미국적 사고가 우리 사회에 수용되는 것에 적극적인 지지(69%)를 보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시민들이 미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중대한 배경은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이다. 최근 북한 핵 능력이 날로 고도화되면서 위협 의식이 엄청나게 고조되고 있지만 수많은 여론조사의 자료를 종합해서 보면 북한으로부터의 위협 의식과 대미 협력 의사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였다. 2010년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이후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심대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 북한을 협력과 지원의 대상으로 보는 칸트(Kant)적 시선이 눈에 띄게 위축되고, 경계와 위협의 대상으로 보는 홉스(Hobbes)적 시각은 현저히 늘어나고 있다.
 
지금의 이중적이고도 현실주의적인 대미 협력관은 그저 단지 스쳐 지나가는 여론의 파도 조각이라고 보기 어렵다. 2010년 이후 같은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지속성을 갖추고 있고 또한 우리 사회의 미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큰 의식의 흐름이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정책의 핵심 축의 하나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집합적 판단이다. 이때 긴요한 것은 시민들이 보내는 신호와 소음을 구분하는 것이다. 오른쪽에서는 냉전 반공주의에 뿌리를 둔 맹목적 친미주의가 소음을 내고 있다면 왼쪽에서는 대북 유화책을 여전히 고집하는 세력의 소음이 간단치 않다. 하지만 적잖은 소음에도 불구하고 다수 시민들의 집합 의사는 안정적이고도 일관되게 실용적 대미관으로 집약되고 있다. 실용적이고도 이중적인 대미관이란 결국 평화 추구라는 목표와 우리 현실의 제약을 함께 고려하면서 보통 시민들이 고통스럽게 빚어낸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절충적이고도 실용적인 대미 정책을 추진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 역시 혜안보다는 용기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장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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