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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암살 전 스위스 망명 원했다" 국제학교 친구 증언 나와

중앙일보 2017.08.15 16:25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암살되기 전 유럽의 스위스로 망명을 원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영국 BBC가 14일(현지시간) 방영한 다큐멘터리 ‘북한-가족 내(內)살인'에 김정남이 다녔던 스위스 제네바 국제학교의 친구들이 출연했다. 김정남은 13세이던 1983년 러시아 모스크바의 프랑스어 특수학교를 거쳐 제네바에서 수학하며 서방의 문화를 접했다.

BBC '북한-가족 내 살인' 다큐멘터리 방영, 김정남 암살 추적
스위스 국제학교 친구들 "3일 후 제네바서 보자는 문자메시지 받아"
"두려워할 것 없는 곳으로 오려 해" "특히 스위스가 안전하다고 느껴"
'리'로 불린 김정남, 15세에 운전면허증 갖고 카메라 촬영이 취미
암살 당시 공항에 동남아 여성 2명 외에 북 공작원들도 CCTV에 찍혀

김정남(왼쪽)과 스위스 국제학교 친구인 앤서니 사하키안. [BBC 캡쳐]

김정남(왼쪽)과 스위스 국제학교 친구인 앤서니 사하키안. [BBC 캡쳐]

 김정남의 친구인 미샤 아스나부르는 “김정남이 ‘3일 후에 제네바로 돌아갈 테니 거기서 만나자’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며 “그는 마치 두려워할 게 없고 생각해야 할 것도 없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제네바로 오려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BBC는 이 연락이 암살되기 얼마 전에 취해졌으며, 김정남이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유럽으로 망명해 유럽 시민권을 따려고 했다고 보도했다.
김정남의 스위스 국제학교 친구인 미샤 아스나부르. 그는 김정남이 살해되기 얼마전 제네바에서 만나자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BBC 캡쳐]

김정남의 스위스 국제학교 친구인 미샤 아스나부르. 그는 김정남이 살해되기 얼마전 제네바에서 만나자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BBC 캡쳐]

 또 다른 국제학교 친구인 앤서니 사하키안은 “김정남이 유럽을 방문할 때면 경계심을 내려놓곤 했다"며 “그는 특히 스위스에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사하키안은 “김정남이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가 없었다면 유럽으로 이주하는 걸 얘기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정남은 유학 등으로 서방에 친숙함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BBC 캡쳐]

김정남은 유학 등으로 서방에 친숙함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BBC 캡쳐]

 이들은 김정남과의 학창 시절 기억도 소개했다. 아스나부르는 “학교에서 처음 만난 게 15살 정도였는데 당시 우리는 그가 김정일의 아들인지도 몰랐고 심지어 한국인인지도 몰랐다"며 “그런 것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하키안은 “당시 우리는 그를 ‘리'라고 불렀는데 그가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소개해서였다"며 “15살인데도 운전면허증을 갖고 있어 모두 그를 부러워했다"고 전했다. 아스나부르는 “김정남은 카메라를 항상 학교에 들고와서 모두를 찍곤 했다"며 “당시에 개인 카메라를 갖고 있는 건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BBC는 김정남이 암살된 공항 현장에 독극물을 얼굴 등에 바른 인도네시아인 시타 아이샤(25)와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29) 등 두 여성 외에 북한 공작원들이 함께 있었음이 CCTV를 통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김정남이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독극물 공격을 받은 후 공항 의무실로 들어가자 한 남성이 이를 지켜보며 지나가고 있다. 그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됐다. [BBC 캡쳐]

김정남이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독극물 공격을 받은 후 공항 의무실로 들어가자 한 남성이 이를 지켜보며 지나가고 있다. 그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됐다. [BBC 캡쳐]

 김정남이 출국장에 들어서기 전 회색 티셔츠를 입은 남성이 카페 앞에서 기다리다 김정남이 체크인을 위해 이동하자 자리를 옮기는 장면이 포착됐다. 김정남에게 두 여성이 독극물 공격을 가한 장소 주변에도 여행 가방을 든 남성이 서 있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김정남이 독극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공항내 의무소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한 남성이 여행 가방을 끌며 해당 장소를 지나가며 김정남을 바라보는 장면도 고스란히 CCTV에 잡혔다.
 BBC에 출연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암살 테러가 실패할 경우 외교적인 문제만 일으키게 되므로 두 여성이 실패할 경우 김정남을 확실히 살해하기 위해 공작원들은 현장에 배치시켰을 것으로 분석했다. 신경가스제인 VX로 인해 김정남이 숨지게 될 것임을 공항에서 확인한 이후 이들이 일제히 다른 항공편으로 공항을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우호 관계를 유지해온 말레이시아와의 외교 관계 단절 가능성까지 무릅쓰면서 김정남 암살에 나선 것은 김정남의 유럽 망명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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