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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다시 재연된 ‘건국절’ 논란…2000년대 들어 보수ㆍ진보 전쟁터 그러나 당대엔 김구 선생도 ‘건국’

중앙일보 2017.08.15 15:37
 
문재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며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1919년 임시정부 수립 때로 본 거다. 

문 대통령, 경축사 통해 '2019년은 건국 100주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1945년 건국
보수·진보 간 건국절 논란은 2000년대적 현상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두고 "건국 50년"
1948년엔 건국 앞섰으나 '대한민국 30년'이란 표현도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이어 “국민주권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보수·진보의 구분이 무의미했듯 우리 근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세력으로 나누는 것도 이제 뛰어넘어야 한다”며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 김대중·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곤 “보수나 진보 또는 정파의 시각을 넘어 새로운 100년의 준비에 동참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이날 발언으로 문 대통령 스스로 보수·진보 논쟁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 셈이 됐다. 2000년대 들어 양 진영은 건국 시점을 두고 ‘1919년’(진보), ‘1945년’(보수)로 충돌해왔다.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은 15일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조문규 기자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은 15일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조문규 기자

당장 문 대통령의 발언 직후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이 조목조목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류 위원장은 “국가가 성립하려면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듯 국민·영토·주권이 있어야 한다”며 “그 기준에서 대한민국의 1948년 건국은 자명한 일이고,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19대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하는데 1948년 취임한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초대라고 인정하면서 1919년을 건국한 해라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임시정부 시절에 대통령 2명(이승만·박은식)을 포함, 정부 수반만 22명이었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사실 ‘건국절’ 이념 논란은 2000년대적 현상이다. 김대중(DJ) 대통령 무렵만 해도 1945년 건국이란 데 이론이 없었다. DJ는 해방 53년,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은 1998년 8·15 때 제2 건국을 선언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와중이라 “건국한 지 50년도 안 지나 국난을 맞았다”고 토로하곤 했다. 그해 한국은행은 ‘대한민국 50년 기념 주화’를 발행했다.
그러다 현대사를 중심으로 진보 사학계가 목소리를 키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교육계에서 역사교과서 논쟁이 벌어졌다면 정치권에선 건국절 논란이 일었다. 이명박 대통령 첫해인 2008년 8·15 때 ‘63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0주년’ 기념식이라고 했더니 진보 진영 인사들이 외면했다. 기념식은 반쪽으로 진행됐다. 이후 이념의 전쟁터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이라고 규정하자 당시 야당이 들고 일어났다. 문 대통령은 당시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얼빠진 주장”이라고 했다.

당대엔 어떠했을까.
1948년 5월 31일 서울 세종로중앙청 회의실에서 이승만 당시 의장(가운데)이 제헌국회 개원사를 하고 있다. 총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은 한 달 반 뒤인 7월 17일 제헌 헌법을 공포했다. 아래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전시된 제헌헌법 전문 조형물. [중앙포토]

1948년 5월 31일 서울 세종로중앙청 회의실에서 이승만 당시 의장(가운데)이 제헌국회 개원사를 하고 있다. 총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은 한 달 반 뒤인 7월 17일 제헌 헌법을 공포했다. 아래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전시된 제헌헌법 전문 조형물. [중앙포토]

이승만 대통령 자신은 1948년 8·15 경축사에서 “금년 8·15는 해방기념 외 새로 대한민국의 탄생을 겸하여 경축하는 날이니 우리 3000만에게 가장 의미 있는 날”이라고 했다. 김구 선생은 48년 3월 1일 ‘良心建國(양심건국)’이란 글귀를 남겼다. 그에 앞선 46년엔 ‘건국실천원양성소’로 세우겠다고 한다. 건국 과정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쓴 글귀

백범 김구 선생이 쓴 글귀

48년 제헌의회에서 정부 수립 즈음에 ‘북한 동포에 고함’이란 선언을 했는데 거기엔 ‘북한 동포들이 우리와 같이 인구의 비율로 대표를 선출하여 우리와 더부러 일당에 모여서 건국대업에 참여 못하게 된 것은 지극히 유감’이란 표현이 담겼다.
다만 당시 논란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 자신도 그해 7월 24일 취임식에서 ‘대한민국 30년 7월 24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이라고 했다. 국회에선 연호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단기(檀紀·단군기원·48년의 경우 4281년)와 ‘대한민국 30년’을 병기해야 한다고 주장을 두고서다. 모두 임시정부의 독립 운동을 평가해야 한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결국 단기만 쓰기로 의결했다.
고정애·유성운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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