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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11) “청춘들아, 틈만 나면 살아라~”

중앙일보 2017.08.15 12:00
제비꽃의 맷돌구멍살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금새 다른 풀들에 자리를 내어주고 떠났다. 한 달이 채 안가니 사글세도 이런 사글세가 없다. [사진 조민호]

제비꽃의 맷돌구멍살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금새 다른 풀들에 자리를 내어주고 떠났다. 한 달이 채 안가니 사글세도 이런 사글세가 없다. [사진 조민호]

 
포월침두 마당에 조경용 맷돌이 깔렸다. 중국에서 건너온 맷돌인데 아랫돌 윗돌이 무작위로 깔렸다. 윗돌엔 알곡을 넣던 구멍이 뚫려 있어서 그 구멍마다 작은 생명이 하나씩 자리 잡고 있다. 한 구멍엔 제비꽃, 다른 구멍엔 민들레, 또 다른 구멍엔 그냥 이름 모를 잡초~ 마당에 핀 잡초들은 비 오고 난 다음 땅이 촉촉해진 틈을 타 호미로 일일이 뽑아내는데 이놈들은 그냥 둔다. 차마 뽑을 수가 없다.

금방 닫힐 듯한 좁은 틈에서 사는 젊은이들
언제 호황 와 번듯한 일자리 구할 수 있을까

 
‘틈만 나면 살고 싶다’  
 
올 4월에 막 나온 따끈따끈한 책의 제목이다. 조그만 틈만 보여도 그 틈에 뿌리내려 살아야 하는, 그러나 그 작은 틈조차 잘 보이지 않는 눈물 나는 인생들에 관한 서늘한 이야기다. 때밀이, 경마장 신문팔이, 엘리베이터 걸, 가짜 환자 알바, 야한 소설 작가, 벨보이 등등.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 싶지만, 기회가 열리지 않아 허기보다 창피함을 택한 이들의 이야기. 갈라진 보도블록 틈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풀꽃을 보며 자신의 인생을 투영하는 사람들, 특히 청년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로 엮어 놓은 책이다.
 
 
첫 직장은 진공관 파는 가게  
 
나도 그 틈에 자리 잡아 본 적이 있다. 군에서 제대하니 취직 시즌이 아니었다. 취직 시즌까지 몇 달의 틈이 있었는데 마냥 빈둥거릴 수 없어 세운상가에서 진공관을 파는 가게의 점원이라는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2평 남짓한 가게를 사장과 나 두 사람이 지켰다. 카투사 출신인 내게 주어진 일은 진공관을 수입하는 일이었다. 
 
술자리 영어야 자신 있었지만 무역영어는 재학 시절, 총을 맞은 과목이어서 외국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가슴에 총 구멍이 뻥뻥 뚫렸다.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게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세운상가의 벌집같은 미로 속에서 서서히 옅어져 갔고, 자주 비좁은 벽 사이의 틈에 끼어 오도가도 못하는 악몽을 꾸곤 했다. 호황의 시대가 나를 구해줄 때까지.
 
 
거창에서 가까운 대구 책방 투어 나간 길에 샀다. 제목이 마치 나한테 “은퇴? 괜찮아~ 틈만 나면 살면 돼~” 하는 것 같아 집었다. 읽는 내내 많이 슬펐다. [사진 조민호] **필자 제공 사진입니다. 재사용 금지!!!**

거창에서 가까운 대구 책방 투어 나간 길에 샀다. 제목이 마치 나한테 “은퇴? 괜찮아~ 틈만 나면 살면 돼~” 하는 것 같아 집었다. 읽는 내내 많이 슬펐다. [사진 조민호] **필자 제공 사진입니다. 재사용 금지!!!**

 
책을 읽으며 앞날이 보이지 않던 그때 생각이 나 마음이 불편했고, 좁기도 하지만 언제 닫힐지 모르는 그 틈에서 어렵게 살아 가는 내 작은딸을 비롯한 요즘의 청춘들이 생각 나 슬펐다. 다행히 호황의 시대가 찾아와 빈틈 많은 재주와 알량한 노력에 비해 쉽사리 틈을 찾아내 비집고 들었던 우리 세대의 행운이 미안했다.  
 
“청춘들아, 틈만 나면 살아라~ 많이 미안하지만 인생을 닫지 말아라~”
 
그런데 맷돌 구멍에 자리잡은 제비꽃은 저 맷돌 구멍이 왕년에 한 번 들어가면 뼈도 못 추리고 가루가 되어버리고 마는 지옥의 구멍이었다는 걸 알고나 있을까? 알았다면 안 들어 갔을까? 혹은 “세상이 다 지옥인데, 뭘 가려!” 해서 들어갔나?  
 
다시 기분이 꿀꿀해진다. 열린 문틈 사이로 지옥같은 8월의 열기가 훅 끼친다.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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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필진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 퇴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이 없는 도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이러다 죽는 날 아침에 “뭐 이렇게 빨라, 인생이?” 할 것 같았다. 경남 거창 보해산 자락, 친구가 마련해준 거처에 ‘포월침두’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평생 처음 겪는 혼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달을 품고(抱月) 북두칠성을 베고 자는(枕斗) 목가적 생활을 꿈꿨지만 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도시의 취향과 입맛으로 인해 생활은 불편하고 먹거리는 가난했다. 몸을 쓰고, 글을 쓰자. 평생 머리만 쓰고 물건 파는 글을 썼으니 적게 먹어 맑은 정신으로 쓰고 싶은 글, 몸으로 쓰는 글을 쓰자, 했다. 올 3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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