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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5·18, 이명박 성공 신화 … 대통령 영화 관람은 ‘메시지 정치’

중앙일보 2017.08.15 01:56 종합 8면 지면보기
최고 권력자가 현대사회의 가장 대중적인 매체인 영화를 그것도 공개적으로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단순한 문화 향유일까, 아니면 정국에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한 의도적 행위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역대 대통령 어떤 영화 봤나
‘택시운전사’ 문 대통령 “진실 규명”
박 전 대통령 ‘국제시장’ 애국심 강조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아직 광주의 진실이 다 규명되지 못했고 이것은 우리에게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의 한 영화관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나서다.
 
이 영화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전 세계에 알렸던 독일 기자의 실화를 다뤘다. 실제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5·18 민주화운동을 재평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5·18 기념식에선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공약을 지켜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월에는 사법 피해자의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재심’을 본 뒤 “약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다졌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의 선택 포인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을 모티브로 한 ‘변호인’(2014년 1월) 관람이 대표적이다. 2012년 대선 두 달여 전에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 울음을 터뜨린 뒤 페이스북에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저절로 떠올랐던 모양”이라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화 관람은 본인의 통치철학인 ‘문화융성’을 전달하는 일종의 매개였다.
 
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2013년 1월) 한국영화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을 관람했다. 이듬해 1월에는 ‘넛잡’을 봤다. 국내 자본과 기술력이 투입된 이 애니메이션은 북미에선 박스오피스 2위까지 올라갔지만 한국에선 최종 관객수 47만 명에 그쳤다. 박 대통령은 이를 두고 “넛잡의 한국 흥행 부진이 국내 배급시스템의 문제인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명량’ ‘국제시장’(이상 2014년) ‘인천상륙작전’(2016년) 등 애국심을 강조하는 영화를 관람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2008년 1월) 2004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대표팀의 실화를 다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관람했다. 2009년엔 독립영화로는 드물게 290만 관객을 동원한 ‘워낭소리’를 봤다. 관람 뒤 “자녀 9명을 농사지어 공부시키고 키운 게 우리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겠는가”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영화를 통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역경 극복과 성공 신화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려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화 사랑도 각별했다. 2006년 금기를 깨면서도 권력을 조롱하는 영화 ‘왕의 남자’를 필두로, ‘맨발의 기봉이’ ‘괴물’ 등을 골랐다면 이듬해 2007년에는 ‘길’ ‘밀양’ ‘화려한 휴가’ 등을 택했다.
 
노 전 대통령은 ‘화려한 휴가’를 본 뒤 눈이 붉어진 채 “가슴이 꽉 막혀서 영화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고도 했다.
 
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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