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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퍼포먼스 대신 진정성 절실한 경찰

중앙일보 2017.08.15 01:43 종합 25면 지면보기
한영익 사회2부 기자

한영익 사회2부 기자

13일의 경찰 지휘부 대국민 사과를 TV 생중계로 지켜본 시민들은 혀를 찼다. 경찰 내부에서도 “참담하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논란의 당사자인 이철성 경찰청장은 이튿날에도 사과를 이어갔다. 12만 경찰관 전원에게 “동료들 마음에 상처를 주게 돼 대단히 유감스럽고 송구스럽다.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겠다”는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 이날 경찰청 담당 기자 간담회에서도 “불미스러운 일로 사태를 가중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이런 사과 릴레이에서 진심을 느꼈다는 이는 많지 않다. 경찰 내부에서도 그렇다. 우선 이 청장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구령’에 이끌려 억지 춘향식의 사과를 한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또 그가 지난해 11월 광주경찰청의 페이스북 글에 담긴 ‘민주화 성지’ 표현을 삭제하도록 당시 광주청장에게 지시했다는 의혹의 실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급기야 이낙연 국무총리는 14일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간부회의에서 “봉합만으로는 안 되고 진실을 빨리 밝히고 조사와 합당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사실 경찰 지휘부의 리더십은 몇 달 전부터 흔들렸다. 음주운전 사고 이력 논란 속에서 취임한 이 청장은 국정 농단 사건 수사에서 최순실씨가 그의 인사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청와대에 파견된 경찰 고위 간부가 각계의 인사 청탁 관련 내용을 적나라하게 적어 놓은 ‘청와대 비밀 노트’가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경찰이 겪는 믿음의 위기는 개혁 조치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로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다. 경찰은 최근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문제를 놓고 인권 경찰로 거듭나기 위한 여러 방침을 발표했다. 원칙적으로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고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수용 비율을 기관 평가에 반영하기로 하는 등 전향적인 내용도 많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정권 코드 맞추기’ ‘수사권 조정 협상용’으로 보는 이가 적지 않을 정도로 신뢰 위기를 맞고 있다. 13일의 생중계 사과를 ‘퍼포먼스’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벤트’로는 국민 신뢰를 얻기 어렵다. 불신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작업과 변화에 대한 진정성이 필요하다.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면 과감하게 고백하고 고쳐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시민들은 장관 앞에서 주눅 든 모습의 경찰이 아니라 솔직하고 진심 어린, 그래서 믿을 수 있는 국민의 경찰을 원한다.
 
한영익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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