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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과학과 애국

중앙일보 2017.08.15 01:13 종합 27면 지면보기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러시아에서는 요즘 사이비 과학이 유행한다. 러시아 의회는 지난해 7월 유전자변형식품(GMO)의 생산을 금지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러시아과학원이 거듭 반대했지만 GMO가 러시아인들의 불임 위험을 높여 인구를 줄이려는 서방 음모의 하나라는 ‘과학적’ 주장이 법 통과를 뒷받침했다. 지난해 8월 푸틴 대통령의 비서실장에 기용된 안톤 바이노는 2012년 우주를 스캔해서 사회와 경제 동향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장치인 ‘누스코프(nooscope)’를 발명했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의 고위 과학 자문관 중 한 사람인 미하일 코발추그 핵에너지 연구소장은 “세계 정부를 장악한 글로벌 엘리트가 미국의 감독하에 인간과 유전적으로 다른 하위 인종을 개발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러시아 상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치하에서 고조되고 있는 러시아 민족주의, 반서방 고립주의의 산물이라는 게 서방 언론의 분석이다.
 
꼭 러시아가 아니더라도 과학이 정치나 민족주의와 엮이면 결과가 대개 좋지 않다. 침팬지에서 인류로 연결되는 ‘잃어버린 고리’가 유럽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필트다운인이 조작됐다. 일본 문명이 세계 4대 문명보다 앞선다는 점을 자랑하려고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후지무라 신이치는 조작 유물을 땅에 묻었다. 그 결과 수십 년간 연구방향이 왜곡되고 해당 국가의 학문적 신뢰가 땅에 추락했다. 우리도 뼈저린 경험을 했다. 이른바 ‘황우석 사태’를 통해서다. 국가가 수백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온 국민이 성원했는데 철저히 기만당했다. 오늘날 ‘유전자 가위’ 연구가 미국에서 이뤄지고 줄기세포 치료를 일본 가서 받는 것도 그가 행한 사기의 후유증이다.
 
박기영 순천대 교수가 과학기술혁신 본부장으로 임명된 지 나흘 만에 물러났다. ‘황우석 사태’에 연루된 게 문제가 됐지만 해명 회견에서 ‘구국의 심정’이란 단어를 쓴 게 반발을 더 키웠다. 그 애국심이 과도해 사고를 친 게 황우석 사태였기 때문이다. 과학은 애국심이나 구국의 대상이 아니다. 루이 파스퇴르는 “과학은 조국을 모른다. 왜냐하면 지식은 인류애에 속하고 세계를 비추는 등불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과학을 과학으로 존중하고 정치화하지 않을 새 본부장을 기대한다.
 
나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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