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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20세 차량 돌진범, 고교 때부터 나치 추종자였다

중앙일보 2017.08.15 01:00 종합 12면 지면보기
13일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에서 시민들이 ‘트럼프 정권은 파시스트’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백인우월주의에 반대하는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3일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에서 시민들이 ‘트럼프 정권은 파시스트’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백인우월주의에 반대하는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시위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한 미국 사회가 들끓고 있다. 시위 현장에서 난무한 차별·혐오·증오 구호는 오랜 기간 미국이 금기시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파는 집결하라(Unite the Right)’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이 날 집회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인종) 다양성은 집단 사기” “누구도 우리를 대체할 수 없다” “백인 목숨은 소중하다”는 구호를 쏟아냈다. 나치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피와 땅(blood and soil)’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는 나치의 인종주의를 상징하는 슬로건으로, 아돌프 히틀러가 “순수 혈통의 아리아 민족만이 위대하다”며 인종 청소를 저지르는 사상적 배경이 됐다.
 

고교 시절 교사 “히틀러에 매혹돼”
독일선 나치 언행 금지, 미국선 자유
인종차별 정책·발언 쏟아낸 트럼프
이번 사태에 애매한 입장 취해 논란

나치의 언행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건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독일에선 특정 집단을 향한 증오를 선동하는 행위 등에 대해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 나치의 상징을 전시하는 행위에는 3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 주말 한 미국 관광객은 독일에서 “하일 히틀러(Heil Hitler·히틀러 만세)”라는 ‘나치 경례’를 했다가 행인에게 두드려 맞았다. 독일에서 나치 경례를 했다간 최고 징역 3년형을 받을 수 있다. 중국 관광객 남성 2명도 최근 나치 경례 포즈로 사진을 찍다가 경찰에 체포돼 500유로(약 66만원) 벌금을 내야했다.
 
반면 샬러츠빌의 백인우월주의자들은 혐오발언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미국 수정헌법 1조 때문에 혐오 발언도 권리로 인정받는 것이다. 미 온라인매체 복스(Vox)에 따르면 당초 샬러츠빌 시 당국은 집회를 불허하려고 했다. 시위를 주도한 극우 활동가 제이슨 케슬러는 격렬히 반발했고, 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 집회를 허가하라고 결정했다.
 
차량 난입범의 머그샷. [AP=연합뉴스]

차량 난입범의 머그샷. [AP=연합뉴스]

극우주의가 청소년 시절부터 싹트는 것도 문제다. 이 집회에서 차량을 몰고 군중을 덮친 공화당원 제임스 알렉스 필즈 주니어(20·사진)는 고교 재학 시절부터 나치 추종자이자 백인우월주의자였다고 WP가 보도했다. 그는 반인종주의 시위대를 향해 차를 몰고 돌진해 1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치게 했다. 이를 포함해, 이날 집회에선 백인우월주의자들과 이에 맞서는 반인종주의 시위대가 충돌하면서 3명이 사망하고 최소 35명이 다쳤다.
 
필즈의 고교 재학시절 역사 교사였던 데릭 와이머에 따르면 필즈는 ‘미국의 근대 전쟁’이란 수업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군에 관한 보고서를 써냈다. 와이머는 “그가 나치즘과 아돌프 히틀러에 매혹되어 있었음이 분명했다”면서 “백인 우월주의 시각을 갖고 있었고, 그걸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와이머는 역사 교사로서 팩트와 이론으로 교정해 보려 최선을 다했지만 “(필즈를 바로잡는 데) 실패했다는 걸 인정한다”고 말했다.
 
유혈 사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애매한 입장은 역풍을 맞고 있다. 그는 성명에서 “여러 편(many sides)에서 나타난 증오와 편견, 폭력의 지독한 장면을 최대한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한다”고 말해, 백인우월주의 시위대에 맞섰던 반대편에도 책임이 있다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 사실상 인종차별을 묵인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나아가 사태의 원인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가 취임 이후 인종차별 발언과 정책을 쏟아내며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복스는 “‘표현의 자유’가 이들의 발언을 정당화하고, 주류에 편입시키게 될 것”이라면서 “이번 샬러츠빌 사태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마음에 품고만 있던 것을 대놓고 말할 수 있게 만들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경희·홍주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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