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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 시 '가정의 행복', 권여선 단편 '손톱' 후보로

중앙일보 2017.08.15 00:08
 <미당문학상 후보작>  
 
 김안 - '가정의 행복' 등 16편
 
 가정의 행복 
 
 조금 더 생활로
 생활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생활로 더 가까이
 세상의 유행어를 쏟기 시작하는 딸의 입과
 매일 꽉꽉 채워야 하는 냉장고로
 냉장고의 차가운 윤리로
 윤리의 뱃가죽으로
 세속의 주술로부터 벗어나
 세속의 비정한 규칙들로
 규칙도 벗어나
 내가 누리는 평화의 대가를 고통 없이 바라보도록 식탁 위에서
 누렇게 말라붙어 종국엔 버려질 밥과,
 밥에 붙어 각다귀처럼 기생하는
 말과 입의 부당하게 정직한 세계로
 생활로
 생활의 결기로
 매일 밤 무럭무럭 키우는 추하고 평범한 꿈으로
 그러면 더 나아질까
 무엇이? 어떻게?
 무엇이든- 어떻게든-
 그래야만 하는 가정들 사이에서 가까스로 조용히 불을 끄고
 등을 맞대고서 서로의 추하고 달콤한 꿈을 고백하며-
 그럼에도 행복으로
 가정의 행복으로  
 
 ◆김안
 1977년 서울 출생. 2004년 ‘현대시’로 등단. 인하대 국문과 박사 과정 수료. 시집 『오빠생각』『미제레레』.  
  
 #내가 읽은 김안 - 오연경 예심위원 
 김안은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평화와 평범과 행복이 시대의 부패와 무관한 것으로 면제받을 수 있는 것인지 묻는다. 잠든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언가가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될 때, 딸의 이마를 짚는 우리의 손은 한없이 순해진다. 이 순간, 아무런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은 바로 이 순간에 김안은 물음을 시작한다.  
 평화와 행복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과연 순연하기만 한 것인가. 정치와 사회의 부조리, 집단 문화의 타락, 불의의 아귀다툼이 들끓는 현실에서 한 개인은 다만 개인으로서 온전할 수 있는가. 우리는 행복을 바랄 때 야만에 연루되고 평범한 삶을 지속하려 할 때 부끄러움과 마주하게 되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김안은 끈질긴 물음으로, 낮은 포복의 리듬으로, 몰락해가는 파산의 절차로 말의 윤리, 개인과 공동체의 윤리를 타진한다.  
 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들 하지만 결코 아무것도 아닐 수가 없다. 시는 기어코 무엇이 된다. 세계의 다른 가능성을 도래하게 하는 위험한 말이 될 수도 있고, 수치심을 모르는 사이비 말로 전락할 수도 있다. 김안은 제 자신의 쓰는 삶 자체에 대한 회의와 질문에서 출발하여 시의 파산을 기획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니어도 좋다는 그의 결기는 이 순진무구한 지옥에서의 고통과 절망을 두드려 깨우는 단단한 회생의 말이 된다.  
 
 ◆오연경
 1974년 서울 출생. 문학 평론가.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현재 고려대학교 기초교육원 연구교수. 계간 '모든시' 편집위원.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권여선 - '손톱'(문학과사회 2017년 봄호) 
 
 "병원을 나오는 내내 소희는 조금씩 불안해지고 신경이 곤두선다. 얼굴이 붉어지고 눈가가 이글이글 달아오른다. 뭔가 또 퍽 터질 것만 같다. 언니가 사라졌을 때도, 손톱이 깨졌을 때도, 소희는 이렇게 뭔가로 가득 차서 터질 것 같았다. 무섭다. 소희를 이렇게 혼자 놔두면 안 되는데.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어쨌다고? 내가 뭐? 내가 뭘? 뭘? 뭘?  소희는 작은 소리로 외치며 걷는다.  
 내가 뭘? 뭘? 뭘?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말끝이 날카롭게 솟구친다.  
 내가 뭘? 뭘? 뭘?  
 새해가 되면 소희는 스물두 살이 된다. 옥탑방 계약은 소희가 스물셋 스물다섯 스물일곱 되는 6월마다 돌아온다. 2년마다 보증금을 오백만 원씩만 올려도 대출금 갚는 건 두 배로 늦어지고 월세를 올려도 마찬가지다. 처음 계획대로 갚는다 해도 스물네 살 여름에나 다 갚을 수 있는데, 그 두 배가 걸리면 스물일곱, 여덟 살이나 되어야 한다. 그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십만 원으로 한 달을... 치약도 휴지도 생리대도 아껴 쓰고, 아침엔 우유와 시리얼, 밤엔 호빵이나 식빵, 계란 한판 사서 한 달을 먹고, 일주일에 한 번 제일 싼 찌개용 돼지고기를 사고, 늘 두부와 콩나물, 김치를 아껴 먹고 깍두기를 담가 먹으며, 친구도 못 만나고 친구도 못 만들고. 십 원 백 원 포인트를 쌓으며, 스물일곱, 스물여덟 살까지, 병원비 칠만 원 가지고 이렇게,.. 다시 안 온다, 다시....  
 소희는 어느 새 빌딩 쇼윈도 앞에 바짝 붙어 서 있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이 닦인 유리 너머로 외제 자동차들이 손에 잡힐 듯 반짝거린다.  
 내가 어쨌다고? 내가 뭘, 뭘, 뭘? 뭘? 뭘? 뭘?
 소희는 다친 개처럼 유리에 대고 짖었다. 뭘, 뭘, 뭘, 외칠 때마다 유리에 김이 서렸다. 매장 안에서 남자직원이 소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온몸이 엄지손톱의 혹처럼 얼었다 녹으면서 뜨겁고 흐물흐물한 살덩어리가 된 것 같았다. 갯벌에 쑤욱 빠진 것도 같았다. 이대로 유리에 철썩 들러붙어 버릴까. 직원이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걸 보면서 소희는 엄지손톱에서 거즈를 떼어냈다. 손톱 없어도 된다. 엄마 없이도 살았고 언니 없이도 사는데 그깟 손톱 없어도 된다. 됐다 뭘, 됐다고, 안 와도 된다고,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오지 말라고. 소희는 혹에 끈끈하게 고인 약과 피와 진물을 유리에 꾹 눌러 비비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권여선
 1965년 경북 안동 출생. 96년 장편 『푸르른 틈새』로 등단. 소설집 『처녀치마』『분홍 리본의 시절』『내 정원의 붉은 열매』『안녕 주정뱅이』. 장편 『레가토』『토우의 집』. 오영수문학상·이상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동인문학상·동리문학상. 
 
 #내가 읽은 권여선 - 양윤의 예심위원 
 손톱은 몸의 말단에서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했다. 하지만 문명시대의 손톱은 일종의 굳은살일 뿐이다. 스물한 살 소희의 다친 손톱은 소희가 겪은 곡진한 삶의 상징이지만, 실은 소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소희가 이 사회의 깨진 손톱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쇼윈도는 자본주의의 외관이 전시되는 곳이다. 소희는 외제 자동차 쇼윈도에 깨진 손톱의 흔적을, 이를테면 약과 피와 진물을 묻히고 달아난다. 이 장면에서 왜 세월호 아이들이 떠올랐을까. 손톱이 다 빠졌다는 그 아이들이.  
 이 소설에서 가장 아픈 장면은 생활비를 계산하는 장면이다. 작가는 예의 그 건조하고 무심한 말투로 최저생계비 아래의 삶을, 희망의 외관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절망인 삶을 예리하게 보여준다. 가난이란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희망할 수 없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희는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는다. 엄마가 저축했던 돈과 월세 보증금까지 챙겨서 집을 나가고 언니가 한 번 더 돈을 챙겨 달아났지만, 소희는 둘을 비난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은 아이들이 성선설을 유지하게끔 놓아두지 않는다. 엄마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엄마에게 보내는 언니의 문자메시지는 점점 공격적으로 변해간다. 희망이 절망으로, 간청이 분노로 바뀐다. 그러나 휴대전화 매장에서 만난 할머니가 건네는 껌처럼, 삶이 손을 내밀기도 할 것이다. 여전히 끝은 아니다. 내민 손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끌려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삶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살아지기도 하는 것이니까.  
 
 ◆양윤의
 문학평론가. 고려대 국문과 박사.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평론집 『포즈와 프러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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