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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12죠, 112죠 … 1년간 570회 허위신고한 여성 “외로웠다”

중앙일보 2017.08.12 01:14 종합 8면 지면보기
지난 1년간 112종합상황실에 570회(하루에 약 1.5회) 허위신고를 한 5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우울증 50대, 길게는 1시간씩 통화
“남편·아들은 내 얘기 안 들어줘요”

경찰, 블랙리스트 올리며 줄곧 경청
자살 암시 발언에 자택 50회 찾기도

재발 방지 차원서 구속영장 청구
남편은 “몰랐다 … 대화 자주 하겠다”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정모(53·여)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정씨는 6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조현병 증세가 더해졌다. 이 때문인지 정씨는 2016년 5월 5일부터 올해 4월 25일까지 무려 570회 허위신고 전화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루 평균 1.5회가 넘는 셈이다. 정씨가 자살을 암시하는 말들을 하는 탓에 부산 전포파출소 소속 경찰들이 정씨 집으로 출동한 횟수는 50여 회나 될 정도였다.
 
공장에 다니는 남편과 중학생인 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정씨가 112로 전화를 걸어 외로움을 호소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부산진경찰서 노정기 강력5팀장은 “정씨는 전화를 걸 때마다 최소 10분, 길게는 1시간씩 경찰관들에게 이런저런 하소연을 했다”며 “남편 이야기부터 사회에 대한 원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앞뒤 맥락이 맞지 않게 말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정씨의 허위신고가 100회를 넘어가자 부산경찰청은 정씨를 일종의 ‘블랙리스트’에 올려 놓았다고 한다. 정씨의 신고가 최초 접수되는 부산경찰청 112종합상황실의 전광판에는 정씨의 휴대전화 번호와 함께 ‘상습 허위신고자’라는 문구가 띄워져 있다고 한다. 112종합상황실에는 79명의 경찰이 4개 조로 나뉘어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이들은 경찰 내부에서 ‘조심해야 할 신고자’로 분류된 정씨의 인적 사항과 특이점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노 팀장은 “허위 상습신고자 응대 매뉴얼에는 ‘긴급 신고를 접수해야 하니 전화를 끊겠다고 말한다’ 등 세세하게 명시돼 있지만 그래도 핵심은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울증이나 조현병을 앓는 환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아 정신적 결핍 현상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심리학적 분석에 따른 조치다.
 
노 팀장은 “헛소리를 하고,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더라도 마냥 들어줄 수밖에 없어 솔직히 경찰관들이 심적으로 큰 고역”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일종의 ‘전화 괴롭힘’을 당하는 ‘감정노동자’와 112 응대 경찰관들의 처지가 다를 게 없다는 하소연이다. 허위신고인 줄 알면서도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사고 때문에 정씨 집으로 출동했을 땐 최소 1시간 이상 하소연을 듣고 오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민원 응대를 잘못 했을 때는 경찰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어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해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정씨의 허위신고 재발방지를 위해 지난 4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 한다. 노 팀장은 “구속영장이 기각될 수도 있었지만 부득이 청구했다”며 “정씨가 법원에 가서 영장실질심사 조사를 받고, 유치장에 12시간 머무르다 갔기 때문에 허위신고가 범죄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정씨는 초범이고, 경찰에 신체적 위해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금형에 그칠 전망이다.
 
이번 일로 정씨의 정신적 결핍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씨의 남편은 “출근한 뒤에 벌어진 일이라 아내가 허위신고를 이렇게 자주 하는지 몰랐다”며 “아내와 대화를 자주 하는 등 재발방지를 위해 신경 쓰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경찰청은 정씨 같은 상습 허위신고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부산 112종합상황실 관계자는 “지금은 112상황실에서 일일이 정씨의 신고 내역을 정리해 상습 허위신고자로 별도 분류한다”며 “앞으로 상습 허위신고자가 전화를 걸면 모니터에 신고자의 이력이 바로 뜨고, 통화 내용을 3개월 이상 저장해 나중에 처벌받을 수 있게 하는 등 별도의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면 경찰들이 느끼는 피로도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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