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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300만원 빌리는데 가족·지인 10명 연락처 적으라 했다

중앙일보 2017.08.12 01:00 종합 17면 지면보기
불법 사채업자 만나 돈 빌려 보니
길거리에 뿌려진 불법 사금융 홍보 명함. 불법 사채업 이용자 대부분은 ‘100% 대출’ 등의 선전 문구에 현혹돼 돈을 빌렸다가 연 100%가 넘는 ‘살인 금리’의 덫에 걸려 고통을 겪게 된다. [정진우 기자]

길거리에 뿌려진 불법 사금융 홍보 명함. 불법 사채업 이용자 대부분은 ‘100% 대출’ 등의 선전 문구에 현혹돼 돈을 빌렸다가 연 100%가 넘는 ‘살인 금리’의 덫에 걸려 고통을 겪게 된다. [정진우 기자]

“가족들이랑 직장 동료, 친구까지 상시 연락 가능한 10명 추려서 전화번호 적어놓고 가세요.”

연 311% 지옥의 이자율
매일 3만원씩 135일 갚아야 끝
최고 1000% 넘는 금리 대출도

돈 없으면 몸이라도 팔아라
150만원 사채 4개월 새 980만원
차마 죽지 못해 썼는데 깊은 악몽

법정 최고금리 인하의 역설
대출 심사 강화로 탈락자 늘어
금융 소외계층 구제 선행돼야

 
지난 1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카페. 사채업자는 돈을 입금해 주기 위한 마지막 단계라며 가족과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요구했다. 자신을 박 부장이라 칭한 이 사채업자는 “돈은 내가 빌렸는데 왜 가족들의 전화번호가 필요하냐”고 묻자 “돈만 제때 갚으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며 휴대전화를 빼앗으려 했다.
 
계속된 저항에 그는 “아무런 신용도 없이 돈을 빌려주는데 이 정도 정보는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버럭 화를 냈다. 대출금 상환이 늦어질 경우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연락해 협박하고 대납을 요구하는 등 불법 추심을 할 속셈으로 보였다.
 
기자가 박 부장을 처음 만난 건 서울 지하철 장한평역 앞이었다. 불법 사채업자들의 영업행태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종로 번화가에 뿌려진 명함 속 ‘일수·월변 100% 가능’이라는 문구를 보고 연락하자 박 부장은 대출 가능 여부에 대한 대답 없이 “장한평역 8번 출구로 와서 다시 연락해 달라”고만 했다.
 
박 부장은 지하철역 인근의 9인승 회색 봉고차 안에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험상궂은 사채업자가 아닌 검은색 면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은 평범한 40대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300만원의 급전이 필요하다’는 말에 박 부장은 세 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매일 자정이 되기 전 정해진 돈을 입금하고 ▶일과시간(오전 9시~오후 6시) 이외엔 항상 전화를 받아야 하며 ▶집주소와 직장 주소를 알려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불법 사채업자들의 대출·상환 시스템은 얼마를 빌리는지, 일수인지 월변인지, 돈을 쓰는 용도가 무엇인지에 따라 제각각이다. 박 부장의 경우엔 300만원을 빌리면 선이자와 수수료로 60만원을 책정했다. 대출은 매일매일 돈을 갚는 ‘일수’ 방식으로 매일 3만원씩, 135일에 걸쳐 돈을 갚아야 모든 상환이 끝나는 구조였다. 결과적으로 300만원을 빌려도 실제 손에 들어오는 돈은 240만원에 불과한데, 갚아야 하는 총 금액은 405만원에 달했다. 연 이자율로 따지면 법정 최고금리(27.9%)의 10배가 넘는 311.3%의 ‘지옥 금리’였다.
 
불법 사채 이용자들은 평균 100~200%, 많게는 1000% 이상의 폭탄 금리로 돈을 빌린다. 법정 최고금리인 27.9%를 초과하는 이자율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지만 당장의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피해를 감수한다. 다중채무자이거나 이미 연체기록이 있어 은행과 저축은행은 물론 제도권 금융의 마지노선인 대부업체에서조차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태라서다.
 
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불법 사금융 이용자들의 평균 대출금리는 110.88%에 달했다. 이용 목적별로는 사업자금이 48.8%, 생활자금이 36.1%, 타 대출금 상환이 10.2%를 차지했다. 불법 사금융 이용자 대부분이 절박한 이유로 ‘급전’이 필요하거나 다른 대출금을 상환하기 위한 ‘돌려막기’ 목적으로 사채의 늪에 빠진다는 의미다.
 
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2015년 33만 명 수준이던 불법 사금융 이용자 숫자는 2016년 43만 명으로 늘었다. 이용 총액 또한 2015년 10조5897억원에서 2016년 24조1144억원으로 2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1인당 이용총액으로 환산하면 2015년 3209만원에서 1년 만에 5608만원으로 늘어난 셈이다.
 
불법 사금융 이용자 상당수는 대부업체 심사에서 탈락해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실제 불법 사금융 이용자 증가는 대부업 이용자 감소와 궤를 같이 한다. 불법 사금융 이용자 숫자가 늘어난 2015년 9월~2016년 12월 대부업 이용자 수는 127만 명에서 120만 명으로 줄었다고 대부금융협회는 설명했다. 특히 저신용자의 피해가 컸다. 2015년 9월 7~10등급의 저신용자 중 대부업체 이용자 수는 94만 명이었지만 최고금리 인하 여파로 지난해 말 기준 이용자 수는 84만 명으로 9.7% 감소했다.
 
정부가 법정 최고금리를 인하할 때마다 내세우는 명분은 ‘서민들의 이자 부담 경감’이다. 지난달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법정 최고금리를 24%로 내리겠다고 발표하며 “고금리 대출로 과도한 부담을 지는 저신용·취약계층의 금융 이용 여건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27.9%인 법정 최고금리가 이자제한법상 최고금리인 25% 수준으로 낮아질 경우 대부업체 신규대출자 90만 명의 이자부담은 총 1481억원 줄어든다. 1인당 16만4500원 정도다. 문제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이자 부담 경감과는 별개로 ‘금리 인하→대출 심사 강화→서민들의 대출 심사 탈락→불법 사금융 이용’의 악순환이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대부금융협회 조사 결과 최고금리가 25% 수준으로 인하될 경우 약 34만 명의 이용자들이 대부업체 대출심사에서 탈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대부업체 대출심사 탈락과 동시에 불법 사금융이 아니면 돈을 빌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법정 최고금리를 인하하기 전에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금융 소외계층’을 구제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인해 절벽에서 떨어지게 될 금융소외계층이 생기는 ‘풍선효과’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최고금리 인하로 인해 금융사의 대출심사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계층별·성격별로 맞춤형 금융복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창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영업자의 경우 20%가 넘는 금리로 돈을 빌릴 상황에 직면했다면 이미 상환능력을 상실한 경우라고 봐야 한다”며 “각자가 처한 상황과 재정 여건이 상이한 만큼 ‘금융복지’라는 큰 틀에서 차주의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서민금융의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햇살론처럼 낮은 금리로 대출해 주되 자격조건이 까다로운 성격의 정책금융 이외에 금리는 다소 높지만 제도권 금융에선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금융소외계층’을 껴안을 수 있는 정책성 상품이 많아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다중채무자·저신용자에겐 법정 최고금리 수준으로 금리를 제공한 뒤 부실률을 정부가 감당하는 등의 공적 기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S BOX] 법정 최고금리 10년 새 절반으로 … 저신용 서민 대출절벽 우려
법정 최고금리 인하는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서민금융 정책의 핵심 중 하나다. 135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를 줄여 나가면서 동시에 그로 인한 이자 부담까지 잡겠다는 계획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최근 10년간 다섯 차례에 걸쳐 최고금리를 인하했다. 당초 66%에 달하던 최고금리는 2007년 49%로 하향 조정된 뒤 2010년(44%), 2011년(39%), 2014년(34.9%), 2016년(27.9%)에 걸쳐 꾸준히 내려갔다. 대부업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내년 1월부턴 최고금리가 현 27.9%에서 24%로 낮아질 예정이다. 10년 만에 법정 최고금리가 반토막난 셈이다.
 
이 같은 ‘최고금리 인하 드라이브’는 한국과 대출 시스템이 비슷한 일본과 비교했을 때도 빠른 속도다. 일본의 경우 1991년 40%였던 법정 최고금리는 20년에 걸쳐 20%로 내려갔다. 특히 2006년 최고금리를 20%로 내리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3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뒀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이달 초 ‘국정감사 정책자료’를 통해 최고금리 인하 전 대부업 시장상황을 충분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최고금리 인하로 대부업체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전반의 수익성이 악화될 경우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과 다중채무자들이 대출절벽에 내몰릴 수 있다는 진단이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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