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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카와 아야의 서울 산책] 일본이 숨기려는 강제징용 참상, 영화 ‘군함도’ 보고 알게 돼 무거운 마음

중앙일보 2017.08.12 01:00 종합 18면 지면보기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영화 ‘군함도’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일본에서는 개봉도 안 했고 한정된 정보와 예고편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에 오해도 많아 보인다. 특히 예고편의 옛 일본군을 상징하는 ‘욱일기’를 반으로 찢는 장면이 강한 ‘반일’ 이미지를 준 것 같다. 영화에선 그렇게 비중이 있는 장면도 아닌데 말이다.
 
반대로 한국에선 일본의 만행을 더 부각시킨 영화를 기대했다가 오히려 조선인끼리의 배신이 비중있게 그려져 불만을 느낀 관객도 많은 듯하다. 최근 몇 년 새 일제강점기를 그린 한국 영화가 많이 나왔지만 이번처럼 일본에서 반응이 컸던 적은 없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를 무대로 한 영화이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군함도의 강제징용 역사를 일본이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서 근대화의 상징이라고 홍보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크다.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한국이 반대했던 것을 기억하는 일본 사람이 많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거부감부터 생기는 이유다. 나는 일본이 군함도의 강제징용 역사를 밝힌다고 해서 문화유산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계속 숨기려고 하기에 이미지가 더 안 좋아지는 것 같다. 어떤 한국 선생님이 “한국에서 일제강점기를 그린 영화가 계속 나오는 건 자꾸 숨기려고 하는 일본의 태도 때문”이라고 했다. 이해가 가는 말이다.
 
나는 영화를 보고서 군함도에 갔다. 군함도는 1974년 폐광되면서 무인도가 됐다. 영화에 나오는 집단 탈출은 픽션이지만 열악한 환경의 탄광 노동을 못 견디고 개인적으로 탈출한 사람들은 실제 있었다. 물론 파도가 거칠어 익사한 사람이 많았다.
 
군함도 투어 배로 섬에 가까이 가도 파도가 높아 상륙할 수 없을 때도 많다. 내가 갔을 때는 다행히 상륙할 수 있었다.
 
도착하면 동굴처럼 생긴 작은 터널을 지나가는데 꽤 무더웠다. 징용자들이 지옥에 끌려가는 처참한 심정으로 이곳을 지나갔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당시 징용자들이 섬에 도착하자마자 지나가는 곳을 ‘지옥문’이라 불렀다고 한다. 투어가이드로부터 들은 설명이 아니라 내가 사서 읽은 책에 나왔던 내용이다. 투어가이드는 섬의 역사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는 하지 않는다. 그 책을 읽으면 영화 ‘군함도’가 픽션이라 해도 기록에서 가져온 이미지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군함도에서 직접 본 것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해저탄광으로 내려가는 입구에 이어지는 계단이다. 15단의 계단을 올라가서 지하 1000m의 탄광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10m만 내려가도 무서울 것 같은데 징용자들은 매일매일 어떤 심정으로 그 계단을 올라갔을까. 가이드는 광부들이 탄광에서 일한 시간이 8시간이라고 했다. 그런데 책을 보면 전쟁 당시 12시간씩 일했다고 나온다. 식량도 부족한 상황에서 위험한 일을 그렇게 오래 하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사고도 많이 발생했을 것이다.
 
책은 하야시 에이다이가 쓴 『사진기록 지쿠호·군함도』라는 책인데 전쟁 당시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군함도뿐 아니라 지쿠호 등의 일본 탄광에서 일했는지 알 수 있다. 사진으로 보면 소년처럼 보이는 노동자도 있다. 류승완 감독이 영화 ‘군함도’를 만들려고 생각한 계기에 대해 “군함도의 이미지를 처음 보고 그 안에서 벌어질 법한 이야기들이 나를 자극한 것”이라고 했다. 차츰 영화를 만들어가면서 군함도의 역사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원래 액션을 잘 그리는 감독인데 실제로는 없었던 집단 탈출을 영화로 그렸다고 해서 ‘왜곡’이라 비판받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다루는 영화가 기록대로만 그려져야 한다면 영화로 만들 의미가 없다. 기록을 보면 될 일이다. 영화는 영화대로 즐기면 된다. 영화 ‘군함도’ 덕분에 강제징용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는 건 적어도 내게는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었다.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동국대 대학원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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