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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늙은 고양이 묘사한 시적 상상력 … 명곡 ‘추억’은 이렇게 탄생했다

중앙일보 2017.08.12 01:00 종합 21면 지면보기
책으로 읽는 뮤지컬 - 캣츠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
T. S. 엘리엇 지음
이주희 옮김, 시공주니어
 
뮤지컬 ‘캣츠’를 보고 도무지 스토리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국내에 해적판이 난무하던 시절에는 늙은 암고양이 그리자벨라를 창녀 고양이라고 해석한 일도 있었다. 원작을 몰라서 생긴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캣츠’의 원작은 시집이다. T. S. 엘리엇이 1930년대 남긴 작품을 모아 발간한 것으로, 종교적 부자관계인 대자녀(代子女)들이 고양이를 좋아하자 편지에 썼던 글들이다. 고양이에 담긴 애정과 관찰력, 그리고 끝 모를 상상의 이면에는 후대를 생각하는 보호자의 마음이 담겨있다. 지금도 영국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잠들 때 이 시집을 읽어주곤 한다.
 
국내에 번안·출간된 시집의 제목은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다. 영어 제목은 조금 다르다.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으로 ‘늙은 주머니쥐의 고양이론’쯤 된다. 뜬금없이 ‘지혜롭다’가 끼어들었다. 시집 제목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흥미로운 사연이 하나 더 있다. 엘리엇의 별명이 바로 ’늙은 주머니쥐‘였다. 결국 시집 제목에는 엘리엇이 바라본 고양이에 대한 기록이라는 의미도 있는 셈이다.
 
뮤지컬 ‘캣츠’는 T.S. 엘리엇의 동시가 원작이다. [사진 클립서비스]

뮤지컬 ‘캣츠’는 T.S. 엘리엇의 동시가 원작이다. [사진 클립서비스]

뮤지컬 ‘캣츠’에는 그래서 줄거리가 없다. 천태만상 고양이에 담긴 시적 상상력과 함께, 시집 속 활자들이 노래가 되고 춤이 되고 이미지가 되어 라이브 무대로 구현되는 묘미가 ‘캣츠’의 별스런 매력이자 감상 포인트다. 손바닥이 벌게지도록 박수를 치고,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담은 아이들이 극장을 나서는 영미권 관객들의 열광이 거기서 나온다. 뮤지컬 ‘캣츠’ 흥행의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시집에는 암고양이 그리자벨라의 사연이 없다. 그에 관한 이야기가 추가된 것은 훗날 뮤지컬로 각색되며 이뤄진 일이기 때문이다. 시집이 원작이다 보니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작품을 관통하는 뚜렷한 주제를 찾지 못해 고민했다. 시인의 부인 발레리 엘리엇이 세상을 떠난 남편의 미발표작 몇 편을 보여줬고,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환생하는 고양이의 사연이 태어났다. 고양이 목숨이 여러 개라는 전설을 활용해 젊음을 되찾고 싶어하는 노년의 그리움을 담아낸 것이다. 유명한 뮤지컬 넘버 ‘추억(memory)’의 탄생 비화다.
 
뮤지컬을 만나기 전후에 시집을 읽으며 노래를 감상해보면 명작의 향기가 절로 느껴진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긴다’는 뮤지컬 감상의 원칙을 새삼 절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꼭 추천하고픈 이 뮤지컬의 진정한 감상법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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