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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신이 내린 감각의 영역마저 ‘편집’하는 인간기술

중앙일보 2017.08.12 01:00 종합 22면 지면보기
감각의 미래
카라 플라토니 지음

현대 과학이 밝힌 전기신호의 비밀
참전 군인 정신적 쇼크 치료에 활용
뇌졸중 환자 후각 회복 가능해지고
제 6의 맛 ‘깊은 맛’ 규명도 가시화

박지선 옮김, 흐름출판
 
감각은 인간 인식의 바탕이다. 매일같이 눈·귀·코·혀·몸·의식을 통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깨닫는다. 고대 불경 ‘반야심경’에 등장하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와 ‘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이라는 표현은 현대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과학기자인 지은이는 과거 신의 영역으로 여겼던 감각의 세계에 인간이 도전하는 연구 현장을 찾았다.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신경과학자·유전학자·조향사·요리사·디자이너·심리학자 등 감각과 관련한 인물을 만나 취재한 내용으로 감각의 미래를 살펴봤다.
 
현대 과학은 신체 감각기관을 통해 입력된 외부 정보가 전기신호로 바뀌면서 비로소 뇌가 이를 판별하고 인식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감각이 전기신호로 전달된다면 이를 해킹하거나 편집할 수도 있다. 이미 인간은 감각을 조절하고 변환·증강하거나 심지어 인공적으로 만들어 의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
 
신의 영역이었던 감각의 세계가 인간의 연구 영역으로 들어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중앙포토]

신의 영역이었던 감각의 세계가 인간의 연구 영역으로 들어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중앙포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싸운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는 참전군인을 대상으로 과거 감각 경험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가상현실을 이용해 심리치료를 하기도 한다.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를 결합한 증강현실을 통해 뇌를 이식하거나 사이보그가 되는 것과 맞먹는 인공감각의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프랑스 파리 인근의 앙브루아즈 파레 병원에선 후각 치료 시험이 한창이다. 후각 상실은 알츠하이머병이나 신경퇴행성 질환의 대표적 초기 증상이어서 진단 근거로도 활용한다. 병원에선 이를 역으로 활용해 머리를 다치거나 뇌졸중, 항암 화학요법 부작용으로 후각을 잃은 환자를 대상으로 향수나 허브향으로 기억을 반추하게 한다. 감각을 자극해 뇌를 재활성화하고 인지 기능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예를 들어 베르가모트 향을 맡으면 이 향이 들어간 얼그레이 차를 함께 마시던 옛 친구의 기억이 되살아날 수 있다. 이를 ‘프루스트 효과’라고 한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감각에 대한 추억에서 비롯했다. 실제로 후각은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기억·학습·감정 등 인지를 담당하는 중추와 밀접하게 연결됐다고 한다.
 
인간은 아직 감각의 세계를 일부만 이해할 뿐 미개척지가 광활하게 남아있다. 맛부터가 그렇다. 미국 퍼듀대 등에선 인간이 구분하는 것으로 알려진 짠맛·단맛·신맛·쓴맛·우아미(감칠맛) 다음의 여섯째 맛을 찾는 작업이 한창이다. 한국식품연구소의 유미라 박사는 일본어로 ‘코쿠미’로 불리는 깊은 맛에서 제6의 맛 감각을 찾고 있다. 잘 숙성된 기치나 장, 할머니가 오랫동안 뭉근하게 끓인 국에서 느낄 수 있는 바로 그 맛이다.
 
문제는 맛은 물론 통증이나 감정 질환과 관련한 감각 반응에서도 문화권별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피로·불안·불만·우울 등에 대한 감각과 반응도 다르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감각은 생물학적 유전의 결과일까, 문화적 산물일까, 아니면 수많은 요소가 거미줄처럼 엮이고 꼬인 고차방정식일까. 감각에 대한 인지연구가 이런 의문을 해결하고 인류의 미래를 ‘용감한 신계계’로 이끌 수 있을까.
 
책의 원제(We have the technology)는 한국에서도 1976~78년 TBC에서 방영한 미국 ABC방송 드라마 ‘600만불의 사나이’에서 비롯했다. 드라마가 시작할 때마다 등장하는 “우리는 그를 재생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We can rebuild him; we have the technology)”를 인용했다. 이 추억의 드라마에선 주인공이 20배 줌의 증강시력을 가진 인공 눈을 달았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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