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재 서울대학교 지역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
원전 둘러싼 논란의 쟁점은
안전이냐 비용이냐 문제
급변침보다 거시적 차원의
에너지 다변화 전략 찾아야
친원전은 국민의 전기료 폭탄과 산업에 미칠 영향을 걱정한다. 탈원전이 진행되면 2030년에는 전기료가 지금보다 25%가량 오를 전망이다. 수출이 현재 얼마간 호조를 보이는 것도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싼 산업용 전기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친환경이라는 액화천연가스(LNG)의 경우 가격과 공급에 변동성이 크고, 인구밀도가 높은 지리적 여건상 신재생에너지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장기적으로 이미 세계적 수준으로 우뚝 선 원전 기술의 개발동력이 사라지고 수출 길이 막히며, 그만큼 고용 환경도 나빠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마치 양자택일의 문제인 것처럼 부딪히고 있는 형국이다. 논점이 안전과 비용으로 서로 다르니 접점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찾아보면 제3의 길도 있다. 에너지 정책도 크게 보면 항해하는 배와 같다. 배는 자동차처럼 급정거나 급회전이 불가능하다. 관성과 타력(惰力)이 작용하는 것이다. 무리하게 급변침하면 자칫 전복될 수 있다. 비록 방향타 조작으로 배가 기울더라도 속도를 조절하거나 중심을 잡아줄 평형수가 제대로 채워져 있으면 문제가 없다.

그런 점에서 에너지 문제도 단순히 탈원전이냐, 친원전이냐가 아니라 다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생산자와 수요자가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이면서 다른 산업과도 연계하는 것이다. 일본의 에너지와 농업 문제 결합이 좋은 예다. 우리보다 탈원전 이슈가 앞선 일본은 농지의 이랑 사이에 태양전지판을 설치하도록 장려한다. 이른바 솔라셰어링(Sola-sharing)이다. 농작물에 필요한 수준을 넘는 태양광은 ‘잉여 에너지’다. 소출 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물을 증발시켜 수분 부족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잉여 태양광’을 발전으로 전환하면 농산물 공급과 환경 보호의 일석이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농가로서는 부족한 수익을 보완할 수 있고, 국가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공간을 마련하고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 실험한 결과 태양광발전으로 그늘이 진 밭의 작황이 종전과 같거나 더 좋았으며, 농작물 수익의 세 배에 달하는 농외 소득도 올렸다.
우리나라의 경우 간척지가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경기도와 화성시가 담수호 수질 악화와 쌀의 과잉생산이란 문제를 고려해 논 대신 밭으로 개발하는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전체 간척지에서 소금기를 빼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민물과 20년 이상의 시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작물에 필요한 만큼의 흙 받침에 태양전지판을 세우면 서서 재배하는 초현대식 밭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게다가 태양광을 팔아 부수입도 올릴 수 있고 비를 막아 농산물 품질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원자력 대신 재생에너지나 친환경 발전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산업통상자원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부처들이 앞다퉈 “절대농지에서 태양광발전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것이 난개발과 농지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지면 안 된다.
에너지는 환경 문제이자 경제 문제이며, 사회 문제이자 미래 문제다. 복합과 융합 시대에 원전 논란을 다양한 층위에서 긴 안목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정재 서울대학교 지역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