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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미술] ‘끝나지 않은 노래’

중앙일보 2017.08.05 01:16 종합 27면 지면보기
이지은 명지대 교수·미술사학

이지은 명지대 교수·미술사학

누구에게나 시간을 되돌리는 노래가 있다. 노랫말을 따라 추억이 살아나고 멜로디를 들으면 그 시절로 마음이 달려간다. 그런데 그때의 노래와 지금의 노래가 함께 불린다면 어떨까.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의 전시 ‘내 세대의 노래’(10월 15일까지)는 1940년생 김차섭과 82년생 전소정을 한데 묶었다. 세계화 시대의 정체성 찾기를 화두로 삼은 두 작가는 각각 자신이 속한 세대를 대변한다.
 

김차섭 vs 전소정

그림 속 남자는 검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한 손에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온 철(鐵)운석을 쥐고 있다. 탁자 위에 놓인 지도는 남반구가 위쪽으로 뒤바뀐 모양새다. 김차섭의 ‘운석이 있는 자화상’이다. 찬찬히 훑어보면 화가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잔을 건네는 손은 다름 아닌 자신의 손이다.
 
김차섭의 ‘운석이 있는 자화상’. 격동의 20세기를 살아온 한국인의 또 다른 모습이다. [사진 북서울미술관]

김차섭의 ‘운석이 있는 자화상’. 격동의 20세기를 살아온 한국인의 또 다른 모습이다. [사진 북서울미술관]

김차섭은 74년 록펠러 장학금으로 뉴욕에 정착했다. 팝아트에서 신표현주의까지 숨 가쁘게 교차되는 현대미술 흐름 속에서 오롯이 자신만의 세계를 가꿨다. 서구 미술의 한복판에서 정체성 찾기는 생존을 위한 싸움이었다. 그림 속 남반구가 위로 간 ‘역(逆)지도’는 유럽의 면적이 다른 대륙보다 크게 표현된 메르카토르 도법을 전복시키려는 김차섭의 전략이다. 운석은 철기 문명을 전파한 스키타이 민족의 후예라는 자긍심의 표현이다. 역사와 문화인류학, 상상력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서구 중심의 세계관에 대항하여 제3세계 작가 김차섭이 문명의 주체로 거듭나는 전환이었다.
 
반면 전소정의 글로벌리즘에는 이런 이분법적 대치가 없다. ‘꿈의 이야기: 순이’는 파독 간호사와 광부, 조선족 노동자처럼 이주와 경계의 삶을 사는 군상을 다루지만 이들의 정체성은 ‘우리’나 ‘타자’로 구분하기엔 모호하다. 시간적 거리를 둔 파독 광부의 이야기는 작가의 꿈과 결합하여 낯설어지고, 이미 우리 주변에 편재하는 조선족 이주민의 모습은 나와 타자 간의 공간적 거리를 없앤다. 자본과 노동력이 끊임없이 이동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타자는 이미 우리 안에 있고 정체성의 구분은 그 정당성을 잃어가고 있다.
 
김차섭의 전략이 ‘나’를 찾음으로써 서구 미술계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었다면, 전소정의 선택은 나와 타자의 구분 자체를 의심함으로써 세계화의 바다로 항해하는 법을 제시한다. 선곡은 같아도 세대마다 각자의 가락으로 노래는 계속된다.
 
이지은 명지대 교수·미술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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