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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렌펠처럼 큰 불 번졌지만 두바이 86층은 사망자 ‘0’

중앙일보 2017.08.05 01:06 종합 2면 지면보기
80여 명 vs 0명.
 

가연성 마감재, 그렌펠과 같았지만
층·가구별 방화벽이 불·연기 차단
한밤 화재, 2시간 만에 불길 잡아

약 두 달 간격으로 벌어진 초고층 주거용 아파트 화재의 사망자 수(현재까지 집계 기준)다. 4일(현지시간) 오전 1시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있는 86층짜리 ‘토치 타워’에서 큰불이 나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두바이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두 시간여 만에 불길을 잡았고 현재까지 확인된 사상자 수가 없다고 밝혔다. 반면에 지난 6월 14일 영국 런던의 24층 임대 아파트 그렌펠 타워 화재 땐 15분 만에 화염이 건물 전체를 삼켜 8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영상을 보면 화재 초기 상황은 두 화재가 판박이다. 토치 타워 화재도 그렌펠 타워 때와 비슷하게 중간층에서 발화한 불길이 건물 외벽 한 면을 타고 위로 빠르게 번졌다. 아파트의 30~40개 층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차이가 있다면 그렌펠 때는 불길이 위층뿐 아니라 옆으로도 번져 건물 전체를 감싸는 식이 됐다는 점이다. 토치 타워는 2015년 2월에도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40층 높이까지 번졌지만 사상자가 없었다.
 
토치 화재에서 그렌펠이 연상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이 비슷한 가연성 마감재(클래딩)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알루미늄 패널 사이에 가연성 폴리에틸렌이 들어 있는 클래딩은 그렌펠 참사 때 불길이 삽시간에 확산된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각국 화재 사고를 통해 고층 빌딩에 적합하지 않은 소재로 판명 났지만 영국에선 허술한 규정 때문에 계속 사용돼 왔다. 토치 타워는 2015년 화재 이후 문제가 된 클래딩을 불연성 마감재로 교체하는 중이라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유사한 마감재를 썼는데도 한 곳에선 불길이 치명적인 화마(火魔)가 되고 다른 데선 별다른 인명 피해 없이 진화된 이유가 뭘까.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2015년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는 빌딩 착공 때부터 방화 설계를 어떻게 했느냐에 달렸다.
 
1974년 완공된 그렌펠 타워는 1차적으로 불길을 잡을 수 있는 스프링클러조차 갖추지 않은 노후 빌딩이다. 반면에 2011년 완공된 토치 타워 등 최신식 빌딩은 방화벽으로 각 층과 가구를 나누는 화재 차단격실(fire compartmentation)을 내재하고 있다. 강철 및 콘크리트로 불길을 차단하는 방화벽은 물론 화재 시 소방관이 접근할 수 있는 비상 방화 통로 등을 포괄한다. 불길이나 연기가 애초 발화된 공간을 벗어나지 않게 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이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이런 방화망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세계 초고층 빌딩들에서 경쟁적으로 발전되는 추세다. 두바이의 168층짜리 호화 빌딩 부르즈 칼리파의 경우 층마다 바깥 1층으로 안전하게 대피시켜 주는 화재 전용 엘리베이터(일명 ‘구명보트’)까지 갖췄다.
 
초고층 빌딩이 밀집한 두바이는 건조한 날씨 때문에 화재가 종종 일어난다. 2015년 12월 31일엔 도심에 있는 63층 규모 5성급 호텔 겸 레지던스인 ‘어드레스 호텔’에서 큰불이 났지만 역시 인명 피해 없이 진화됐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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