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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제가 원조 아이돌이잖아요, 지금은 아이 둘이지만요

중앙일보 2017.08.05 01:00 종합 16면 지면보기
28년 만에 돌아온 ‘분홍립스틱’ 가수 강애리자
강애리자는 EBS ‘딩동댕 유치원’ 음악감독으로도 일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강애리자는 EBS ‘딩동댕 유치원’ 음악감독으로도 일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40여 년 전 가족계획 표어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고민하는 요즘과 완전 딴 세상이었다. 당시 불이익을 본 가족이 있다. 한국 최초의 9인조 가족밴드 ‘작은별가족’이다. 지금 50대 이상이라면 이 노래가 생각나리라. 귀염둥이 꼬마의 낭랑한 목소리로 시작하는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나에겐 정말 아름다운 꿈이 있어요’(‘나의 작은 꿈’)를….

9인조 ‘작은별가족’ 6호 멤버
70년대 말 부모와 일곱 자녀 밴드
가족계획 시대 방송 출연 금지도

추억의 만화영화 주제가 목소리
76년 출시 ‘어린이왕국’ 음반 대박
‘달려라 하니’ 등 300곡 넘게 불러

6남1녀 식구 많아 번호로 불러
5번 오빠가 분홍립스틱 작사·작곡
7호 막내는 듀엣 ‘나무자전거’ 멤버

드라마 ‘여로’ 나온 국민 여동생
이제 국민 왕언니, 국민 할매로 변신
어디든지 달려갈 겁니다, 푸하하하~

 
부모와 일곱 자녀가 북 치고 장구 친 이 곡으로 1976년 데뷔 직후 인기 절정에 오른 ‘작은별가족’의 여섯째 아이였던 강애리자(55)는 “그때 나라가 너무했다”고 기억했다. “핍박을 받았다고 할까요. 방송사에 갔는데 갑자기 출연을 못한다는 거예요. 시청자들이 우리를 보고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다는 거죠.”(웃음)
 
일종의 블랙리스트였네요.
“그런가요. 한 번은 일본 국제가요제의 초청을 받았어요. 막내 인봉이(현재 남성 듀엣 ‘나무자전거’ 멤버)가 세계 화합을 외친 노래를 작곡해 예심에 보냈는데 주최 측에서 바로 본선에 오라는 겁니다. ‘이런 가족, 세상에 없다. 대상감이다’면서요. 그것도 결국 물거품이 됐죠. 올림픽 금메달 처럼 금의환향할 기회였는데요.”
 
요즘 젊은이에게 강애리자는 다소 낯설다. 하지만 그의 히트곡 ‘분홍립스틱’은 낯익다. 노래방 단골 레퍼토리다. 1988년 ‘분홍립스틱’ 이후 무대 뒤로 숨었던 그가 지난해 28년 만에 돌아왔다. 최근 신곡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애창곡 모음과 ‘마징가Z’ ‘달려라 하니’ ‘미래소년 코난’ 등 추억의 만화영화 주제가 30곡 모음 CD 2장을 내며 재기에 나섰다.
70년대 후반 발표한 만화영화 주제가 및 작은별가족 데뷔 음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70년대 후반 발표한 만화영화 주제가 및 작은별가족 데뷔 음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간 뭐하며 지냈습니까.
“아이 키우며 살았죠. 36개월 된 손녀도 봤고요. 96년 미국 이민을 갔다가 6년 전 돌아왔습니다. 3년 전 우울증 비슷한 무력감에 빠졌어요. 아들은 출가하고, 딸은 외국 가고, 16년 기르던 강아지는 죽고 등등 울음이 그치지 않았어요. 남편과 부산에서 서울까지 국토 순례도 했죠. 17일간 하루 35㎞씩 걸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얼굴이 매우 밝아 보이는데요.
“노래 덕분이죠. 영화음악을 하는 5번 오빠(‘분홍립스틱’ 작사·작곡자 강인구)가 데모곡 하나 녹음할 게 있다고 오라고 했어요. 집에 돌아오는 발길이 얼마나 가볍던지…. ‘아, 내가 노래를 놓치고 살았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28년간 쉬었으니 발음이 안 되고, 호흡도 달리고. 6개월간 이를 악물고 연습했습니다.”
 
어릴 때 목소리 그대로입니다.
“좋게 말해 아기 같죠. ‘목소리만 안 늙었다’는 말을 듣지만 속상한 게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가수에게만 옛날 목소리를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탤런트·배우는 나이에 맞게 익어가는데 말이죠. ‘예전보다 못하겠지만 욕은 안 먹겠지’ 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냈습니다.”
 
그런데 ‘5번 오빠’가 뭐죠.
“식구가 많다 보니 우리끼리 그렇게 불렀죠. 1, 2, 3, 4, 5호가 오빠, 제가 6호, 막내가 7호죠. 물론 다들 결혼을 했고요. 지금도 조카들을 1- 1, 2- 1, 3- 1, 손자들을 1- 2- A 식으로 부릅니다. 배우자까지 다 합하니 총 41명이나 됩니다.”
 
가족 모임이 대단하겠습니다.
“한창때는 명절·생일 등 1년에 40~50차례 만났습니다. 아버지가 엄하셨거든요. 지금은 다 모이기가 매우 어렵죠. 가족 전체가 함께한 지 20년쯤 된 것 같습니다.”
‘작은별가족’ 7남매.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강인혁(2호)·인엽(3)·인호(1)·인경(4)·인봉(7)·애리자(6)·인구(5).

‘작은별가족’ 7남매.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강인혁(2호)·인엽(3)·인호(1)·인경(4)·인봉(7)·애리자(6)·인구(5).

 
얘기는 ‘작은별가족’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가족 전체가 연주하고 노래하는 ‘자급자족 전천후 밴드’였다. 16인승 미니버스를 개조해 전국을 돌았다. 그는 “마이클 잭슨(1958~2009)의 형제밴드 잭슨파이브의 명성이 높았지만 우리처럼 부모님까지 활동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옛 기억을 꺼내볼까요. 아버지는 영화를, 어머니는 성악을 하셨죠.
“아들 다섯을 내리 낳으니 집안이 삭막했나 봐요. 어머니가 오빠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동생들은 형과 오빠들에게 음악을 배웠고요. 드럼을 빼고 따로 악기 레슨을 받은 적은 없어요. 클래식에서 출발해 국악을 거쳐 대중음악으로 장르를 넓혀 갔습니다. 동네 유치원·양로원 공연이 소문나면서 미 8군 무대에 서게 됐고, 방송·음반에도 진출하게 됐어요. 얼마 전 타계한 DJ 박원웅씨가 저희를 데뷔시켜 주셨죠.”
 
1977~78년이 전성기였습니다.
"저희가 꽤 오래 활동한 것으로 알지만 가족 전체가 함께한 건 2년 정도입니다. 오빠 넷이 한날한시 입대하는 진기록도 세웠죠. 오빠들 제대 이후 재결합을 꾀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성사되지 못했어요. 얼마 전 가족회의에서 ‘다시 모여 보자’고 제안했는데 4대 3으로 부결됐습니다. ‘추억 속에 남겨 두자’는 의견이 우세했죠.”
 
당시 먹는 것도 큰 문제였겠어요.
"어머니가 대단하셨습니다. 35인용 밥솥을 2개 지니고 다니셨어요. 하나로는 밥을 하고, 다른 하나로는 국을 끓였죠. 그때는 방송사 대기실을 다른 연예인과 함께 썼는데 어머니가 만든 김밥을 먹지 않은 연예인이 거의 없을 겁니다. 윤수일 오빠도, 돌아가신 김형곤 오빠도 생각납니다. 또 제가 최백호 오빠와 데뷔 동기랍니다.”
 
만화영화 CD가 눈에 띕니다.
"96년까지 만화영화 주제가를 불렀어요. 총 300곡이 넘을 겁니다. 76년 출시한 ‘어린이왕국’ LP가 대박이 났어요. 이번엔 ‘어른이왕국’이라 이름 붙였죠. 세월을 함께해 온 팬들에 대한 서비스입니다. 20년 뒤 또 내면 ‘어르신왕국’이 되겠죠.”
 
‘분홍립스틱’은 명곡 반열에 올랐습니다.
"저는 몰라도 그 노래는 다들 아시죠. 배우 송윤아(2002년 영화 ‘광복절특사’ 삽입곡) 덕분에 다시 유명해졌습니다. 윤아씨가 너무 고맙죠. 황치열·2NE1 등도 방송에서 불러줬고요. 20대부터 50대까지 즐기는 노래가 됐으니 영광일 뿐입니다. 제 모토가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행복하기’예요. 요즘처럼 행복한 적도 없습니다.”
 
가요계 환경이 많이 달라졌는데.
"스스로 ‘28년 된 신인 가수’라고 소개해요. 저 같은 가수가 설 자리가 좁다는 걸 알고 있어요. 20명 남짓 작은 모임에서도 불러 주면 어디든 찾아갑니다. 최호섭·리아·코니 등 가까운 가수들과 동물 애호 패밀리도 만들었어요. 제가 단장입니다. 곧 창단 공연을 엽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모양입니다.
"제가 ‘원조 아이돌’ 출신이잖아요. 지금은 ‘아이 둘’이지만요. 세 살 때 일본 무대에서 ‘아베 마리아’를 불렀습니다. 드라마 ‘여로’(1972)에도 나왔고요. 성우·모델도 했죠. 앞으론 꼭 개그를 하고 싶습니다. ‘국민 여동생’에서 ‘국민 왕언니’, 그리고 ‘국민 할매’로의 변신, 어디든 달려갑니다. 푸하하하하~.”
[S BOX] 요술공주 세리? 이젠 ‘요술할매’라 불러 주세요
만화영화 주제가만 300여 곡을 부른 강애리자가 가장 애착을 갖는 캐릭터는 누구일까. 혹시 ‘들장미 소녀 캔디’가 아닐까. 유쾌하고 씩씩한 그의 성격 때문에 기자는 캔디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제가 잘 웃으니까 간혹 그런 말을 듣지만 그렇다고 하면 돌 맞을 소리입니다. 캔디는 저와 달리 예쁘게 생겼잖아요. 하하하.”
 
강씨는 ‘요술공주 세리’를 꼽았다. 즉석에서 ‘요술공주 세리가 찾아왔어요 별나라에서 지구로 찾아왔어요’를 흥얼댔다. “1970년대, 90년대 두 차례 방영됐어요. 두 작품 모두 제가 주제가를 불렀습니다. 지금의 30대, 50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노래거든요.”
 
50대 중반에 손녀를 둔 강씨. 이제 자신을 ‘요술할매’라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나름 스타 출신인데 애들이 즐겨 부르는 만화영화 노래를 부르는 게 꺼림하지 않으냐고 재차 물었다. 그가 펄쩍 뛰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이들과 노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콘서트 앙코르곡으로도 최고입니다. 나이 든 관객도 흥겹게 따라 부르죠. 어디 저를 불러줄 방송사 없나요. 꼬맹이들에게 피아노 가르치고, 노래 부르고, 동화 들려주고, 다 잘할 수 있는데요.”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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