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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대놓고 정치 편향, 그런데 끌린다 … 넓지만 얕은 ‘지식소매상’ 유시민

중앙일보 2017.08.05 01:00 종합 20면 지면보기
DEEP INSIDE │ 유시민 현상 해부
국가란 무엇인가

선명한 색깔 좋아하는 고정팬 확보
책 자체보다 그가 썼기 때문에 선택

운동권 독서 바탕 정치의 교양화
지식에 대한 엄밀한 접근 소홀
공부량 늘리면 더 설득력 있을 것

비슷한 주제·메시지 ‘표절’ 없이
늘 새로운 글쓰기 보여줘 기대감

돌베개, 2017 개정판
 
거꾸로 읽는 세계사
푸른나무, 2004 개정판
 
유시민은 ‘유시민’이다. 출판·방송·강연 3종 세트 시장의 유력한 브랜드다. 방송 프로그램 ‘썰전’과 ‘알쓸신잡’의 유시민부터 떠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인기 방송인이 되기 훨씬 전부터 그는 출판계의 블루칩이었다. 1988∼2017년 출간한 단독 저서만 19권이다. 공저·편저·편역서·개정판·만화·전자책 등은 제외한 숫자다. 정치인과 공직자로서의 11년을 감안하면 놀라운 다작이다.
 
유시민 스스로 밝히기로 『거꾸로 읽는 세계사』(1988)는 80만 부 정도 나갔고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2002) 『후불제 민주주의』(2009) 『어떻게 살 것인가』(2013) 『나의 한국현대사』(2014) 등은 모두 10만 부를 넘겼다. 『국가란 무엇인가』도 2016년 촛불 정국을 거치며 판매량이 빠르게 늘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2015)은 출간 6개월 만에 10만 부를 돌파했다. 모든 저서의 누적 판매량은 어림잡아 200만 부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적 지식을 대중적으로 전달하는 소임을 자처하는 지식 소매상 유시민을 들여다본다.
 
◆인기 비결=지식소매상 유시민은 지식 자체를 천착하기보다는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발신하는 데 더 큰 관심이 있다. 자신이 “뚜렷한 정치적 편향을 가진 글쟁이”라고 시인하며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해 글을 쓴다”는 자의식을 내보인다. “뚜렷한 정치적 편향을 가진 글쟁이”라는 점은 상업적 측면에서 대단히 유리하다. 국민적 지명도를 갖춘 유시민의 정치색과 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독자로 확보돼도 의미 있는 규모를 확보하기 때문이다.
 
유시민의 ‘책’보다 ‘유시민’의 책이 중요하다. 공약을 보고 후보를 선택하기보다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에 호응하는 세태와 같다. 이런 맥락에서 ‘노무현을 뺀 유시민’은 생각하기 어렵다. 2002년 정계에 진출하며 내놓은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유시민이 정리한 『운명이다: 노무현 자서전』(2010)이 이를 말해준다.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정치·사회적 흐름은 유시민과 궤를 같이했으며 그가 누리는 인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든” 조지 오웰을 자신의 모델로 들면서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성취, 둘 다를 이루고 싶어합니다. 그런 글을 쓰면 상업적 성공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표현의 기술』).” 유시민이 누려온 상업적 성공의 배경에서 그의 글이 이룬 예술적 성취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일까? 폴리테이너(Politainer)로서의 인지도보다 더 클까? 글쎄다.
 
[그림=안충기 기자·화가]

[그림=안충기 기자·화가]

◆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의 작가적 지향이 잘 드러난 책이 『국가란 무엇인가』다. 2010년 5월 출간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 부 판매를 목전에 둔 2011년 4월 『국가란 무엇인가』가 나왔다. 지난해 촛불집회의 흐름을 타고 판매량이 급증했고 급기야 지난 1월 개정판이 나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이 책의 탄생과 재생의 일등공신이었던 셈이다.
 
유시민이 책에서 동서양 정치사상가들의 국가론을 되짚고 국가의 본질과 역할을 논한 끝에 내놓은 일종의 결론은 연합정치다. “연합정치를 통하지 않고서는 훌륭한 국가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 마지막 문장이기도 하다. 이념적으로는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의 연합, 현실적으로는 지지세 확장 및 안정화 전략이다.
 
요즘 정당 구도에 대입하면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의 진보세력과 중도세력이 연합해 이른바 수구보수 세력을 고립시키는 그림이다. 그러나 정치 현실에서의 연합정치와 정치사상의 보편적 주제로서의 ‘훌륭한 국가’가 책에서 유의미하게 연결되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국가에 대한 유시민의 생각을 알고 싶은 팬에게는 강력 추천이고, 제목대로 국가란 무엇인가를 알고 싶은 사람이면 이 한 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유시민이 정치사상 원전과 관련 연구서를 얼마나 많이 그리고 정확하게 천착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예컨대 마키아벨리의 경우 『군주론』의 마키아벨리만 다루는 건 많이 아쉽다. 마키아벨리의 공화제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는 『로마사 논고』를 읽어봤을까? 『국가란 무엇인가』가 ‘한 권으로 잘 정리된 국가론’이며 ‘국가론 담론을 소개하는 고전적인 입문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책 소개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유시민에게 필요한 것=지식 소매상 유시민을 규정하면 다음과 같다. 86세대 운동권의 독서 체험에 바탕을 두고 진보 정체성을 유지하며 현실 정치 및 공직 경험을 되짚어 정치·사회의 방향을 제시하는 작가. 요컨대 교양의 정치화 또는 정치의 교양화를 추구하는 작가다. 여기까지 보면 저서 35종 39권, 번역서 99종 106권을 낸 교양서 저술·번역가 고(故) 남경태(1960~2014)와 대비된다.
 
남경태는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중간 지대에서 학계 연구를 대중에 소개하는 일”을 자임했다. “이 시대가 낳은 ‘역사의 달인’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풍부한 지식과 예리한 비교 사관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역사를 전달한다.” 역사학자 신병주 건국대 교수의 평가가 보여주듯이 남경태는 지식 대중화 매체로서의 책의 가능성을 최대로 실현했다.
 
남경태를 길게 인용한 이유가 있다. 유시민의 정치화된 교양은 지식에 대한 엄밀한 접근에 소홀해질 수 있으며 나아가 과잉 정치의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유시민이 자신 안에 ‘더 많은 남경태’를 확충한다면 유시민의 정치 교양화 작업은 더욱 넓고 깊어질 것이다. 지식 소매상 유시민은 지식 생산자 또는 지식 도매상이라 할 수 있는 학자와 전문가의 고품질 상품을 더 많이 확보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공부량을 더 늘린다면 유시민의 방향제시가 더욱 큰 설득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표절은 없었을까?=유시민은 생산성이 높은 작가다. 따라서 표절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1992)이 토드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1989. 국내에는 1994년 번역됨)에서 내용과 구성을 가져왔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설령 영어판 구성을 참고했어도 표절은 아니다.
 
유시민은 첫 저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1988) 초판에서 “거의 100% 요약·발췌·인용”이지만 “출처를 밝히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어 생략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예컨대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의 문장은 니콜라스 할라즈의 『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1982)에서 가져왔으나 출처 표시가 없다. 다른 인용문도 마찬가지여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유시민은 ‘발췌 요약, 어디까지 표절이 아닐까?’(다음스토리펀딩, 2015년 5월 11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용 표시는 표현이나 문장을 그대로 가져온 경우에만 하면 됩니다. 누가 쓴 어떤 책 몇 쪽에서 가져왔는지 각주로 밝히는 것이지요.” 그의 말마따나 그대로 가져온 경우, 출전을 표시한 개정판을 낼 수는 없을까? 내년은 작가 유시민 30주년이다.
 
필자가 살펴본 유시민의 저서에서 자기 표절은 찾기 어려웠다. 분야가 정치·경제·역사·시사·독서·글쓰기 등 다양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작가로서의 자기 관리와 성찰이 철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슷한 주제나 메시지를 변주하지 않는, ‘늘 새로운 작가 유시민’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표정훈이 꼽은 유시민의 베스트 3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푸른나무, 1992)=비슷한 성격의 경제교양서가 허다한 지금도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단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로 심화시켜나간다는 것을 전제로.
 
●후불제 민주주의(돌베개, 2009)=회고적 에세이와 정치·시사평론, 헌법 가치와 민주주의 제도에 관한 성찰을 겸한다. 경험과 성찰이 어우러진, 유시민만이 쓸 수 있는 책이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생각의길, 2015)=글쓰기의 원칙과 이론부터 구체적인 노하우까지 친절하고 명쾌하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지만 자신감이 없는 당신에게 권할 만하다. 
◆ 유시민
1959년 경북 경주 출생. 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1년6개월 형을 받았고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를 썼다. 이해찬 의원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3년 흰색 면바지 차림으로 17대 국회의원 선서를 하러 국회 본회의장에 섰고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라는 말도 들었다. 2013년 정계 은퇴와 본격적인 방송 진출 뒤 ‘지식소매상 부활’ 시기를 누리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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