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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구한말 일제와 6년 전쟁, 왜 역사에서 사라졌나

중앙일보 2017.08.05 01:00 종합 22면 지면보기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
황태연 지음, 청계

대한제국 국군·의병 합쳐 14만명
청·러시아군 이긴 일본군에 항전
식민사학자들이 은폐한 기록 찾아
무기력한 패망 아닌 증거 보여줘

 
갑진왜란과 국민전쟁
황태연 지음, 청계
 
대한제국에 대한 새로운 연구는 2000년 무렵 시작됐다. 그 전에는 폄하 일색이었다. 망국(亡國)의 책임을 온통 뒤집어쓰며 고종과 그의 시대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2000년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펴낸 『고종시대의 재조명』(태학사)이 물꼬를 텄다. 이후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 서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등이 잇따라 새로운 흐름을 이어 갔다.
 
황태연(62) 동국대 교수의 신간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 『갑진왜란과 국민전쟁』은 그런 흐름을 타고 있지만, 연구의 양과 질에서 기존의 작업을 훌쩍 뛰어넘는다. 저자는 이에 앞서 지난해 『대한민국 국호의 유래와 민국의 의미』를, 올해 1월엔 『갑오왜란과 아관망명』을 펴냈다. 모두 대한제국 관련 책이다. 집필 중인 『한국 근대화와 정치사상』도 내년 출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이제 대한제국에 대한 오해와 폄하는 더이상 자리를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자신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대한제국 시절을 돌아보기조차 싫었던 이유는 뭘까. 한국의 근대적인 역사 서술은 일본 학자들의 손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이 가슴 아픈 일이다. 어떻게 이렇게 무기력하게 망할 수 있었을까, 이런 느낌을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것이다. 황태연은 그 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누락시켰고 해방 이후 한국 학자들도 눈치 채지 못했던 두 개의 사건을 복원해냈다. 1894년의 갑오왜란과 1904년의 갑진왜란이다. 한문·영어·독일어·불어·러시아어 등 외국어에 능한 장기를 살렸다.
 
정치학자가 대한제국 역사를 새로 썼다. 무기력했던 패배의 역사와 사뭇 다르다. [중앙포토]

정치학자가 대한제국 역사를 새로 썼다. 무기력했던 패배의 역사와 사뭇 다르다. [중앙포토]

“조선은 1894년의 갑오왜란으로 멸망했고, 대한제국은 1904년의 갑진왜란으로 멸망했습니다. 이 두 왜란이 그동안의 역사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두 번의 멸망만 눈에 들어올 뿐이고, 의병전쟁과 광복전쟁을 통해 치열하게 항거하며 승리한 두 번의 부활은 보지 못했습니다.”
 
1894년 6월 갑오왜란 때 침입했다가 명성황후 시해에 분노한 백성들의 무장봉기와 고종의 아관망명으로 일시 퇴각했던 일본군은 1904년(갑진년) 2월 다시 침입해 한반도 전역을 점령했다. 일제의 전면 침공에 국군과 민군(의병)이 힘을 합쳐 전국 각지에서 6년간 처절한 ‘국민전쟁’을 벌이며 저항했다. 그때 패배했다고 대한제국 국군을 오합지졸로 깔보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1901년 이미 한국군은 일제 외에 아시아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한 3만 대군의 ‘신식 군대’였고, 을사늑약(1905년) 이후 3만 국군과 민군이 합쳐 조직된 국민군은 14만1815명에 달했다. 청군과 러시아군을 이긴 일본군에 맞서 싸움을 싸움답게 해본 군대는 훗날 미군을 제외하고 대한제국의 국민군밖에 없었는데 이런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황 교수의 책은 지적 희열과 도덕적 의미와 함께 우리 근대사의 은폐된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대한제국은 무기력하기는커녕 오히려 당대 아시아 2위의 경제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었음을 국내외 기록과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입증한다. 또 구본신참(舊本新參)의 개혁노선으로 독자적인 근대화(광무개혁)에 성공하면서 근대적 신분해방의 ‘민국(民國·백성의 나라)’이었음도 흥미진진하게 확인시켜준다. 올해가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해 보인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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