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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8) “평생 망하지 않는 회사를 차리다~”

중앙일보 2017.08.04 12:00
새똥과 벌레들의 사체로 뒤덮혔던 버려진 정자를 청소하고, 뒷마당에 뒹굴던 플라스틱 탁자를 닦아 책상을 삼았다. 사방이 트이어 생각마저 막힘 없을 것 같은 공간, 일을 버리니 세상 어디에도 없을 사무실이 생겼다. [사진 조민호]

새똥과 벌레들의 사체로 뒤덮혔던 버려진 정자를 청소하고, 뒷마당에 뒹굴던 플라스틱 탁자를 닦아 책상을 삼았다. 사방이 트이어 생각마저 막힘 없을 것 같은 공간, 일을 버리니 세상 어디에도 없을 사무실이 생겼다. [사진 조민호]

 
땅을 파다가 명함을 팠다. 
 
퇴직하고 나서도 처음 만나는 사람이 없을 수 없다. 
다 버리지 않고 몇 장 가지고 있던 전 직장의 명함을 건넨다. 
말이 구차하다. “이건 옛날 명함인데요, 퇴직했고요, 
이름과 전화번호는 그대로이고요~ㅠㅠ.” 그나마도 다 떨어졌다.
 
이제는 말이 길어진다. 상대방 명함을 받고도 내가 건넬 게 없다. 
“저는 퇴직했고요, 명함이 없고요, 거창에서 땅 파고 있고요, 
이름은 머시기구요, 휴대폰 주시면 전화번호 찍어 드릴게요. 
아~ 필요 없으시다고요? ㅠㅠ.”
 
회사 이름은 ‘내 인생의 왕이 된다는 일’이다. ‘The King of My Life~’, 
줄여서 ‘KOML’. 사무실은 버려두었던 정자를 치워 마련했다. 
직원은 매일 출근하는 까마귀 두 마리와 뻐꾸기 부부 한 쌍, 
출근했다 말았다 하는 비정규직 강아지 세 마리와 개구리와 뱀.
 
 
손바닥만한 밭뙈기에 아침해가 내려앉았다. 옥수수와 토마토, 대파와 고추, 상추와 가지, 호박과 수박, 참외와 오이~ 모종을 심으며, 뙤약볕에 시름시름 앓는 밭에 물을 주며 과연 이 여린 것들이 내 입 속으로 들어갈 만큼 자라줄 건가 싶었다. [사진 조민호]

손바닥만한 밭뙈기에 아침해가 내려앉았다. 옥수수와 토마토, 대파와 고추, 상추와 가지, 호박과 수박, 참외와 오이~ 모종을 심으며, 뙤약볕에 시름시름 앓는 밭에 물을 주며 과연 이 여린 것들이 내 입 속으로 들어갈 만큼 자라줄 건가 싶었다. [사진 조민호]

 
단 한 번도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본 적 없으니 지금부터는 
왕으로 살아보자~. 이곳을 방문하는 누구든 단 며칠이라도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자~.
 
돈은 아마 벌리지 않을 거 같다. 손바닥만 한 밭뙈기를 키워봐야
밤을 틈타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와 고라니가 반은 뜯어 먹고, 
나머지 반의반은 벌레가 먹어치운다. 
내 밥상에 가끔 오는 친구들 대접 상에 쓰일 정도만 남아도 다행. 
 
서울 있는 친구에게 부탁했더니 내가 좋아하는 오렌지 컬러에 
포월침두의 문장(紋章)으로 써도 좋을 멋진 심볼까지 만들어 보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니 택배비까지 포함해 200장에 6500원~ㅎㅎ.
 
 
‘내 인생의 왕이 된다는 일’이라는 이름의 회사, KOML! 다시 갖게 된 명함을 자랑하려고 후배에게 보여주었더니 “KOML? 형, 이거 ‘고물’이라고 읽으면 되는 거야?” 한다. “야, 이 fhoiqewfh야~~ 그래, 나 고물이다. 어쩔래. 도와준 거 있냐” [명함 디자인 권도안]

‘내 인생의 왕이 된다는 일’이라는 이름의 회사, KOML! 다시 갖게 된 명함을 자랑하려고 후배에게 보여주었더니 “KOML? 형, 이거 ‘고물’이라고 읽으면 되는 거야?” 한다. “야, 이 fhoiqewfh야~~ 그래, 나 고물이다. 어쩔래. 도와준 거 있냐” [명함 디자인 권도안]

 
이거 좋다. 지갑에 두둑하게 명함이 다시 채워졌다. 돈보다 낫다. 
어깨에 다시 힘이 딱~ 들어간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도 괜히 주눅들 일이 없다. 
반칙왕의 타이거 마스크 같고, 호주머니 속의 권총 한 자루 같다. 
내 목소리에 다시 힘이 붙는다.
 
“누구 누구라고 하오. 거창 보해산 아래서 몸을 쓰고, 글을 쓰오~.” ㅋㅋ.
 
빨리 누군가에게 명함을 건네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있어도 찾아 올 사람이라곤 없는 산 속에서. 
가끔 포월침두에 들르는, 내가 ‘농심이’라고 이름 붙인 
너구리에게라도 줄까나~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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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필진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 퇴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이 없는 도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이러다 죽는 날 아침에 “뭐 이렇게 빨라, 인생이?” 할 것 같았다. 경남 거창 보해산 자락, 친구가 마련해준 거처에 ‘포월침두’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평생 처음 겪는 혼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달을 품고(抱月) 북두칠성을 베고 자는(枕斗) 목가적 생활을 꿈꿨지만 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도시의 취향과 입맛으로 인해 생활은 불편하고 먹거리는 가난했다. 몸을 쓰고, 글을 쓰자. 평생 머리만 쓰고 물건 파는 글을 썼으니 적게 먹어 맑은 정신으로 쓰고 싶은 글, 몸으로 쓰는 글을 쓰자, 했다. 올 3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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