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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J노믹스, 그 조급함에 대하여

중앙일보 2017.08.04 01:44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광기 제작2담당·경제연구소장

김광기 제작2담당·경제연구소장

“도대체 왜 이리 서두르죠.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아닌 것 같은데, 누가 정책을 주도하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기업인과 시장전문가를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소리다. 문재인 정부의 탄생을 응원하고 경제정책 방향인 ‘J노믹스’의 큰 틀에 공감하는 이들도 같은 얘기를 한다.
 
J노믹스가 표방하는 ‘사람과 일자리 중심’ ‘소득 주도’ 성장은 경제학적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거부하기 힘든 대의를 품고 있다. 저성장과 소득 격차, 청년실업 등 우리 경제의 고질병을 치유하고자 하는 고민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수출이 주도하는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으니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라는 건 국민적 바람이다.
 
그러나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이다.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경제 주체들이 손을 단단히 잡고 주변을 살피며 차근차근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현실은 어떤가. ‘돌격 앞으로’가 대세다. 최저임금·정규직 전환·복지·증세·탈원전 등 대부분의 정책이 그렇다.
 
한 중소기업인의 하소연을 들어 보자. “피부병으로 고생한 적이 있어요. 의사에게 먹는 약 처방을 부탁했더니 간 기능 검사부터 하더군요. 즉효 약이 있긴 하지만 지금의 간 상태로는 감당하기 힘드니 약한 약을 쓰면서 연고를 바르라고 했어요. 그때 무작정 강한 약을 먹었으면 피부병은 바로 나았겠지만, 간이 나빠졌을 겁니다. 요즘 우리 회사가 꼭 그런 꼴인데 정부는 무작정 독한 약을 처방하네요.”
 
문재인 정부는 주요 경제이슈들을 놓고 노사정이 모여 토론하고 양보하는 대타협을 시도하는 게 옳았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말이다. 스웨덴이나 네덜란드 같은 혁신형 복지국가들이 간 길이다. 우리도 기업이 희생하면 노조가 한발 물러서고, 정부는 규제의 판을 뒤집는 고통 분담의 구조개혁을 모색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를 건너뛰고 일방의 양보만 강요하는 판국이 됐다.
 
그래도 대기업 총수들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호프잔을 부딪치며 환하게 웃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사실 대기업들은 크게 손해볼 게 없다. 법인세 좀 더 내고 공정거래에 신경 쓰면 된다. 대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알아서 혁신하고 있다.
 
문제는 중소기업이다. 이들도 혁신을 거듭하며 성장할 수 있는 규제프리 여건, 금융 환경을 만들어 주려는 노력이 J노믹스에는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기업의 갑질을 근절해 중소기업과 상생토록 하겠다는 동반성장책 정도가 고작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경제를 자본가와 노동자, 부자와 빈자 사이의 모순·갈등 구도로 읽고 거기서 해법을 찾는 데 익숙한 운동권·시민단체 출신자들이 정책을 주도하기 때문이 아닐까. 임금·원전·부동산·복지 등 주요 정책을 이끄는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 그 대표적 인물로 거론된다. 그는 청와대와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 경제와 사회 정책을 망라해 문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실세 ‘왕수석’으로 꼽힌다.
 
현 정부 경제정책의 막후 실세로, 관료 출신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한동안 거론됐다.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읽은 것으로 판명되는 분위기다. 그의 최근 저서 『경제철학의 전환』을 꼼꼼히 읽어봐도 알 수 있다. 그가 주창한 슘페터식 경제혁신 전략은 현 정부 정책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그의 후배인 김동연 경제부총리나 반장식 일자리수석 등이 정책을 주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관료들은 정책 득실의 양면성을 헤아리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훈련이 잘 돼 있다. 하지만 운동권 출신자들에겐 이게 현실에 안주하는 반개혁적 행동으로 비쳐 충돌하기 일쑤였다. 개혁이 그렇게 쾌도난마식으로 성사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지금 경제정책 돌아가는 것을 보며 가장 답답해 할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변양균 아닐까 싶다.
 
김광기 제작2담당·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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