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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혐이다" vs "아니다" 왁싱샵 살인사건으로 다시 번진 여혐 논란

중앙일보 2017.08.03 15:59
지난달 5일 서울 강남에서 혼자 왁싱샵을 운영하던 30세 여성이 손님으로 가장한 배모(30)씨에게 살해됐다. 배씨는 왁싱을 받다 주인을 흉기로 찌르고, 강간을 시도하다 카드를 훔쳐 달아났다. 서울중앙지검은 강도살인, 강간 미수 등 혐의로 배씨를 구속기소 했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왁싱샵여혐살인사건 해시태그가 확산 중이다. 배씨가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에서 남성 BJ가 왁싱샵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고 해당 가게와 주인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여성이란 이유로 살해당하고 대상화되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도 난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며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늘고 있다. 오는 6일 오후 12시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여혐 살인 공론화 시위'도 열릴 예정이다. 지난해 5월 강남역 인근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23세 여성이 흉기에 찔려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여혐’ 반대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던 것과 비슷하다.
 
지난해 5월 강남역 10번 출구는 '강남역 살인 사건'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쓴 편지로 뒤덮였다. 오종택 기자

지난해 5월 강남역 10번 출구는 '강남역 살인 사건'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쓴 편지로 뒤덮였다. 오종택 기자

 
이들은 인터넷 방송을 하는 BJ들이 여성 혐오를 확대 재생산한다고 비판한다. 배씨가 범행 전 봤다는 인터넷 방송에서는 BJ가 해당 왁싱샵을 여성 혼자 있는 외진 곳이라 강조하고, “브라질리언 왁싱 도중 섰다"는 자막 등 주인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담겨있다는 주장이다. 아프리카TV에 다른 남성 BJ들도 여성 BJ를 초대해 가슴을 노출시키거나 스킨쉽, 성행위 묘사 등을 그대로 보여주는 선정적인 방송을 일상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남성 이용자가 많은 커뮤니티 등에서는 반대 목소리도 있다. “피해자가 여자든 남자든 범인이 이상한 사람이지 여혐은 아니다” “남성 전체가 여성을 강간하지 않는 이상 남성이라서 여성에게 사죄하라는 법은 생길 수가 없다” 등 여성 혐오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글이 다수 게재됐다.
오는 6일 오후 12시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여성 혐오 범죄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사진 아프리카TV 여혐살인 공론화 시위 카페]

오는 6일 오후 12시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여성 혐오 범죄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사진 아프리카TV 여혐살인 공론화 시위 카페]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여성 혐오는 미소지니(misogyny)를 번역한 표현이다. 미소지니란 여성에 반하는 뿌리깊은 편견,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낙인찍거나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생각 등을 의미한다. 지난 1월 표창원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얼굴을 ‘올랭피아’ 속 나체와 합성한 그림 ‘더러운 잠’을 국회에 전시했다 “부패한 권력 비판이라도 여성 혐오는 안 된다”는 여성단체의 반발에 부딪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국어 사전이 혐오를 '어떤 대상을 미워하고 싫어함'으로 정의한 것과 차이가 있다. 때문에 의미가 제한되는 '여성 혐오'보다 영어표현인 '미소지니'를 사용하는게 낫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경기도 안산시에서 50대 여성이 운영하는 마사지 업소에 강도가 침입해, 주인을 폭행하고 휴대폰과 체크카드 훔쳐 달아나는 등 여성이 운영하는 소규모 가게를 타겟으로 한 범죄는 비일비재하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특정 서비스 직군 종사자가 당연히 여성일 것이라는 고정 관념과 이들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며 "여성을 범죄 대상으로 특정한 것 만으로도 미소지니(여성혐오)"라고 지적했다. "여성 전반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특정 서비스 업종 종사자에 대한 범죄로 드러내는 것"이란 설명이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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