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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수재들의 '나머지 공부'…글쓰기 멘토링 실험 이유는

중앙일보 2017.08.03 14:33
서울대 정문. [중앙포토]

서울대 정문. [중앙포토]

지난 3월 초 서울대의 한 세미나실. 교수와 학생 각각 한 명씩인 1:1 지도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왜 이렇게 표현했지?" 교수가 학생에게 묻자 학생의 얼굴엔 불편한 기색이 감돌았다. 
 "입학 전 온라인 제출 과제라 대충 썼어요. 다시 쓰면 제대로 쓸 수 있어요."
 
이날 수업은 글쓰기 수업이었다. 교수는 학생의 글에 나오는 미숙한 표현을 지적했고, 서울대생의 답변에는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된 억울함이 묻어났다.
 
서울대가 2017학년도 1학기에 진행한 자연과학대학(자연대) 신입생의 글쓰기 멘토링은 이렇게 불편한 장면으로 시작했다. 
 
◇자연대 글쓰기 하위 24명 선정해 멘토링
 
수재 출신의 서울대 학생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수업을 시작했다. 253명 중 24명을 선정해 한 학기동안 글쓰기 1:1 멘토링을 받게됐기 때문이다.
 
앞서 자연대 신입생들은 입학을 앞둔 지난 2월 '과학기술과 인간의 행복'을 주제로 2000~3000자 에세이를 작성해 온라인으로 제출했다. 멘토링 대상자 24명은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들이 이 과제를 채점한 결과 하위 약 10%에 해당하는 학생들이다. 
 
이들의 글은 '글이 논제를 벗어났다'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하다' '표현이 명확하지 않고 비문이 많다'는 등의 지적을 받았다.
 
서울대가 이런 선택을 한 건 학부생의 글쓰기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자연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평가는 그 시범 사업의 일환이다. 
 
이재영 서울대 기초교육원장(영어영문학과)은 "신입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입시에 전념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학문 활동의 기초가 되는 글쓰기 교육의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1:1로 배정된 교수와 학생은 대체로 2주에 한 번씩 총 6차례 만나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다. 첫 수업교재는 이들이 과제로 제출한 글이었다. 
 
교수와 학생은 글을 쓴 과정에 대해 대화하고, 어떤 이유에서 이런 주장과 표현이 나왔는지 논의해 다시 쓸 글의 방향을 정했다. 기초교육원 관계자는 "다시 쓴 글을 받았을 때 실제로 글쓰기 능력이 다소 부족한 학생도 있었고 몇몇 학생들은 자신들의 주장대로 평균 이상의 글쓰기를 보인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불쾌했지만…"
 
학생들은 과제물 외에 직접 주제를 정해 2~3편의 글을 새로 쓰고 첨삭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멘토링을 시작할 때 불쾌해 했던 학생들의 반응은 한 학기가 지난 후 달라졌다.
한 학생은 "시작할 때만 해도 학점 인정도 되지 않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해 불만이 컸다. 20학점을 수강하면서 글쓰기를 하는 '가욋일'이 실제로 힘들었다. 하지만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고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을 함께 고민할 기회를 준 점에 크게 만족했다"고 했다.
 
학생들이 제출한 멘토링 평가서에는 "글쓰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줄었다" "글쓰기의 재미를 알게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내년엔 서울대 신입생 전체로 확대
 
서울대는 2018학년도부터 글쓰기 평가를 신입생 전체로 확대하고 수준별 글쓰기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영어와 수학은 이미 기초·대학·고급으로 나뉜 수준별 수업이 시행 중이다. 
 
2017학년도 2학기부터 공과대학과 의예과의 일부 글쓰기 과목에서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절대평가를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기초교육원 관계자는 "학생들이 서로 경쟁하기 보다 생각과 글을 공유할 수 있도록 평가 방식을 변경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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