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일기] ‘8인 체제’ 반년, 멍드는 헌재

중앙일보 2017.08.03 01:44 종합 29면 지면보기
임장혁 사회2부 기자

임장혁 사회2부 기자

5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차기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된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76일째 서울 종로구 북촌로 소장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의 방(305호)에서 소장실(301호)까지는 10m 남짓이다. 지명될 때부터 “임기 1년4개월짜리 소장”이라는 걱정을 들었던 그는 오늘 당장 임명돼도 임기가 1년1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헌재소장 공석 사태보다 심각한 문제는 1월 31일 박한철 소장 퇴임 후 헌재가 ‘8인 체제’로 방치됐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이선애 재판관 임명으로 가까스로 기능 정지 위기(7인 체제)에서는 벗어났지만 8인 체제도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이나 헌법소원 인용에는 재판관 7인 이상 출석과 6인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8인 체제에서 5대 3으로 위헌 의견이 많아도 위헌 결정이 나지 않는다. 만약 재판관이 9인이었다면 6대 3으로 위헌 결정이 내려졌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 같은 주요 사건들을 심판대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 결정이 미뤄지는 사건은 나날이 쌓여 가고 있다. 현재 계류 중인 사건 가운데 위헌법률심판은 57건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헌재의 ‘8인 체제’는 스스로가 위헌 심판 대상이 된 적도 있다. 조대현 전 재판관(2011년 7월 퇴임)의 후임자를 놓고 국회가 벌인 논쟁 때문에 437일간 계속된 8인 체제의 위헌성에 대해 헌재는 2014년 판단을 내렸다. 결과는 5대 4의 ‘합헌’이었지만 4명의 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냈다. 박한철·이정미·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국회가 국민의 다양한 가치관과 시각을 대표하는 재판관 9명의 견해를 모두 반영될 수 없게 만들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민 권리를 침해했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8인 체제는 헌법 정신을 온전히 구현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는 박 전 대통령 측이 8인 체제의 위헌성을 이유로 선고 연기를 주장하기도 했다.
 
헌재 정상화에 대한 1차 책임은 아홉 번째 재판관 지명권을 가진 문 대통령에게 있다. 청와대는 신임 소장 임명 뒤 새 재판관 후보를 지명하려는 계획을 세운 듯하다. 야권에서 반대할 만한 인물일 경우 소장 임명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자유한국당도 김이수 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 반대만 주장하며 8인 체제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치권이 이해득실에 골몰하는 동안 헌재가 멍들고 있다.
 
임장혁 사회2부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