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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첫 수업은 휴강인 이유

중앙일보 2017.08.03 01:41 종합 30면 지면보기
박신홍 중앙SUNDAY 차장

박신홍 중앙SUNDAY 차장

학창 시절 영어 참고서를 보면서 school엔 학교 외에 물고기 떼·무리란 의미도 있다는 걸 누구나 한 번쯤은 밑줄 그으며 외웠던 기억이 있을 거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뜻 같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아쿠아리움에서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무리를 지어 한 방향으로 움직이듯 성냥갑 교실에서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나아가는 게 우리네 학교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school의 어원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schole이란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로 원래 한가한 시간 또는 여가(leisure)란 뜻이란다. 고대 그리스에선 시간적 여유가 있는 계층만 학교에 갈 수 있었던 데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고, 당시 학생들이 휴식 시간에도 스승과 자유롭게 토론을 벌이곤 했던 모습에서 유래됐다는 얘기도 있다.
 
어찌 됐든 학교라는 단어의 기저에 한가로움과 여유로움이 내포돼 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비단 초·중·고교 학생뿐 아니라 인생이란 학교에 평생 적을 두고 살아가는 성인도 마찬가지다. 일에만 매몰되지 말고 여가도 적절히 챙기며 삶의 균형을 유지하라는 메시지를 school이란 단어는 던져주고 있는 셈이다. 『리바이어던』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역설했던 토머스 홉스도 “여가는 철학의 어머니”라는 명언을 남겼을 정도니, 서구 역사에서 여가의 중요성은 그 뿌리가 매우 깊다 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행복은 한가함 속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휴가철이다. 지난 주말 인천공항엔 사상 최다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부디 휴가지에선 잠시나마 모든 걸 내려놓고 ‘한가한 시간’을 맛보길 바란다. 이미 휴가를 다녀왔거나 아직 가지 않았더라도 틈틈이 짬을 내 삶의 쉼표를 찍어 보길 바란다. 인간은 기름만 넣으면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다. 대나무가 거센 비바람에도 꿋꿋이 뻗어나갈 수 있는 건 중간중간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마디가 많을수록 대나무는 튼튼하다. 우리의 삶에도 마디가 필요하다.
 
최근 베스트셀러에 오른 『라틴어 수업』엔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저자는 로마시대 교사가 강의 첫날 늘 하던 말을 전하며 대신 학생들에게 운동장에 나가 봄기운에 흩날리는 아지랑이를 보길 권하고 있다.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이라면서다. 인생도 아등바등 살지만 말고 한 박자 쉬어 가는 지혜가 필요하지 싶다. 첫 수업에 머리를 비워놔야 새로운 걸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의 나를 최대한 비워야 미래의 성취·행운·행복도 채워넣을 공간이 생기는 것처럼.
 
박신홍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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