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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 경찰도 외면한 학폭, 중학생이 남긴 쪽지가 밝혔다

중앙일보 2017.08.03 01:00 종합 10면 지면보기
지난 6월 15일 울산의 한 문화센터 옥상에서 중학생 이모(13)군이 투신해 숨졌다. 남긴 유서에는 “난 쓸모없는 인간이다. 아빠 미안해요. 사랑해요”라는 내용이 있었다. 학교폭력 관련성은 낮은 듯했다. 그러나 한 달쯤 뒤인 지난달 18일 이군 옷 주머니에서 ‘아이들이 날 괴롭혔고, 같은 반 아이들 전체가 날 무시한다’는 쪽지가 뒤늦게 발견되면서 경찰이 학교폭력 수사에 들어갔다. 그동안 이군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6월 울산서 중1 투신해 숨져
4월에도 자살 시도했는데
학교는 ‘학교폭력 아니다’ 결론
경찰은 조사도 않고 사건 종결
‘애들이 괴롭혀’ 메모 뒤늦게 발견

지난 6월 이군이 자살하기 전 남긴 쪽지.

지난 6월 이군이 자살하기 전 남긴 쪽지.

2일 경찰에 따르면 이군이 왕따를 당한 건 올해 중학교 입학 직후부터다. 이군이 무슨 말을 하면 아이들이 따라 했다. 이군은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전남 나주에 있는 외할머니댁에서 살았다. 아이들은 자신들과 다른 이군의 억양을 재미삼아 따라 한 것이다. 아이들은 장난이었지만 이군에게는 상처였다.
 
또 이군이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있으면 아이들이 그냥 툭 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재미 삼아 치고 지나간 아이가 10명이 넘었다. 이들은 한두 번 툭 건드렸지만 이군은 하루에 20여 번 이상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가 자신을 건드리는 걸 참아야 했다.
 
그렇게 이군은 조금씩 상처를 받았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28일 오전 11시쯤 이군은 자살을 시도했다. 이군이 자신의 의자에 앉으려고 하면 같은 반 친구들이 의자를 뒤로 빼는 등 훼방을 놓았다. 그런 모습을 보던 같은 반 친구들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군은 3층 높이의 복도 창문에서 뛰어내리려 했으나 지나가던 아이들이 잡아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다.
 
그날 학교는 이군을 울산 동구정신건강증진센터에 보냈다. 이군을 상담한 상담사는 ‘학교폭력’으로 판단해 학교 측에 연락했다. 당시 이군은 신학기 초부터 그동안 겪은 이야기를 하며 “화가 나 자살하려고 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군은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학교 측은 아버지와 상의 후 이군을 인근 위탁학교(학력 인정 임시학교)에 보냈다. 겉으로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군과 관련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이군의 아버지와 이군이 정신병자”라는 내용이었다. 이군은 이 소문에 죽기 전까지 매우 힘들어했다고 한다. 경찰은 소문 진원지를 학교로 추정한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교폭력 대책 자치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이군이 다니던 중학교는 5월 16일 위원회를 열었다. 결론은 ‘학교폭력이 아니다’였다. 경찰이 확인한 회의록에는 이군 피해 사실이 적시돼 있지만 가해 학생들이 장난을 친 정도로 판단했다. 또 이군에 대해 ‘초등학교 때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분노·충동 조절 장애다’는 취지로 기록돼 있었다. 경찰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경찰도 문제였다. 이군 아버지는 이군 자살 시도 한 달쯤 뒤인 지난 5월 20일 117을 통해 학교폭력을 신고했다. 이후에도 경찰에 여러 차례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이군에 대한 조사도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처리했다.
 
이군은 자살하기 직전에 아버지에게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집은 왜 이렇게 가난해요. 우리가 가난하니까 무시해서 (가해자도 사과하러 오지 않고) 스쿨폴리스 등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것 아니냐.” 이군 자살 뒤 이군 아버지는 지난달 22일 서울에 있는 경찰청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경찰청은 학교폭력 사건 전문가인 경북 문경경찰서 조유호 경사를 파견했고, 조 경사는 이군의 학교폭력 사건 전말을 조사했다.
 
조 경사는 “자살 시도 후 상담 때 그리고 이후 위원회에서도 학교폭력이 드러났다”며 “학교와 경찰, 지역사회 어느 한 곳에서만이라도 제대로 대응했다면 이군의 안타까운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군 아버지는 “학교·경찰 등 어른들이 사건을 은폐해 결국 내 아들이 죽었다”고 말했다. 해당 학교장은 본지 전화와 문자에 답을 하지 않았다. 
 
울산=위성욱·최은경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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