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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파이 커졌다는데 왜 살림은 팍팍해질까 … ‘소득 주도 성장론’의 출발점

중앙일보 2017.08.03 01:00 종합 18면 지면보기
낙수 효과냐, 분수 효과냐
지향점은 같다. 경제성장이다. 그러나 출발점은 다르다. 이윤 주도(profit-led) 성장은 기업의 이익이 늘면 가계 소득도 늘어나는 ‘트리클 다운(낙수)’ 효과를 말한다. 임금 주도(wage-led) 성장은 국민의 소득을 정부가 먼저 늘려주면 소비가 늘어 생산도 증가한다는 ‘트리클 업(분수)’ 효과를 주장한다. 한국이 분수 효과를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주요 국가 가운데 소득 주도 성장론을 표방한 것은 처음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소득이라는 게 무슨 수로 오릅니까? 가계소득을 어떻게 높입니까?”

신자유주의로 경제는 성장했지만
빈부격차 확대로 소비 줄어 침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임금 늘려 지갑 채워주기에 방점
사기업 임금 제어할 정책 제한적
“성장 전략 아닌 단기 처방” 주장도

 
문재인 민주당 후보=“첫째는 일자리, 그다음에 최저임금 인상 이런 많은 방안을….”
 
유 후보=“해법을 말씀해 주시라니까 자꾸 복지 얘기를 하시거든요.”
 
문 후보=“지금 우리 일자리가 위기라는 것은 인정하실 것 아닙니까. 그것보다 더 세금이 절실하게 필요한 데가 있겠습니까?”
 
지난 4월 28일 열린 대선후보 TV토론에서 후보들 사이에 벌어진 설전이다. 두 후보의 토론은 소득 주도 성장론을 둘러싼 논의를 함축적으로 보여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에는 성장만 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안 된다. 가계소득이 높아져야 소비를 촉진하고 내수가 살아나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고 그게 일자리로 돌아온다”며 소득주도 성장론을 폈다. 유승민 후보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정책 수단이 불명확하고 경제성장과 복지 정책을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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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원인은 임금 격차 등 불평등”
 
소득 주도 성장론은 저성장의 원인을 임금 격차 등 불평등에서 찾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소득 불균형 해소 없이는 경제 회복이 어렵다는 주장이 대두됐고, 그 연장선에서 나온 대표적 이론이다.
 
소득 주도 성장론의 핵심에는 노동소득분배율(국내총생산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자리 잡고 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소득 주도 성장론자들은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임금 상승률이 내수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는다고 본다.
 
이 때문에 근로자 임금을 올려 가계소득을 늘리고 소비를 증가시킴으로써 경제 활성화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가 주창한 트리클 업(trickle-up) 효과다. 분수 효과로도 불리는데, 가계 및 중산층 등의 총수요가 공급을 창출해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경제학 이론이다.
 
케인스 이전에는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이 지배적 이론이었다. 고전학파 경제학자인 프랑스의 장바티스트 세이(1767~1832)가 1803년 출간한 저서 『정치경제론』에서 경제 전체의 총공급이 필연적으로 동일한 양만큼의 총수요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29년 미국 대공황으로 전 세계에 불황이 닥치자 세이의 법칙은 도전을 받았다. 실업률이 25%까지 치솟자 수요가 공급을 따라주지 못했다. 케인스는 실업자가 생기는 까닭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그는 1936년 저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외부 간섭이 없으면 근로자가 일자리를 가질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고 지적했다. 자산가와 기업은 버는 돈을 다 쓰지 않고 저축하는 속성이 있어 소비 수요가 충분히 크지 않기 때문에 완전 고용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업자가 늘면 소비·투자 수요가 줄면서 기업은 생산 규모를 축소하게 된다. 실업자는 더욱 늘어난다.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적자 재정을 감수하는 등 공공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대표적”이라며 “당시 경기 부양책은 ‘펌프에 마중물 붓기(priming the pump)’로 불렸다”고 전했다.
 
케인스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완전하지 않으므로 정부가 개입해 소비와 투자 욕구를 북돋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큰 정부론이다.
 
케인스 경제학은 60년대 미국에서 로버트 케네디와 린든 존슨 행정부를 거치며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케인스 이론은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에 접어들면서 위기를 맞았다.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가 지속하면서 납세자의 세금 부담이 높아졌다.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면서 실업률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 이어졌다. 재정 확대에 의한 경기 자극 효과도 상쇄됐다고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전했다.
 
가장 거센 도전은 ‘합리적 기대이론’ 경제학자들로부터 나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커스(1938~ ) 등은 “오늘의 부양책으로 인해 미래의 납세 의무가 무거워질 것을 예견한 합리적 납세자들이 부양으로 얻은 추가 소득을 저축하기 때문에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명한 ‘루커스 비판’이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실시된 80년대 이후 세계 경제는 세계화로 인한 자유무역의 영향으로 기업 간 무한경쟁이 시작됐다. 동시에 시장이 커지면서 기업 이윤이 늘었다. ‘트리클 다운(trickle-down·낙수)’ 효과로 인해 세계 경제가 성장하고 개인의 부도 늘었으나 소득 격차는 커졌다.
 
노동소득분배율이 갈수록 떨어져 근로자의 호주머니는 얇아졌고 소비는 차츰 줄었다. 한국 노동소득분배율은 93년 76.47%에서 2014년 70.93%로 5.54%포인트 떨어졌다. 미국은 90년 50%대 후반에서 최근 40% 수준까지 떨어졌다. 사회 양극화가 깊어지면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체제가 도전받기에 이르렀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임금 주도 성장(wage-led growth) 전략이 국제무대에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후기 케인스 경제학파로 분류되는 마크 라부아(캐나다 오타와대), 엥겔베르트 슈톡하머(영국 킹스칼리지) 교수가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 ‘임금 주도 성장론:개념, 이론 및 정책’(2012년)을 통해 제시했다.
 
OECD·IMF·세계은행도 양극화 해소 강조
 
라부아·슈톡하머 교수는 경제 체제를 임금 주도와 이윤 주도로 나눈다. 임금 주도 경제체제에서 임금 소득자는 이윤 수혜자에 비해 소득에서 지출하는 부분이 더 크다. 따라서 임금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소득을 재분배하면 소비지출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미국·일본·독일 등에서 임금 인상을 추진한 것도 이런 이론의 영향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면서 8000억 달러 이상의 재정 부양책을 내놓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대기업에 임금 인상을 독려했다.
 
‘임금(wage)’ 개념은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자영업자의 노동소득을 포괄하는 ‘소득(income)’ 개념으로 확대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등은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 개념을 제시하며 소득분배와 양극화 해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소득 주도 성장론은 아직은 소장파 학자들이 주장하는 비주류 이론에 머물러 있다. 라부아·슈톡하머 교수도 보고서에서 “최저임금 인상, 사회보장제도 강화, 노조 입법 개선, 집단 협상력 강화 등 노동소득분배율을 올릴 가능성 있는 정책들은 정통 경제학 지식에 반한다”고 썼다.
 
이론적·정책적 혼란도 만만찮다. 실효성 있는 정책 수단이 한정돼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박강우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2015년 더미래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사기업 임금과 자영업자의 소득이 정부의 정책 변수가 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소득 주도 성장론이 위기에 내릴 수 있는 처방이지 경제성장 전략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2015년 토론회에서 “성장 정책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설계돼야 하며 세부 정책과 혼재돼서는 안 되는 최상위 개념”이라며 “분배의 개선에 치중해 성장을 추동할 수 있다는 견해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지적했다. ILO도 소득만 늘리면 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보고서는 “생산량 증가에 비례해 임금이 늘어나는 경우에만 부채가 늘지 않으면서 소비지출은 늘어나게 된다”고 밝혔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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