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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한국 대표 아들은 일본 대표 ‘우당탕 럭비가족’

중앙일보 2017.08.03 01:00 종합 23면 지면보기
‘럭비 삼부자’ 아버지 구동춘씨와 첫째 지윤, 둘째 지원(왼쪽부터)씨가 지난달 28일 인천광역시 강화의 자택 근처 토담카페에서 함께 포즈를 취했다. 둘째 지원은 사상 첫 한국인 일본대표가 됐다. 첫째 지윤은 한국 대표 제안을 받기도 했다. [김춘식 기자]

‘럭비 삼부자’ 아버지 구동춘씨와 첫째 지윤, 둘째 지원(왼쪽부터)씨가 지난달 28일 인천광역시 강화의 자택 근처 토담카페에서 함께 포즈를 취했다. 둘째 지원은 사상 첫 한국인 일본대표가 됐다. 첫째 지윤은 한국 대표 제안을 받기도 했다. [김춘식 기자]

이웃나라 일본은 럭비 열기가 뜨겁다. 단일 종목 대회로는 축구 월드컵에 버금가는 2019년 럭비 월드컵을 유치했다. 일본은 전통적인 럭비 강국이기도 하다. ‘럭비인은 강인하고 충직하다’는 인식 덕분에 직장 면접에서도 럭비 선수 출신은 가산점을 받는다고 한다.
 

아버지 구동춘씨 12년간 태극마크
한전 거쳐 일본 혼다서 선수 생활

둘째 지원, 첫 한국 국적 일본 대표
첫째 지윤, 한국 대표 제안 받기도

어머니 “다칠까봐 늘 걱정되지만
럭비 보다가 다른 운동 보면 시시”

세계 10위권을 지키고 있는 일본 럭비 국가대표팀에는 한국인 선수가 있다. 키 1m83cm, 몸무게 122㎏의 탱크 같은 체격을 갖춘 구지원(23·혼다)이다. 그는 8명이 짜는 스크럼 맨 앞에서 상대 선수와 직접 맞부딪치는 ‘3번’(타이트헤드 플롭) 포지션을 맡고 있다. 지난해 일본 럭비대표팀에 발탁된 구지원은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강한 체력과 투지를 앞세워 주전 자리를 노리고 있다.
 
구지원의 친형인 구지윤(25)도 일본 혼다 소속 럭비 선수다. 키 1m77cm, 몸무게 92㎏인 구지윤은 발이 빠르고 패스 능력이 뛰어나다. 축구의 플레이메이커 같은 10번(플라이 하프)을 맡다가 지금은 공격과 수비를 겸하는 12번(인사이드 센터) 또는 13번(아웃사이드 센터)으로 자주 나선다. 일반 사원으로 혼다에 입사한 구지윤은 오전엔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오후에는 운동을 한다. 그는 지난해 한국 대표팀에 뽑혔지만 혼다 신입사원 연수 때문에 합류하지 못했다. 같은 팀이지만 프로선수 자격인 동생의 보수가 더 좋다. 동생 구지원은 구단으로부터 집과 차량도 제공받는다. 형 구지윤은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내년에는 프로로 전향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구지원·지윤 형제는 지난 주말 짧은 휴가를 받아 인천광역시 강화에 있는 집을 찾았다. 산중턱에 있는 전원주택에서 호랑이 같은 아버지 구동춘(54·1m83cm, 105㎏) 씨가 형제를 맞았다. 연세대와 한국전력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구 씨 역시 1984년부터 12년간 국가대표 ‘1번’(루슨헤드 플롭)으로 활약한 럭비인 출신이다. 일본 혼다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뒤 현재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아버지는 장남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들 둘을 ‘럭비의 본고장’ 뉴질랜드로 유학 보냈다. 형제는 거기서 2년간 기초를 다졌고, 일본으로 옮겨 고교·대학에서 주전으로 뛰었다.
 
아버지 구동춘씨는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잠깐 귀국할 때도 아침마다 데리고 나가 훈련을 시켰다. 장남 구지윤은 “럭비를 시작한 건 아버지의 강권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점점 럭비의 매력에 빠져들어갔다. 럭비가 위험한 운동이라고 하는데 훈련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다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둘째 구지원은 “아버지는 훈련을 할 때면 ‘저 사람이 우리 아버지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진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 덕분에 우리 형제가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고 말했다. 아버지의 체격과 흡사한 구지원은 같은 ‘플롭’인 아버지의 개인지도를 받아 가량이 급성장했다.
 
동생이 소속된 일본 국가대표팀 ‘선 울브스(Sun Wolves)’는 세계 럭비 최강 클럽들이 맞붙는 ‘슈퍼 럭비’ 출전을 위해 만든 팀이다. 2019 럭비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이 자국 리그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프로 최강 선수들로 선발팀을 구성한 것이다. ‘선 울브스’에는 일본에 6개월 이상만 거주하면 국적에 상관없이 선발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이 팀에 뽑히면 다른 나라 대표로는 뛸 수 없다. 구지원은 일본 럭비 사상 첫 한국인 대표선수다. 그는 “형이 한국 대표팀에 선발되면 형제 대결이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세계랭킹 28위)은 일본 대표 2진에도 하프 스코어로 지는 수준이다.
 
어머니 이은숙(49) 씨는 호리호리한 체격이다. 그는 두 아들이 격한 운동을 하다가 다치지 않을까 늘 걱정을 하면서도 어느 새 반(半) 럭비인이 돼 있었다. 이씨는 “럭비가 거친 운동이라지만 그 어떤 스포츠보다 남성적이다. 격렬한 럭비 경기를 보다가 다른 운동을 보면 시시해서 못 볼 정도”라며 “한국에선 럭비가 비인기 종목이라 좋은 선수들이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게 안타깝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럭비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화=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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