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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미·일 정상 간 전화통화 더 늦출 이유 없다

중앙일보 2017.08.02 01:05 종합 30면 지면보기
청와대가 어제 여름휴가 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을 공개했다. 오대산 산행 길에 마주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 등이 찍힌 사진이다. 문 대통령은 경남 창원으로 옮겨 나머지 휴가를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북한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정세가 크게 악화돼 있지만 상황 관리에 빈틈이 없다면 대통령 휴가 자체는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 ‘예정된 휴가를 가지 않으면 국민들이 더 불안해할 것’이란 청와대 측 설명엔 나름의 일리가 있다. 해군사령부가 있는 창원에선 북한의 관련 동향을 보고받고 군 지휘권을 행사하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다고 한다.
 

방통위장 임명은 휴가지서 전자결재하며
한·미 정상 통화, 미·일 정상 뒤로 밀리니
코리아 패싱 놓고 국민 불안 커지는 것

문제는 국제 공조 등 후속 대책 마련이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이후 미국과 일본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50분 넘게 전화 통화를 갖고 탄도미사일방어(BMD) 체계 강화 방안 등을 협의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반발 수위를 높였다. 중국은 문재인 정부의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를 비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제재안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 외교관 수백 명에 대한 추방 방침을 밝혔다. 주변 4강의 충돌 조짐으로 ‘8월 위기설’까지 나온다.
 
문 대통령 휴가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자 청와대는 ‘한·미 정상 간의 전화 통화는 문 대통령 여름휴가가 끝나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일 정상 간 통화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건 군 지휘권을 행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휴가지에서 동맹국 정상과의 전화 통화를 굳이 늦추는 이유가 뭐냐는 거다. 문 대통령은 어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을 여름 휴가지에서 전자결재로 원격 임명했다. 한·미, 한·일 정상 간 통화가 방통위원장 임명에 비해 가볍다거나 시급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김정은 정권은 핵과 미사일에 관한 한 미국만을 상대하겠다며 우리 정부를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미국은 한국을 제쳐두고 북한과 직접 협상에 나서거나 대북 선제타격에 나설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마당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에게 북핵을 해결할 힘이 없다’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폭주를 막을 힘은 한·미 동맹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한·미·일 3각 협력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북한 도발 직후 한·미 정상이 직접 통화해 대응책을 찾는 건 지극히 당연하고, 또 그래야만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통화는 미·일 정상 간에 먼저 이뤄졌다. 그러니 예정된 휴가를 하루 늦춰 떠났어도 국민 불안이 잠들지 않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휴가 이후로 늦출 이유가 없다. 늦어질수록 한·미 동맹에 균열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인상과 오해를 만들 소지도 있다. 엄중한 상황에선 무엇보다 상황 인식이 엄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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