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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朴 싸대기 이어 文 뒤통수"…전운 감도는 성주 소성리

중앙일보 2017.08.01 16:00
1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풍경. 집회가 열리지 않아 한산한 모습이다. 성주=김정석기자

1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풍경. 집회가 열리지 않아 한산한 모습이다. 성주=김정석기자

1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발사대 2기가 배치된 성주 사드 기지와 2㎞ 정도 떨어진 곳이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미국 위한 사드 배치 반대한다!' 같은 거친 문구가 적힌 수십 장의 현수막들은 이곳이 사드 배치를 둘러싼 격전이 벌어지는 장소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 이면엔 긴장감 가득
북한 미사일 도발이 낳은 국면 전환
"촛불이 낳은 정권이 뒤통수 친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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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날 소성리 마을회관 주변은 한적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집회도 없었다. 눈에 띄는 인적이라곤 성주 사드 기지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경찰관 5명과 마을회관 앞 그늘막 아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주민 대여섯명이 전부였다. 이날 만큼은 서로를 헐뜯는 확성기 소리 대신 매미 소리가 울려퍼졌다.
 
1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인근 한 주택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성주=김정석기자

1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인근 한 주택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성주=김정석기자

마을회관 주변의 현수막과 경찰관, 가끔씩 상공을 오가는 시누크 헬기만 제외하면 소성리는 여느 시골 여름 풍경과 다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마을 전체를 감돌고 있는 극도의 긴장감이 겉으로 드러났다.
 
강현욱(35) 사드저지종합상황실 대변인은 "지난 4월 26일 새벽 사드 발사대 2기와 엑스밴드 레이더가 기습 배치되고 최근에는 보수단체들이 마을회관 앞에서 집회를 벌이면서 주민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며 "최근 문재인 정부가 발사대 4기 추가 배치를 지시하면서 주민들이 더욱 민감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근 높아진 긴장감의 원인은 지난달 28일 밤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화성-14를 시험발사하면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성주 사드 기지에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소성리 주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앞서 정부가 성주 사드 기지에 대한 일반환경영향평가를 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말을 뒤집은 것이어서 반발은 더욱 거셌다.
 
1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인근에 만들어진 돌탑. 사드 배치 철회와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뜻에서 만들어졌다. 성주=김정석기자

1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인근에 만들어진 돌탑. 사드 배치 철회와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뜻에서 만들어졌다. 성주=김정석기자

이날 찾은 소성리에서도 마을 주민들은 문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을 드러냈다. 주민들은 "박근혜에게 싸대기 맞고 문재인에게 뒤통수 맞았다"는 말을 유행어처럼 했다.
 
1년여 전까지만 해도 성주군 성주읍에서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던 박철주(52) 사드저지종합상황실 실장은 "촛불로 집권한 정부인 만큼 촛불의 요구에 귀기울일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문 대통령이 알아서 사드를 철회해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전 정부의 '적폐 1호'인 사드를 그대로 배치하겠다고 하는 것은 문 대통령 스스로 전 정권과 다름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성리와 인접한 경북 김천시 대덕면에서 양파와 오이 농사를 짓던 농부 박경범(54)씨도 사드 배치를 막기 위한 활동을 1년 가까이 하다 보니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란 직함을 얻게 됐다. 박씨는 "예전엔 농사를 지으며 생기는 병해충이나 가뭄·홍수, 크게는 쌀값 인상 문제로 고민을 했는데 지금은 사드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1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무대에 만들어진 조형물. 성주=김정석기자

1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무대에 만들어진 조형물. 성주=김정석기자

그는 "성주·김천 주민들은 처음에 정부의 일방적인 사드 배치 결정으로 분노해서 일어났지만 투쟁 기간이 길어지면서 공부도 하고 대화도 나누면서 사드가 한반도 어디에도 배치되면 안 된다는 결론을 깨달은 것"이라며 "노무현 정부의 국방·외교·안보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미국 눈치만 보는 정책 결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소성리 마을회관을 지키고 있는 주민과 종교인, 시민단체 회원들은 여전히 성주 사드 기지로 향하는 차량을 확인하는 작업을 유지하고 있다. 강현욱 대변인은 "군과 경찰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다. 사드 배치를 막는 것으로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성주=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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