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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7) "거 봐, 내가 은퇴하길 잘 했지!"

중앙일보 2017.08.01 12:00
지난 3월, 나의 은퇴를, 귀촌을 환영하듯 포월침두 마당의 하늘이 맑게 열렸다. 이런 하늘 처음 보지? 미쳐야만 생존하는 세상에 살면서 어디 하늘 한 번 쳐다 보기나 했겠어? 한다. 하늘도 환영한 나의 은퇴라~ 기분이 좋았다. [사진 조민호]

지난 3월, 나의 은퇴를, 귀촌을 환영하듯 포월침두 마당의 하늘이 맑게 열렸다. 이런 하늘 처음 보지? 미쳐야만 생존하는 세상에 살면서 어디 하늘 한 번 쳐다 보기나 했겠어? 한다. 하늘도 환영한 나의 은퇴라~ 기분이 좋았다. [사진 조민호]

 
 

'내가 좋은 광고 가로막는 걸림돌' 생각에 은퇴
기발한 후배 광고 보고 잘 했다 확신 들어

은퇴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너무 이르다, 솜씨가 아깝다, 더 벌어야지, 끝까지 버텨, 
놀면 뭐 해, 광고로 먹고 살던 놈이 시골간다는 게 말이 되냐, 
너 다시 돌아온다~."
 
확신이 있었다. 내가 있어 더 좋은 광고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광고가 나올 수도 있는 길을 내가 떡~ 하니 막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 어렸을 때, 선배 광고인에게서 느꼈던 것처럼. 
변하는 세상과 미디어 환경에 눈감고 자신의 방식만 고집하던 나.
 
내 확신이 맞았다. 나 같이 늙은 광고쟁이의 머리 속에서는
절대 나오지 못할 아이디어. 광고 같지 않으면서 광고임에 분명한, 
장사를 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 분명히 장사를 하고 있는, 무엇보다 
광고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하는 광고를 만났다. 
찾아 보니 나와 한 직장에서 오래 같이 근무했던 후배가 만들었단다.
 
 
 
▶영상 설명: 뿔이 난 고객과 뿔에 받혀야 하는 상담원의 마음을 이어주는 '마음이음 연결음' 캠페인. 아이디어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이 캠페인을 보면서 내가 만들지 않았으나 단지 내가 광고인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해진다. [제공 애드쿠아 인터렉티브] 
 
 
기업의 고객센터에 전화하는 대부분의 고객은 이렇다.
"자, 연결만 되면 욕부터 할테야. 뭐냐고~ 이따위로 만들었냐고~. 
아, 열받아. 빨리 안 받고 뭐해~."

벌개진 얼굴로 상담원이 연결되기만 
기다린다. 그런데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하는 연결음 대신에 
 
“착하고 예쁜 우리 딸이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
“사랑하는 제 아내가 상당 드릴 예정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
 
실제 상담원의 아버지, 남편, 딸의 목소리가 연결음으로 나온다. 
"아놔~ 이거 뭐지? 나 화 내도 되는 거야? 이 상황에서 욕하면 이상한 거지?
뭐라고 이야기 하지?"

“아아, 이거, 참, 어, 고생, 많으십니다” 할 수밖에.
 
상담원도 누군가의 딸이고 아내이고 엄마라는 사실에 공감한다면 
누군들 욕을 하고, 남자 바꾸라고 하고, 막무가내의 요구를 할 수 있을까? 

이 연결음을 들은 사람은 그 기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기막힌 아이디어 아닌가? 내가 과연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을까?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후배들을 도울 수나 있었을까? 
"야, 이거 돈 안되는 아이디어야. 돈 되는 아이디어 가져와!" 하지 않았을까?
 
 
'마음이음 연결음' 캠페인을 만든 애드쿠아 인터렉팁 대표 전훈철. PD 였다가, CD 였다가, 감독이었다가, 이제는 대한민국 광고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광고회사의 사장이 된 내 후배 훈철이. [사진 애드쿠아 인터렉티브]

'마음이음 연결음' 캠페인을 만든 애드쿠아 인터렉팁 대표 전훈철. PD 였다가, CD 였다가, 감독이었다가, 이제는 대한민국 광고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광고회사의 사장이 된 내 후배 훈철이. [사진 애드쿠아 인터렉티브]

 
"거 봐~ 훈철아. 나 은퇴하길 잘 했지?" 
나는 이제 광고쟁이가 아니라서 산에서 몸을 쓰고 글을 쓸테니
너는 나 없는 세상에서 광고로 세상을 바꾸어라~.
 
근데 이거 광고하는 사람한테만 해당되는 얘기일까? ㅋ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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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필진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 퇴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이 없는 도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이러다 죽는 날 아침에 “뭐 이렇게 빨라, 인생이?” 할 것 같았다. 경남 거창 보해산 자락, 친구가 마련해준 거처에 ‘포월침두’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평생 처음 겪는 혼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달을 품고(抱月) 북두칠성을 베고 자는(枕斗) 목가적 생활을 꿈꿨지만 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도시의 취향과 입맛으로 인해 생활은 불편하고 먹거리는 가난했다. 몸을 쓰고, 글을 쓰자. 평생 머리만 쓰고 물건 파는 글을 썼으니 적게 먹어 맑은 정신으로 쓰고 싶은 글, 몸으로 쓰는 글을 쓰자, 했다. 올 3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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