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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ICBM 잇단 성공으로 미국에 등장하는 새로운 대북 옵션은…

중앙일보 2017.07.31 18:17
 북한의 2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이후 미국 조야에서 새로운 대북 옵션이 대두되고 있다.  
구체화된 북한의 ICBM과 핵 위협이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등장해 한반도의 안보 지형과 동북아 역학관계를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키신저 "주한미군 철수카드로 중국과 북 붕괴 협력"
이미 백악관에 미·중 합작 정권교체론 전달
전 대북인권특사 "남한 주도 한반도 통일 포기해야"
WSJ "경제수단 동원해 김정은 체제 즉각 붕괴시켜야"

새로운 옵션은 ^미·중 합작을 통한 북한 정권 교체 ^남한 주도 통일 포기 ^즉각적인 김정은 체제 붕괴 등이다. 주한미군과 남북통일 등과 관련해 기존 방침과 다른 접근법을 쓰고 있어 사뭇 충격적이기도 하다. 이에 따르면 자칫 한반도 문제의 주체인 남한이 소외될 가능성도 있다.        
첫 번째 옵션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제안이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 당시 미·중 수교를 이끈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지단달 2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북한 정권이 붕괴된 이후 상황에 대해 미국이 중국과 사전에 합의하면 북핵 문제 해결에 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북한 붕괴 뒤 한반도에서 주한미군 대부분을 철수한다는 약속도 합의에 포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철수 카드로 북한 정권 붕괴 후 미군과 국경선을 마주봐야 한다는 중국의 두려움을 불식시키고 정권교체에 합의하도록 이끌 수 있다는 게 키신저의 시각이다.  
키신저는 자신의 구상을 이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비롯한 다른 백악관 관리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 교체에 대한 중국의 동의 여부에 대해선 회의적 의견이 적지 않다. 현재로선 중국이 이를 통해 얻는 이익이 김정은 체제 유지를 통해 얻는 이익보다 크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추진 중인 대북 추가 제재에도 미온적이다.  
NYT는 "중국이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 등) 약속을 믿겠느냐"며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러시아를 서방과 통합한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키신저 구상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예측불가능한 김정은 정권으로 인해 향후 중국이 감수해야 하는 손실이 커질 경우엔 중국의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31일 “키신저 전 장관의 제안은 전형적인 강대국(미국과 중국) 간의 큰 거래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역사적으로 이 같은 강대국 간 거래에서는 안타깝지만 이해당사국(한국)의 미래나 처지는 고려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왼쪽)이 2016년 12월 2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왼쪽)이 2016년 12월 2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대북 인권특사를 지낸 제이 레프코위츠는 남한 주도의 통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역시 NYT 기고를 통해서다. 그는 “중국에 북한 정권 교체를 설득하기 위해 미국은 ‘하나의 한국’ 정책, 통일된 한반도를 포기하는 진짜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정권 교체를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카드로 내세운 키신저처럼 중국이 반대하는 남한 주도의 통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북한 정권 교체론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지난달 20일 아스펜 안보포럼에서 “미 정부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북한의 핵 개발 능력과 핵 개발 의도가 있는 인물을 분리해 떼어놓는 것”이라고 밝힌 것과도 맥이 닿아 있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은 허비할 시간이 없다. 정권 교체(레짐 체인지)에는 침략이나 즉각적인 남북통일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며 “북한 은행을 국제금융시스템에서 분리시키는 등 경제적인 수단으로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내에서 김정은 정권 교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북한의 ICBM 개발이 완성 단계에 가까워짐에 따라 효과적인 대북 옵션이 점점 사라지는 딜레마에 처했기 때문이다.  
 
마이프 폼페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마이프 폼페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이런 분위기는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 대사의 트위터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 트위터에 “북한에 대해 대화하는 건 끝났다. 중국은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이는 중국에 대한 압박인 동시에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AP통신 등은 “현 상황에선 중·러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채택하기 어렵다”며 “헤일리 대사의 발언이 점점 강경해지는 것도 결국 미국의 대북 독자제재에 대한 명분을 쌓겠다는 의도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거의 모든 옵션은 중국의 행동에 따라 그 효과가 달려 있다. 이것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안고 있는 원초적인 한계”라고 지적했다.  
남한 소외론이 나오는 등 동북아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휴가를 마친 뒤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할 예정이라고 청와대 관계자가 31일 전했다. 반면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50분간 전화통화를 통해 북한 ICBM 대응책 등을 논의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차세현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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