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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시효완성채권 26조원 일제 소각…214만명 '추심에서 해방'

중앙일보 2017.07.31 14:16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 25조원 어치가 올해 안에 소각된다.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 25조원 어치가 올해 안에 소각된다.

소멸시효가 완성돼 채무자가 법적으로 ‘갚을 의무’가 없는 금융채권 25조7000억원 어치가 올해 안에 소각된다. 해당 채무자 214만명은 추심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연체 사실 기록도 사라진다.
 

금융공공기관 8월 말, 민간 금융사 올해 안에 채권 소각
총 25.7조원 어치…1인당 평균 1200만원 채권 사라져
'갚을 법적 의무' 없는데도 추심에 시달리는 일 없게 돼
소멸시효완성채권의 추심·매각 금지 법 개정도 추진

금융위원회는 31일 최종구 금융위원장 주재로 금융권 간담회를 열고 이러한 내용의 소멸시효완성채권 처리방안을 확정했다. 그동안 일부 금융회사가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자체적으로 소각해 없앤 적은 있지만 일률적으로 금융권 전체가 소각을 결정한 건 처음이다.  
 
소멸시효완성채권은 말 그대로 소멸시효가 지나서 채무자가 법적으로 더 이상 갚을 의무가 없는 채권을 뜻한다. 금융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상법 제64조)이지만 통상 법원의 지급명령 등을 통해 시효가 한번 이상 연장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연체에 빠진 지 약 15년이 지나야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금융위는 우선 국민행복기금과 금융공공기관(신용·기술보증기금 등)이 보유한 소멸시효완성채권 21조7000억원 어치(123만1000명)는 8월 말까지 소각기로 했다. 기관별로 이사회 논의 등을 거쳐 전산 삭제와 서류 폐기를 하게 된다. 9월 1일부터 해당 채무자는 자신의 연체채무가 소각됐는지를 신용정보원 ‘소각채권 통합조회 시스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민간 금융회사(대부업 제외)는 각 업권별 협회를 중심으로 올해 안에 자율적인 소각을 유도키로 했다. 대부업체를 뺀 민간부문이 보유한 소멸시효완성채권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약 4조원(91만2000명)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멸시효완성채권은 이미 회계상 대손상각 처리를 했기 때문에 금융사 입장에서는 소각한다고 해도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공공과 민간을 모두 합친 소각채권 규모는 25조7000억원, 대상자는 214만3000명이다. 1인당 평균 약 1200만원의 채무가 사라지는 셈이다.
 
당국은 이러한 채권 소각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된 ‘죽은 채권’이 편법적인 추심으로 되살아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실제 소비자들이 법을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하는 추심 사례가 적지 않다.  
 
A씨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18년 전 연체하고 갚지 못한 카드 빚에 대해 지급명령 통지를 받았다. A씨는 통지를 받고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는 추심업체인 M대부사가 다른 금융회사의 소멸시효완성채권을 일괄 매입한 뒤 법원의 전자소송시스템을 이용해 지급명령을 실시한 것이었다. 이런 경우 법원이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지급명령을 내린다. 지급명령을 받은 채무자가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10년의 소멸시효가 다시 부활한다. 이에 따라 M대부는 A씨에게 다시 강도 높은 추심을 할 수 있게 됐다.
 
금융위는 이번 소멸시효완성채권 소각을 제도화·법제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미 여·야당 의원들은 소멸시효완성채권의 추심·매각을 금지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최종구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이번 조치가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도록, 국회 정무위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필요한 부분은 법제화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채권소각의 방식과 효과에 대한 일문일답.
 
 
채권을 소각하는 방식이 채무자에게 어떤 도움을 주나.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이라고 해도 채무자가 일부라도 갚거나 하면 '죽은 채권'이 다시 부활한다. 법적으로는 ‘시효의 이익 포기’로 인정된다. 채권을 소각하면 이러한 채권 부활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제거되기 때문에 채무자의 심리적 부담감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다.”
 
 
채권을 소각하면 해당 금융사에 남은 연체기록도 사라지나.
“그렇다. 그동안 소멸시효완성채권 정보는 다른 금융회사와 공유는 되지 않지만, 보통 해당 금융회사는 계속 남겨뒀다. 따라서 B금융회사에서 연체했던 채권의 시효가 완성됐다고 하더라도, 그 소비자는 B사와는 신규 거래를 하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채권을 소각하면 전산원장에 ‘소멸시효 완성’ 이 아니라 ‘채무 없음’으로 표시된다. 과거 기록으로 인한 불이익이 사라지는 셈이다.”
 
 
민간 금융회사에 채권 소각을 강제할 순 없지 않나.
“물론 정부가 강제할 순 없다. 그래서 금융위는 업권별로 처리 방안을 결정해서 소각하도록 ‘유도’한다는 표현을 썼다. 금융회사 실무자 중엔 이를 소각하고 싶어도 기존엔 처리 기준이 없어서 쉽지 않았는데 공통된 기준이 있으면 편리하다는 반응도 있다. 이미 국민·신한은행 등 일부 금융회사는 소멸시효완성채권을 대규모로 소각했다.”
 
 
자신의 채무가 소각됐는지를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채무자가 상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조회시스템을 현재 개발 중이다. 9월 1일부터 각 금융공공기관 또는 신용정보원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가능성은 없나.
“소멸시효완성채권은 법에 따라 더는 채무자가 갚을 의무가 없는 채권이다. 따라서 이를 소각하는 것 자체가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일부에서는 돈을 빌려놓고 5년 간 잠적하는 등 소멸시효를 악용하는 사례가 나타나지 않겠냐고 지적한다. 다만 뚜렷한 이유 없이 단순히 연락이 안 되는 연체자에 대해서는 금융회사가 시효를 15년까지로 연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금융회사의 관행적인 시효연장도 제한하겠다고 하던데.
“이미 지난 3월 금융공공기관의 경우 재산 200만원 이하 또는 70세 이상이면 소멸시효를 연장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정했다. 민간 금융회사도 앞으로 시효연장 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하도록 할 계획이다.”
 
 
소멸시효완성채권의 추심·매각을 금지하는 법 개정안은 채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 아닌가.
“그러한 지적도 나온다. 동시에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추심하는 것 자체가 불법 내지는 편법이라는 법 해석도 있다. 그동안은 은행 등에서 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여 대부업체 등이 이를 추심하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법 개정을 통해 이러한 추심시장에 규제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추세다.”
 
 
이번 조치는 장기·소액 연체채권 소각과는 다른가?
“그렇다. 앞서 금융위가 방향을 밝힌 적 있는 장기·소액 연체채권 소각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10년 이상된 연체 채권을 소각해준다는 계획으로, 이번 소멸시효완성채권 소각과는 대상이 다르다. 장기·소액 연체채권의 경우, 채무자가 여전히 법적으로 ‘갚을 의무’가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없진 않다. 이 때문에 정부는 상환능력 심사를 거쳐서 채권을 소각해줄 계획이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소멸시효완성채권=소멸시효가 지나서 채무자가 법적으로 더는 갚을 의무가 없는 채권. 금융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상법 제64조)이지만 통상 법원의 지급명령 등을 통한 시효 연장으로 연체가 발생한 뒤 약 15년~25년이 지나야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다만 소멸시효가 완성된 뒤에 채무자가 일부 변제하는 경우엔 ‘시효의 이익 포기’로 인정돼 채무가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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