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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소포' 영장 없이 뜯었다가…마약상에 무죄 내린 이유

중앙일보 2017.07.31 12:00
검찰이 마약을 국제 소포에 숨겨 반입하려던 마약 매매상을 붙잡아 기소했지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마약 소포’를 확보하면서 압수수색 영장 청구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검찰, 2012년 마약 밀매업자 붙잡아 기소
필로폰 등 국제화물·밀거래자 진술 확보
법원, 검찰이 제시한 증거 모두 불인정
"영장 없이 화물 압수해 증거능력 없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마모(50)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마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1일 밝혔다. 마씨는 2009년 12월~2011년 6월 7차례에 걸쳐 마약류인 메스암페타민(일명 필로폰)을 외국에서 몰래 들여와 국내에서 판매한 혐의를 받았다.
 
마약 판매조직을 수사하던 검찰은 마씨가 멕시코 등지로부터 필로폰을 들여와 판매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검찰은 수사망을 좁혀 마씨가 제3자 명의로 주문한 국제특송화물에 필로폰을 숨겨 들여올 것이란 정보를 확인했다. 수사팀은 2011년 6월 27일 미국에서 출발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특송화물 속에서 필로폰 약 99.2g을 압수했다.
 
검찰은 마약이 든 화물을 압수한 뒤 내용물을 바꿔서 최종 수취인에게 도착할 때까지 추적했다가 현장을 급습하는 마약 수사기법인 ‘통제배달’을 시도했다. 범죄 증거물의 유실을 막기 위해 일단 확보한 뒤, 화물을 추적하는 수사기법이다.
 
그러나 수취인이 나타나지 않아 마씨 등 판매책 일당을 현장에서 붙잡는 데는 실패했다. 이후 검찰은 밀거래자 등의 진술을 받아 마씨를 붙잡았다.
 
마약이 든 국제화물 운송정보를 미리 입수해 추적한 뒤 최종 수취자를 붙잡는 '통제배달'은 국제 마약 수사에서 널리 통용되는 수사기법이다. [중앙포토]

마약이 든 국제화물 운송정보를 미리 입수해 추적한 뒤 최종 수취자를 붙잡는 '통제배달'은 국제 마약 수사에서 널리 통용되는 수사기법이다. [중앙포토]

검찰은 자신만만했다. 밀반입하려던 필로폰 실물을 확보했고, 마씨와 마약 밀거래에 관여한 이들의 진술도 받아냈다. 두 사람의 거래를 입증할 계좌 입금내역도 있었다. 검찰은 2012년에 마씨를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검찰의 기대는 1년여에 걸친 재판 끝에 물거품이 됐다. 1심 법원은 마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우선 마씨와 마약 거래를 했다고 시인한 문모씨의 검찰 진술조서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문씨가 재판에서 증언을 거부해 그의 진술을 검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씨는 정당한 사유 없이 증인 출석을 거부해 과태료를 여러 번 부과 받고도 끝내 증인석에 앉지 않았다.
 
"수사 목적 물품 확보시 압수영장 있어야"
재판부는 또 유력한 증거인 ‘마약 소포’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해당 국제화물을 압수하면서 압수수색 영장 청구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찰은 해당 소포를 압수할 때 압수수색영장을 받지 않고 인천공항세관 공무원으로부터 임의제출 형식을 갖췄다. 법원은 이 방법을 문제 삼은 것이다.
 
검찰은 반발했다. 해당 화물을 확보한 절차는 일반적인 통관 화물 검사인 ‘행정조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공항세관 직원은 불법행위에 관련됐다고 의심되는 통관화물의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는 조사권한이 있다. 불법적인 내용물이 확인되면 이를 검찰 등 수사기관에 넘기는데 이 경우에는 압수수색영장이 별도로 필요치 않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었다.
마약탐지견이 인천공항의 통관화물을 검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약탐지견이 인천공항의 통관화물을 검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범행 중 또는 범행 직후의 범죄 장소에서 긴급을 요하는 경우 영장 없이 압수수색할 수는 있지만 이 경우에도 사후 영장을 받아야 한다”며 “해당 화물을 확보한 과정은 검찰 수사관의 통제 아래 진행돼 검찰이 직접 압수한 것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 경우에는 사후에라도 압수영장을 받았어야 한다는 해석이었다.
 
검찰은 항소했지만 2심 법원도 1심의 판단을 인정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김흥준)는 “이 사건의 특송화물은 통장적인 국제우편물 통관절차인 X-Ray 검사 등을 거치지 않고 검찰이 사전에 입수한 운송장번호 등을 이용해 화물을 특정했다”며 “세관공무원이 처음부터 범죄증거 수집을 위한 수사 목적으로 우편물을 확인하는 것은 행정조사가 아니라 검사 지휘에 따른 압수수색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만약 세관공무원의 국제우편물 확인을 일률적으로 행정조사로 본다면 통관 대상 수출입화물 전체에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논리도 1, 2심과 같았다. 대법원은 “특정 수출입물품을 개봉해 검사하고 내용물을 확보하는 행위는 범죄수사인 압수 또는 수색에 해당돼 사전·사후영장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무죄가 확정된 마씨는 또 다른 필로폰 판매 혐의로도 기소돼 결국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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