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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국뽕은 무조건 나쁜가

중앙일보 2017.07.31 01:11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호정문화부 기자

김호정문화부 기자

‘덩케르크’는 흥행보다 평이 좋은 영화다. 이 고요한 전쟁영화에 시끌벅쩍한 입소문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고립된 영국군 40만 명은 그저 죽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무거운 소명의식이나 용맹성 같은 것은 없다. 자연히 흥행 포인트도 없다.
 
사실적이다 못해 세련된 영화에서 거창한 건 딱 한 가지다. 바로 영국, 또 영국인들의 위대함이다. “영국은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처칠 총리의 연설은 고요하던 영화를 출렁이게 한다. 연설문과 흐르는 음악은 영화 100분 중 가장 웅장한 소리다. 에드워드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 현악기로 고요히 시작한 주제는 갈수록 거대해지고 오케스트라 전체가 합세해 숭고하기까지 하다. 
고요하고 세련된 전쟁영화 '덩케르크'.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고요하고 세련된 전쟁영화 '덩케르크'.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엘가는 정체성이 ‘영국’이다. 유럽에서 영국은 오랜 세월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지금이야 공연장, 오페라 극장, 음반사가 모여 있지만 음악 콘텐트 면에서는 독일·오스트리아에 한참 밀렸다. 영국 음악은 프랑스의 고유한 색깔, 이탈리아의 대중성도 없었다. 엘가는 품위·고상함으로 영국 음악의 특성을 확립했다. 그의 ‘위풍당당 행진곡’엔 매년 여름 영국 청중이 가사를 붙여 합창한다. ‘덩케르크’는 이런 엘가의 음악을 마지막에 힘주어 배치했다. 맞다, 영국식 ‘국뽕’이다.
 
자국의 위대함에 집착하는 경향을 인터넷 용어로 ‘국뽕’이라 한다. 요즘 예술가들이 기를 쓰고 피해가려는 게 바로 ‘국뽕’이다. 일제시대 조선인 징용을 다룬 ‘군함도’ 감독 류승완은 “국뽕 영화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국뽕’은 창작자에게 금기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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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덩케르크’의 영국 찬양은 말쑥하고 매혹적인가. 원곡보다 느리고 엄숙한 연주로 영화에 들어간 엘가는 부담스러운 대신 왜 아름다운가. 민간의 배가 영국 군인들을 구하러 까맣게 몰려올 때 한국 관객의 팔에 왜 소름이 돋는가.
 
국가의 위대함, 국민의 힘이라는 주제에는 죄가 없다. ‘국뽕’이 작품의 예술성, 개인의 다양성을 훼손한다면 그것만이 문제다. 오히려 특정 주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금기가 더 나쁘다. ‘국뽕’의 억울함을 풀어 줄 극도로 세련된 음악과 영화가 있다면 어떨까. 한국의 예술가들에게도 그 경지를 기대할 때가 됐다.  
 
김호정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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