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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청와대 정보 왜곡 사건

중앙일보 2017.07.31 01:00 종합 26면 지면보기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청와대는 7월 27일자로 ‘에너지 세대교체’란 8쪽짜리 정책 홍보물을 내놓았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 포털 ‘정책 브리핑’이란 사이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멀지만 가야 할 길 탈원전’이라는 배너를 클릭하면 금세 볼 수 있다. 이 홍보물 제3쪽엔 ‘균등화 발전단가 비교’라는 표가 있다. 2022년 미국에서 1㎿ 전기를 1시간 동안 생산하는 데 드는 원자력 비용이 99달러가 될 것이란 예상치가 적혀 있다. 똑같은 전기를 태양광으로 만들려면 67달러가 필요하다는 수치도 있다. 5년 뒤 미국의 원자력 대 태양광 발전 비용이 99대67인 만큼 우리도 탈원전에서 태양광 정책으로 에너지 세대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미 에너지보고서 입맛대로 인용
탈원전 하면 신뢰 잃어도 좋은가

의도인지 실수인지 모르겠는데 청와대는 미국의 균등화 발전단가에 두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태양광 발전엔 면세 혜택을 준 것(67달러)과 안 준 것이 있다. 면세가 안 된 태양광의 균등화 발전단가는 85달러다. 청와대는 면세된 태양광 단가만 제시했다. 정직하지 못했다.
 
부정직은 또 있다. 청와대가 제시한 자료의 출처는 ‘미국 에너지정보청(EIA·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이 만든 127쪽짜리 ‘2017년 에너지 전망(AEO·Annual Energy Outlook 2017)’ 보고서다. 전망엔 에너지 전환에 따른 기술 간 비교를 할 때 균등화 발전단가(LCOE)뿐 아니라 ‘균등화 회피단가(LACE)’를 함께 적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원전이나 태양광과 화력·가스·풍력 발전소 등을 새로 지을 때 실제로 들어가는 각각의 비용이 균등화 발전단가라면 기존에 설치됐던 다양한 종류의 발전소를 폐기할 때 각각 소멸될 가치가 균등화 회피단가다.
 
전망 보고서는 85쪽에 이렇게 쓰여 있다. “기술이 서로 다르면 해당 기술이 적용되는 시장도 다르기에 기술끼리 균등화 발전단가 비교는 상황을 오도할 수 있다(LCOE can be misleading). 균등화 발전단가와 그것이 대치하게 될 (기존의) 기술 가치를 비교할 때는 균등화 회피단가가 사용될 수 있다(LACE can be used).” 보고서는 2022년 미국의 발전 회피 비용이 원전 57.3달러, 태양광 64.7달러가 되리라고 전망한다. 즉, 회피단가만 보면 원전이 태양광보다 비용이 싸게 먹히는데 청와대 정보에 이런 내용은 싹 빠졌다. 청와대는 미 에너지정보청의 권고대로 균등화 발전단가와 균등화 회피단가를 동시에 제시했어야 했다.
 
부정직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청와대는 5년 뒤 미국의 수치만 제시했을 뿐 현재 한국의 발전단가는 말하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을 살 만하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국의 균등화 발전단가는 원전 51.37달러, 태양광 176.34달러다. 앞서 나온 미국의 원전 발전단가 99달러, 태양광 67달러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한·미 간 균등화 발전단가에 차이가 나는 것은 한국은 원전 기술을 수십 년 축적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반면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건설을 전면 폐기하는 바람에-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신규 원전 다시 허가- 기술 수준이 퇴보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탈원전 홍보물을 제작하면서 원래의 자료를 교묘하게 생략하고 비틀었다는 의심을 받게 됐으니 유감스럽다. 청와대가 이럴진대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운명을 결정할 공론화위원회에 다른 정부 기관들이 제공하는 정보는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한번 깨지면 회복하기 어려운 게 믿음이다. 신뢰를 잃은 뒤에 탈원전에 성공한들 무슨 득이 있겠나. 청와대 정보 왜곡 사건의 책임을 누가 질지 궁금하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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