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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살바도르 달리 숨 쉬는 프랑스 대사관 … 김중업 지붕 되살린다

중앙일보 2017.07.31 00:05 종합 22면 지면보기
남정호의 ‘대사관은 말한다’
서울 합동 프랑스 대사관 전경 [사진 프랑스 대사관 제공]

서울 합동 프랑스 대사관 전경 [사진 프랑스 대사관 제공]

날렵한 콧수염으로 유명한 20세기 초현실주의의 최고봉 살바도르 달리. 그의 화려한 대형 태피스트리(색실로 그림을 표현한 작품) 진품이 국내, 그것도 의외의 장소에 걸려 있는 걸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유명 미술관도 아닌 프랑스 대사관이 바로 그곳이다.  
살바도르 달리 [사진=앨런 워렌]

살바도르 달리 [사진=앨런 워렌]

  

소장품 100여점 중 반이 국내작
한·프랑스 문화적 화합에 전력투구
내년부터 대대적 리모델링 착수
역사적인 기존 건물 복원에 초점

해외 공관의 1차 목표는 철저한 보안 속에서 외교관들이 쾌적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못지않게 중요한 기능이 있다. 대사관 건물과 소장품 등을 통해 그 나라의 빼어난 문화를 뽐내는 것이다. 이 분야에 관한 한 국내에서 프랑스 대사관만큼 특출한 외국 공관도 없다.  
국내 1세대 건축가인 김중업이 설계한 주한 프랑스대사관 관저(왼쪽)와 사무동(오른쪽). 신인섭 기자

국내 1세대 건축가인 김중업이 설계한 주한 프랑스대사관 관저(왼쪽)와 사무동(오른쪽). 신인섭 기자

 
서울 충정로역 부근에 위치한 유서 깊은 프랑스 대사관. 울창한 나무 사이에 자리 잡은 공관 건물 구석구석에서 문화의 향기가 물씬 피어난다. 날아갈 듯 날렵한 지붕이 인상적인 대사 관저 및 사무용 건물부터 당대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던 김중업의 대표작이다. 실제로 2003년 전문가 100명을 상대로 '국내 최고의 건축물'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이 건물이 김수근의 공간 사옥(현 아라리오 뮤지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프랑스대사관 관저(왼쪽)와 사무동(오른쪽)을 연결하는 램프. 신인섭 기자

프랑스대사관 관저(왼쪽)와 사무동(오른쪽)을 연결하는 램프. 신인섭 기자

이뿐 아니다. 대사관 건물 안에 비치된 그림·조각·도자기 등은 물론 가구 하나하나가 세심하게 선별한 예술품들이다. 더욱 인상적인 건 프랑스 대사관 소장 예술품 중 절반이 한국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대사관 측은 "프랑스와 한국과의 문화적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대사 관저에 들어가 보면 고결한 화합의 정신을 단박 느낄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거실 벽에 걸린 2점의 대형 작품이다. 그중 하나는 스페인에서 태어난 뒤 프랑스에서 활약했던 달리의 공작새 태피스트리, 또하나는 서정적 추상화의 대가 이세득 화백의 그림이다. 
프랑스대사 관저에 걸려 있는 살바도르 달리의 태피스트리(오른쪽)와 이세득 화백의 추상화(왼쪽). 신인섭 기자

프랑스대사 관저에 걸려 있는 살바도르 달리의 태피스트리(오른쪽)와 이세득 화백의 추상화(왼쪽). 신인섭 기자

관저 곳곳에 배치된 가구에도 화합의 정신이 담뿍 묻어있다. 세련된 서양식 소파 사이에 고색창연한 반닫이, 한의원에서 쓰던 약장(藥欌) 등 한국 고가구가 멋지게 어우러져 있다. 
프랑스 대사 관저 내에 놓인 국내 고가구들. 신인섭 기자

프랑스 대사 관저 내에 놓인 국내 고가구들. 신인섭 기자

또 현관 장식장에 진열된 4개의 푸른색 도자기 중 2개는 한국 자기, 나머지 2개는 프랑스의 유명업체 세브레스 제품이다. 
프랑스대사 관저 입구에 놓인 도자기들. 위 2개는 한국 자기, 아래 2개는 프랑스 제품이다. 신인섭 기자

프랑스대사 관저 입구에 놓인 도자기들. 위 2개는 한국 자기, 아래 2개는 프랑스 제품이다. 신인섭 기자

화합의 정신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은 소파 옆에 놓인 푸른색 추상화 접시였다. 세브레스 접시에 이응노 화백의 추상화를 그려 구워낸 작품이다. 
프랑스대사 관저 내에 비치된 그릇. 그림은 이응노 화백이 그렸으며 그릇은 프랑스제다. 신인섭 기자

프랑스대사 관저 내에 비치된 그릇. 그림은 이응노 화백이 그렸으며 그릇은 프랑스제다. 신인섭 기자

프랑스 대사관이 보유한 예술품은 모두 100여점. 달리 작품 외에도 프랑스 신사실주의의 기수 아르망(Arman)의 조각품 '왜곡된 바이올린', 서정적 작품으로 유명한 황규백 화백의 판화 등도 포함돼 있어 소장품 수준으로 봐도 웬만한 미술관 이상이다.
프랑스 대사 관저에 놓여있는 프랑스 거장 아르망의 '왜곡된 바이올린'. 신인섭 기자

프랑스 대사 관저에 놓여있는 프랑스 거장 아르망의 '왜곡된 바이올린'. 신인섭 기자

최고의 문화 선진국이란 명성에 걸맞게 프랑스 공관은 설립 초기부터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로 명성이 자자했다. 1886년 대한제국과의 수교 후 서울 수표교 근처 한옥을 잠시 빌어쓰던 프랑스 공사관은 1889년 서울 정동 28번지 (현 창덕여중)에 새 건물을 짓고 이주해 들어갔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자국의 건축미를 과시하게 위해 프랑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져 서울의 명물이 됐다. 화려한 실내 장식 덕에 미술 전시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예술미로 유명했던 서울 정동 프랑스 공사관 전경.

예술미로 유명했던 서울 정동 프랑스 공사관 전경.

하지만 이런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면서 프랑스 공사관은 영사관을 격하된다. 그러다 1910년 경술국치로 한일합방이 이뤄지자 프랑스 영사관은 정동을 떠나 을사조약에 격분해 자결한 대한제국 대신 충정공 민영환의 옛 집터(서울 합동 현 대사관 자리)로 옮기게 된다.
 
이후 계속 같은 자리를 유지해온 프랑스 공관은 해방 후 대사관으로 승격된다. 하지만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의 와중에 크게 부서져 대대적 보수가 불가피한 상황에 몰린다. 결국 1959년 봄 당시 로제 샹바르 대사는 대사관을 아예 새로 짓기로 하고 건축가를 공모한다. 여기에 6명의 프랑스인과 한 명의 한국인이 응모했는데 결국 당선된 것은 유럽에서 현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에게 배웠던 김중업이었다. 그는 서강대 본관, 올림픽공원 내 평화의 탑, 31빌딩 등 수많은 수작을 설계했지만 그중 백미로 꼽히는 게 바로 이 프랑스 대사관이다. 그는 대사관을 설계하며 한국의 처마처럼 사뿐히 하늘로 치솟아 오른 지붕을 그려냈다. 그리고는 육중한 서양식 기둥으로 지붕을 떠받치게 해 한국의 미와 프랑스의 우아함을 절묘하게 결합시켰다는 호평을 얻는다. 
1961년 완공 당시 프랑스 대사관 전경. 로제 샹바르 대사 소장.

1961년 완공 당시 프랑스 대사관 전경. 로제 샹바르 대사 소장.

1961년 완공된 후 한국 건축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혔던 이 건물도 세월 앞에는 어쩔 수 없던 모양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건물 이곳저곳에서 이상이 생겼다. 특히 심각하게 손상된 부분은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던 지붕이었다. 당시 사용했던 건축 자재가 시원치 않았던지 지붕 끝이 부서져 내렸다. 어쩔 수 없이 보수공사가 이뤄졌는데 불행하게도 당초의 날렵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한국의 빠른 국제화로 프랑스와의 교류가 늘면서 또다른 문제가 생겼다. 대사관 직원이 급증해 기존 건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 12월 대사관 건물에 대한 대대적 리모델링을 내년부터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파비앵 페논 대사는 이와 관련, "한국의 위대한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프랑스 대사관은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기존 건물의 복원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선언했다. 리모델링을 맡은 건 국내에서는 조민석 건축가가 이끄는 매스스터디스, 프랑스 측은 사티 건축사무소다. 발표 때 나온 청사진은 김중업이 설계한 본관 등의 복원과 함께 유리벽으로 된 11층짜리 사무동과 라디에이터 형태의 길쭉한 2층 짜리 갤러리동을 새로 짓는 것이다. 새 사무동에는 서울 각지로 분산됐던 대사관 하부조직이 모두 입주하게 된다. "갤러리동은 한국인들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사용될 예정"이라는 게 대사관 설명이다.  
리모델링 후의 프랑스 대사관 상상도. 사티 건축사무소 제공

리모델링 후의 프랑스 대사관 상상도. 사티 건축사무소 제공

대사관 측은 "리모델링이 이뤄지더라도 공관 건물과 소장 예술품 등을 통해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를 잇겠다는 화합의 정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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