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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뜸해진 그단스크, 59만원 최저임금으로 외국기업 끌다

중앙일보 2017.07.26 01:19 종합 8면 지면보기
다시 일어서는 발트해 연안도시들 <상> 해운 거점서 인재 거점으로
강 건너에서 바라본 폴란드 그단스크 구도심 전경. 오른쪽의 목조 건축물은 15세기께 건설된 곡물 운반용 크레인으로 그단스크의 과거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구도심 너머로는 재개발이 한창인 공사 현장 이 보인다. 해운·조선업에 의존하던 그단스크는 재개발을 통해 인재의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최승식 기자]

강 건너에서 바라본 폴란드 그단스크 구도심 전경. 오른쪽의 목조 건축물은 15세기께 건설된 곡물 운반용 크레인으로 그단스크의 과거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구도심 너머로는 재개발이 한창인 공사 현장 이 보인다. 해운·조선업에 의존하던 그단스크는 재개발을 통해 인재의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북유럽 발트해는 해운·조선으로 꽃피운 해양 도시들의 주무대다. 3면이 바다인 한국의 해양산업계엔 오랫동안 선망의 대상이었다. 실크로드와 함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무역 루트인 ‘호박 로드’도, 스웨덴을 조선 강국으로 만든 항구도시 말뫼도, 유럽 전역의 곡물 무역 중심지였던 폴란드의 그단스크도 모두 발트해를 따라 탄생했다. 해운과 조선의 영광은 신흥국들에 밀려 옛 얘기가 됐지만 해양도시들은 발트해의 지리적 경쟁력을 발판 삼아 관광과 물류 등 신산업 도시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한국 해양산업의 새로운 모델이 될 발트해 연안 도시들의 부활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과 공동으로 취재했다.

중앙일보·한국해양수산개발원 공동기획
다국적기업의 성지 그단스크
기업 편의 위한 건물로 재개발
인건비 프랑스·독일의 3분의 1
아마존·바이엘 지사 등 들어서

이민자도 인재로 … 스웨덴 말뫼
98년 조선소 터에 전문학교 세워
세계해사대학도 학생 몰려 증축
‘170개국 100개 언어 도시’ 별명

 
발트해는 오랫동안 해운과 조선의 최적의 무대였다. 깊고도 고요한 바다를 품은 연안 도시에서 배가 뜨고 배가 만들어졌다. 폴란드 북부의 항구도시 그단스크도 그중 하나였다. 폴란드 민주화의 아버지 레흐 바웬사가 조선소 근로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그단스크는 더 이상 조선 도시가 아니었다. 근현대 그단스크 산업의 핵심이었던 조선업은 한국 등 동아시아의 신흥 강국들에 밀려 대부분 파산하거나 규모를 줄였다.
 
그럼에도 최근 그단스크에는 유럽 전역의 인재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단스크가 기업 하기 좋은 도시로 소문나면서 독일 제약업체 바이엘과 철강업체 티센크루프, 미국 유통업체 아마존 등 다국적기업들이 앞다퉈 이곳에 지사를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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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단스크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섬 그래너리 아일랜드(Granary Island)는 그단스크 부흥의 상징이었다. ‘곡창(그래너리)의 섬’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섬에는 17세기 300여 개의 곡물 저장고에 25만t에 달하는 곡물이 빼곡히 채워졌고, 유럽 곳곳에서 몰려든 200여 척의 배들이 이곳에서 곡물을 실어 날랐다.
 
그단스크 부(富)의 상징이었던 이 섬은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쑥대밭이 됐다. 그랬던 그래너리 아일랜드에 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달 초 찾은 그래너리 아일랜드에선 재개발 사업이 한창이었다. 자재들을 옮기는 크레인들 사이로 건설 노동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파트·상가·사무실의 주상복합과 호텔 등 새로운 시가지 1차 완공을 목표로 건설이 한창이였다.
 
이 섬의 재개발을 주관하는 민관합작기업 그래너리아의 보이체크 카츠마렉 외부협력담당은 “폐허들을 밀어 버리고 현대식 건물을 새로 지을지, 보수공사를 해서 옛 모습을 복원할지를 놓고 10여 년간 격론이 벌어졌다”며 “최근 도시에 인구가 대거 유입되면서 주변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재개발을 하는 방향으로 정해졌다”고 밝혔다.
 
그단스크의 경쟁력은 물류 인프라와 양질의 인력이다. 폴란드의 월 최저임금은 453유로(약 59만원)로 프랑스(1480유로), 독일(1498유로), 네덜란드(1551유로) 등 서유럽 국가의 3분의 1 수준이다. 해외 자본들은 여기에 베팅하고 있다.
 
그단스크시는 그단스크대학에 투자를 늘리고 대학 인근에 비즈니스센터를 여러 곳 설립해 산학협력을 강화했다. 기업들의 투자에 힘입어 지난 2015년 그단스크의 사무실 매물은 2008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단스크 곳곳에선 사무실을 임대한다는 플래카드와 간판들이 넘쳐났다.
 
파웰 아다모비치 그단스크 시장은 “우리는 도시를 완전히 새로 브랜딩했다”며 “그단스크는 서유럽 도시들처럼 자본이 풍부하진 않지만 그 대신 뛰어난 두뇌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다모비치 시장에 따르면 그단스크 경제력의 30% 이상은 외국 지사들로부터 나온다.
 
그단스크처럼 뛰어난 입지 조건으로 해운 물류의 중심지였던 발트해의 해양 도시들이 물류 거점에서 인재의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스웨덴의 항구도시 말뫼도 그중 하나다. 말뫼시는 시 경제를 지탱하던 조선업이 무너지자 재빠르게 첨단산업 도시로의 전환을 개시했다. 1998년 시내 중심과 조선소였던 부지 일대에 말뫼전문학교를 설립하고 투자를 대폭 늘렸다.
 
말뫼에 위치한 세계해사대학의 문성혁 교수는 “외부에서 인재들이 몰려오면서 말뫼는 요즘 ‘170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100개 언어를 다루는 도시’라 불린다”며 “인구가 증가하면서 고급 주택가와 사무실도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1910년 지어진 항만관리사무소 건물을 캠퍼스로 삼고 있는 세계해사대학도 학생과 교수진이 늘어남에 따라 2년 전 대규모 증축을 마쳤다.
 
말뫼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과 인접해 있고 발트해 너머로 위치한 독일과 폴란드로의 접근성이 좋다. 특히 지난 2000년 코펜하겐과 말뫼를 잇는 외레순 대교가 개통하면서 차로 30분이면 두 도시를 오갈 수 있게 됐다. 코펜하겐에 일자리가 있지만 번잡하고 물가가 비싼 그곳을 피해 말뫼에 자리를 잡고 출퇴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외지인의 왕래가 잦은 해양 도시의 특성상 이민자에게 개방적인 분위기도 인재 유입 요인 중 하나다. 레바논에서 태어나 지난해 말 말뫼로 이민왔다는 팔레스타인인 라비 자로라(27)는 “말뫼에선 이민자에게도 취업과 학업의 길이 모두 평등하게 열려 있다. 올해 중으로 스웨덴 여권도 발급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로라는 현재 말뫼전문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내년 1월부터 말뫼전문학교는 스웨덴의 15번째 정식 대학으로 승격될 예정이다. 말뫼가 속한 스코네 주의회의 헨릭 프리츤 의장은 말뫼전문학교의 대학 승격을 두고 “말뫼가 산업도시에서 지식도시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순간”이라고 평했다.
 
그단스크·말뫼=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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