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자연·세상의 음악
여름철은 고요의 음악 즐기기 좋은 계절
꽤 오랫동안 나는 서울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바람이 시원히 통하는 집은 아니지만, 여름이면 사방 창문을 열어 놓고 산다. 소리가 들어온다. 아파트란 건조한 곳이어서 소리 또한 건조하다. 좀 떨어져 있지만, 도로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솔직히 말하면 도로의 소음), 오후 늦게 놀이터에서 떠드는 아이들 소리, 이따금 반려견들이 짖는 소리, 다른 층 현관에서 찾아온 손님들과 주고받는 말소리, 그리고 이른바 층간 소음들(발소리, TV 소리,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등). 그래도 아파트 뒤편으로 빽빽한 나무들이 있어 서너 종류의 새들이 제법 들을 만한 소리를 낸다. 또 최근에는 매미들이 꽤 시끄럽게 울어대는데 큰 불평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이 소리는 소음으로 여기지 않는 듯하다.
도로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를 장마철 계곡 물소리쯤으로 여기려 하지만 (실은 음향적으론 꽤 비슷하다) 그래도 역시 너무 삭막한 듯해 풍경을 거실의 바람 잘 통하는 곳에 걸어 놓는다. 여행을 다니다 좀 새로워 보이는 것이 있으면 사오곤 해서 작은 종으로 된 것, 차임처럼 생긴 것, 나뭇가지로 된 것, 조개껍질로 된 것 등 7~8개가 걸려 있다. 바람이 불면 가벼운 놈부터 울리기 시작하고 바람이 세면 네댓 개 이상 울리면서 음악을 만든다. 바람의 음악이다. 풍경 소리는 울릴 때도 좋지만 끝날 때 더 마음에 들어온다. 가느다란 소리가 사라지면서 고요 속으로 내 귀를 이끄는 것이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나만의 소리 세상에 몰두하는 것도 좋아한다. 주변 소리가 그저 그럴 때, 같은 공간에 있는 웬수 같은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방송을 틀어 놓고는 그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나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있을 때, 그렇다고 그에게 항의할 힘이 남아 있지 않을 때, 혹은 대세가 그 소리를 용인하고 있어 내가 소수자임이 분명할 때 제격이다. 처음 워크맨이 나왔을 때 나는 대구의 대학교에 근무했는데 오고 가는 고속버스에서 자주 이어폰을 끼고 나 혼자만의 음악세상을 즐겼다. 그것은 나를 지켜 주는 방어막이었다.
번번이 잊어 실행 못 했지만 치과 치료를 갈 때 이 방어막을 가지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치과 치료의 날카로운 소리 고문 대신 음악 한 곡을 듣는 동안 치료가 끝나지 않겠는가. 변화 많고 풍부한 오케스트라 음향을 가진 스트라빈스키가 적당하리라 음악까지 선정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름, 여는 계절이다. 귀를 열고 자연과 세상의 소리를 내 안에 들일 때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권한다. 자연과 세상이 주는 이 음악(musica mundana)을, 바다나 계곡 혹은 집이나 거리에서 들려오는 자신만의 음악을 즐기시기를.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