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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잃어버린 10년’ 만회하기

중앙일보 2017.07.25 02:03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송호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정말 지리멸렬한 세월이었다. 통치 양식은 외골수 그 자체였고, 국정 관리는 방만했다. 산업화 후광에 의존한 보수정치의 ‘경제지상’ 언술에 넋을 빼앗긴 시간이었다. 10년 보수정치가 불안정 협곡인 사회 인프라 개혁에 착수했다면, 일인당 국민소득은 벌써 3만 달러 선을 훌쩍 넘었을 것이다. 한국인의 역동성은 세계적이다. 보수정치는 경제논리만 들이댔다. ‘성장동력은 사회개혁에서 창출된다’는 세계화 시대의 명제를 내친 대가는 쓰라리다. ‘양극화와 불평등이 재앙을 넘어 천형(天刑)’이 되었다. ‘잃어버린 10년’이다.
 

공정사회 행군에는 너와 나 없다
십시일반의 증세, 상위 계층과
힘센 조직의 양보적 리더십이
사회적 책무와 공정성의 요체다

선진국들은 일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부근에서 국정 패러다임을 ‘경제’에서 ‘사회’로 전환했다. 세계화 시대에 이익 투쟁과 사회 불안정을 치유하지 않으면 경제 동력이 붕괴한다는 공감대에 국운을 걸었다. 승자와 패자의 병존, 자원의 비대칭성을 교정하라는 스티글리츠(J. Stiglitz)와 로드릭(D. Rodrik)의 경고는 이미 20년 전에 나왔다. 선진국이 비경제 영역인 노동시장과 사회안전망 개혁에 집중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한국은 구태의연했다. 조선업에 쏟은 구제금융을 고용과 임금, 원·하청 구조 개혁에도 투입했다면 장기적 역동성이 살아날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라.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국정 100대 과제’가 그렇게 읽힌 까닭이다. 탈선한 대한민국호(號)가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는 안도감이 든다. 빈둥대다 뒤처진 격차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각오, ‘사회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한 로드맵이다.
 
사회개혁으로 경제 동력을 창출한다는 국정철학은 유럽에서도 논란을 불렀지만 결국 좌·우파가 합의했다. 이른바 복지정치다. ‘좌파가 지르고 설거지는 우파가 한다’는 게 유럽에서 확인된 복지국가의 명제다. 불평등이 줄고 사회연대가 살아나자 경제 활력에 가속도가 붙었다. 투입한 복지비용보다 더 많은 경제 성과를 수확했다. 복지의 성장 기여도를 높이려는 ‘용의주도한 정부’가 작동했고, 고율 세금을 감당해서라도 루저 양산을 막는다는 성숙한 시민정신이 주효했다. 케인스적 복지국가는 주로 노동시장에 개입한다. 그렇게 일군 복지-재정-성장의 선순환을 ‘황금의 삼각형’이라 부른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치 이상을 더 욕심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기지만 한술 밥에 배부르랴. 사회 패러다임 전환에는 두 단계가 있다. 현 정부로선 사회안전망에 뚫린 구멍을 수리하는 일차적 과제만으로도 벅차다. 하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연령대별 수요를 충족하는 공공복지의 확대가 그것이다. 기초연금·보육과 아동수당·청년수당을 올렸고, 실업·의료보장을 높였으며, 빈곤층 지원 요건을 완화했다. 그토록 소극적이던 누리과정이 살아난 건 신혼 세대에게 반가운 소식, 고교교육 의무화도 만시지탄이다. 이건 신설이 아니라 ‘현실화’다. 누가 돈을 대느냐는 비난이 거세지만 이미 지불했어야 하는 비용이다.
 
복지재정에 대한 우려는 그런 점에서 정당하지 않다. 진정 자식 세대를 쪼개진 사회로 몰지 않으려면 지금 우리가 십시일반 부담해야 한다. 소(小)부담에 고(高)복지는 망상이고 공짜 근성이다. 법인세 3%포인트, 초고소득층 2%포인트 세율 인상은 그냥 맛보기다. 권리를 누리려면 책임 공유가 필요한 법, 다 같이 더 내야 한다. 실직과 노후 위험을 줄이고 미래 불안을 떨쳐내는 비용을 우리가 치르지 않으면 누가 댈까. 기업도 그렇다. 공공복지는 기업의 사회적 비용을 경감한다.
 
사회 패러다임의 두 번째 단계인 노동시장 개혁은 난망하다. 원·하청 기업 구조, 고용과 임금 양극화의 교정은 거의 혁명에 가깝다. 대기업 정규직의 고용보장 장벽이 높으면 중소기업의 임시직 비율이 급증한다는 게 이미 확인된 양극화의 법칙이다. 포르투갈·스페인·한국이 그런 유형인데, 예외 없이 기업비용과 사회적 불만이 커졌다. 덴마크·영국·벨기에는 정규직의 해고 권한을 기업에 줬다. 정부가 복지 안전망을 앞세워 노조와 사회적 합의에 성공했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 빠진 중대한 대목이 이것이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고용과 임금 격차 줄이기가 ‘소득주도 성장’의 뇌관이라면, 민주노총·한국노총과의 정치적 담판이야말로 개혁 성패를 좌우한다. 노동시간 단축, 시급 1만원, 정규직 전환 등 쟁점이 산적해 있다. 기업 부담이 줄지 않으면 고용 창출은 없다. 복지-재정-성장의 선순환을 이룰 주체가 기업과 노조다.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라! 공정사회로의 행군에는 너와 나가 없다. 사회 패러다임 전환에는 국민이 이행할 ‘사회적 책무리스트’가 붙어 있다. 십시일반의 증세, 그리고 상위 계층과 힘센 조직의 양보적 리더십이 공정성의 요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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