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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오뚜기 띄우는 청와대, 비정규직 철폐 밀어붙이기용?

중앙일보 2017.07.25 01:51 종합 5면 지면보기
청와대가 기업인과의 대화(27~28일)를 개최한다고 23일 발표하자 재계에선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청와대가 ‘15대 그룹 중 농협을 제외한 14개 그룹의 총수’로 참석자의 격(格)을 못 박았는데 막상 기업들은 언론 보도를 통해 일정을 알게 된 탓이다. 참석 대상 기업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도 그랬으니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1주일도 안 남겨놓고 촉박하게 일정을 발표하면 우리는 난감하다”고 말했다. 재계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다녀온 뒤인 8월 중순께 간담회 개최를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니 기업은 호떡집에 불이 난 상황이다.
 

“진솔 대화” 하자며 일정 일방통보
기업 간담회 ‘군기잡기 집합’ 우려

청와대는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간담회 대상이나 일정을 정하는 문제부터 사전에 기업의 의사를 타진하지 않았다. 대기업이 새 정부의 국정철학에 맞게 행동하도록 ‘군기잡기식 집합’이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재계순위 100위권 밖인데도 이번 행사에 특별 초청된 오뚜기를 놓고도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오뚜기가 ‘비정규직 제로(0)’에 가까운 모범 기업 자격으로 초청됐다고 밝혔다. 온라인에서 ‘갓뚜기’로 불리는 오뚜기는 고용·납세에서 좋은 평판을 받는 기업이긴 하다. 그러나 오너 일가가 소유한 자회사를 통해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창업자의 손녀가 열네 살이던 2006년 12억원가량의 오뚜기 주식 1만 주를 소유해 주목을 받은 일도 있다. 여느 기업들처럼 명암이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그럼에도 ‘오뚜기=모범 기업’이라고 규정했고 이례적 예우를 했다. 재계에선 새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대기업에 밀어붙이는 용도로 오뚜기가 초청된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결국 간담회가 성사되는 절차나 내용 모두 “나를 따르라”는 식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진솔하면서도 허심탄회한 소통이라고 보기 어렵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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