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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예술의 검열

중앙일보 2017.07.22 01:48 종합 27면 지면보기
복거일 소설가

복거일 소설가

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1심 재판이 곧 끝난다. 그러나 그 사건의 연원과 본질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블랙리스트의 근본 해결책은
정부 지원의 폐지다
‘문화 대통령’ 되고 싶어 손쉬운
검열로 대응하려다 문제 생겼다
실상부터 알리고 절차를 밟아라
시민이 모르면 개혁은 불가능해

위협적 존재들에 관한 정보이므로 블랙리스트는 보편적이다. 대법원 블랙리스트 논란이 그 점을 일깨워 준다.
 
예술계 안에도 블랙리스트들이 있다. 예술은 ‘사회주의 운동’에 복무해야 하고 스탈린주의의 예술이론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오랫동안 우리 예술가들을 억압했다. 그런 주장을 따르지 않는 예술가들은 음으로 양으로 불이익을 받았다. 얼마 전 의정부시가 연 미군 2사단 송별회에서 출연하기로 했던 예술가들이 울면서 사과하고 무대에서 그냥 내려갔다. 좌파 시민단체가 블랙리스트에 올리겠다 위협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예술계 블랙리스트는 국가 예산이 반국가적 작품들의 지원에 쓰인다는 사정에서 나왔다. 오래 방치된 그 문제를 풀려고 나선 사람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일단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그의 시도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정부 지원의 폐지다. 정부가 세금으로 예술가들을 지원할 명분도 약하지만, 정작 혜택을 입는 것은 기득권 계층이지 가난하거나 실험적인 예술가들이 아니다. 기득권 계층이 워낙 강성하고 대통령마다 ‘문화 대통령’ 소리를 듣고 싶어 하므로 아쉽게도 이 방안은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정부는 손쉬운 검열로 대응하려 한다. 거기서 문제가 나왔다.
 
무엇보다도, 검열은 자유를 지향하는 예술에 해를 입힌다. 예술 작품에 대한 검열은 기준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예술가들의 자기 검열을 심화시킨다.
 
현실적으로 우리 예술계가 워낙 편향되어서 반국가적 작품들에 대한 지원을 검열로 막기 어렵다.
 
블랙리스트는 적절한 검열 방식도 못 된다. 평가는 행위에 대해 행해져야 한다. 한 예술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것은 앞으로 나올 그의 작품들을 미리 평가하는 것이다. 이번 블랙리스트는 내용조차 종잡을 수 없어서 예술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선 시민들에게 실상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세금으로 반국가적 작품들을 지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시민들 사이에 논의가 일 것이다. 그것 자체가 큰 성과고, 다수가 바라는 해결 방안도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악명 높은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는 교훈적이다. 1940년대 말엽에서 1960년대 초엽까지 이어진 그것은 공산주의자들의 반체제 활동에 대한 미국 사회의 두려움에서 나왔다. 공산주의자인 것이 불법은 아니었지만,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은 공산주의자로 지목된 예술가들을 고용하지 않았다. 1950년대 전반에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이 미국 사회에 러시아 첩자들이 깊이 침투했다는 주장을 펴자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트루먼 대통령과 좌파 신문들은 마녀사냥이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자신의 거친 주장들을 떠받칠 근거를 제대로 대지 못했으므로 매카시는 ‘매카시즘’이라는 말을 유산으로 남기고 몰락했다.
 
1995년 패트릭 모이니핸 상원의원이 정보기관을 설득해서 ‘베노나 사업’의 내용을 공개했다. 1940년대 전반 러시아 정보 요원들의 암호 교신을 감청한 이 사업은 러시아 첩자들이 미국 사회의 요소들에 깊숙이 침투했음을 밝혀냈다. 특히 원자탄 기밀들이 그들에 의해 고스란히 러시아로 넘어갔음이 드러났다. 그런 첩자들은 거의 다 러시아가 조종한 미국 공산당의 당원들이었다.
 
이런 기밀의 공개는 미국 시민들이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와 매카시즘을 객관적으로 살필 자료를 제공했다. 덕분에 미국 사회의 이념적 분열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할리우드 블랙리스트가 주는 교훈은 간명하다. ‘시민들에게 알려라.’ 박근혜 정권은 이 중요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 국정교과서와 노동개혁의 실패도 따지고 보면 그런 실책에서 비롯했다. 시민들이 실상을 모르는데 어떻게 개혁이 성공할 수 있겠는가?
 
블랙리스트 재판은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다. 세금으로 반국가적 작품들을 지원한다는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문화 예산의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므로, 실은 악화될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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