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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의리에 맹종했다면 새 정부도 없었겠지요

중앙일보 2017.07.22 01:00 종합 14면 지면보기
세상을 흔든 내부고발자 5인의 속 이야기
중앙일보 좌담회에 참석한 내부 고발자들. 종교 비리 폭로 권희청씨, 학내 부정 폭로 전경원 교사, 부정선거 고발 이지문 전 중위, 기업 비리 제보 김민규씨, 논문 표절 고발 한만수 동국대 교수(왼쪽부터). [조문규 기자]

중앙일보 좌담회에 참석한 내부 고발자들. 종교 비리 폭로 권희청씨, 학내 부정 폭로 전경원 교사, 부정선거 고발 이지문 전 중위, 기업 비리 제보 김민규씨, 논문 표절 고발 한만수 동국대 교수(왼쪽부터). [조문규 기자]

2009년에 계룡대 군납 비리 의혹을 양심선언한 김영수(49) 전 해군 소령은 지난 17일 고소를 당했다. 당시 사건에 연루돼 법적 처분을 받았던 전 해군 간부 3명으로부터다. 이들은 “김 전 소령이 최근 2009년 국방부 검찰단 수사 결과를 일부 언론에 제공한 것이 허위 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변화 이끌어 내는 경우도 있지만
보복 당하고 배신자 낙인 찍혀

군납비리 폭로했던 전 해군 소령
8년 지났는데 명예훼손 소송 당해

2년 전 하나고 입시 비리 제보 교사
“동료 교사들 여전히 인사도 안 해”

내부 고발은 공익적 가치 있어야
제보자 보호·보상 대책 강화 필요

 
이들 3명 중 2명이 문재인 캠프 안보특위에서 직책을 맞자 김 전 소령은 “비리 당사자들이 또 다른 비리 카르텔을 형성하려 한다”며 과거 자료를 공개하고 인터뷰를 했다.
 
계룡대 군납 비리는 김 전 소령의 폭로로 실체의 일부가 드러났다. 9억원의 국고 손실과 뇌물 수수를 통한 진급 비리가 확인돼 총 52명이 처벌됐다. 김 전 소령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청문회를 앞두고 “당시 해군 참모총장이었던 송 장관이 군납 비리를 묵살·은폐했다”는 주장도 했다.
 
김 전 소령은 피고소와 관련해 지난 18일 “국방부 검찰단 공식 문서를 공개한 것뿐이고, 필요하다면 내가 가진 모든 자료를 공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새 정부 내부 고발 덕에 탄생”=아슬아슬한 주장을 이어 가고 있는 김 전 소령은 공익제보자들의 모임인 ‘내부제보실천운동’의 회원이다. 내부제보실천운동은 지난 1월 발족했다. 대학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을 폭로한 한만수(58) 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와 이지문(49) 전 중위 등이 회원이다.
 
1986년 9월 9일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전두환 정부의 보도지침 자료를 공개하는 모습. 김주언 당시 한국일보 기자는 문화공보부에서 각 언론사에 하달한 보도지침 584건을 월간 『말』지에 폭로했다. [사진 민주언론시민연합]

1986년 9월 9일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전두환 정부의 보도지침 자료를 공개하는 모습. 김주언 당시 한국일보 기자는 문화공보부에서 각 언론사에 하달한 보도지침 584건을 월간 『말』지에 폭로했다. [사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전두환 정권의 ‘보도 지침’을 폭로한 김주언(63) 전 한국일보 기자,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불법 사찰을 세상에 알린 장진수(41)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 고교 입시 비리를 고발한 전경원(46) 하나고 교사, 최순실 국정 농단을 드러낸 노승일(41) 전 K스포츠재단 부장 등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 6일 한 교수 등 5명의 회원이 좌담회를 가졌다. 이들은 “내부 고발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도 있지만, 각종 보복을 당하거나 ‘고자질쟁이’라는 사회적 낙인만 안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좌담회엔 이지문 전 중위, 전경원 교사, 권희청 전 A교회 집사, 김민규 B중공업 차장이 참여했다.
1992년 3월 22일 이지문 당시 육군 중위가 서울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군부재자 공개기표와 중간검표 등 선거 부정을 폭로하는 모습. 양심선언 이후 군대에서는 영외자 투표제도가 도입되는 등 선거 부정이 사라졌다. [중앙포토]

1992년 3월 22일 이지문 당시 육군 중위가 서울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군부재자 공개기표와 중간검표 등 선거 부정을 폭로하는 모습. 양심선언 이후 군대에서는 영외자 투표제도가 도입되는 등 선거 부정이 사라졌다. [중앙포토]

 
1992년 군의 조직적 부정선거 행위를 폭로해 이등병 강등 뒤 불명예 전역해야 했던 이 전 중위는 “내부고발자들이 억압을 당하는 건 집단 내 정과 의리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문화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새 정부가 생겨난 것도 결국 집단에 대한 맹종을 버리고 국정 농단을 폭로한 내부고발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이들이 보복을 당하는 일은 이제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1990년 2월 이문옥 당시 감사원 감사관은 기업의 로비로 감사원이 감사를 중단한 사실을 언론에 제보했다. 대기업이 보유한 비업무용 부동산 비율이 43%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진은 폭로 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구속 됐다가 7월 13일 석방됐을 때의 이 전 감사관. [중앙포토]

1990년 2월 이문옥 당시 감사원 감사관은 기업의 로비로 감사원이 감사를 중단한 사실을 언론에 제보했다. 대기업이 보유한 비업무용 부동산 비율이 43%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진은 폭로 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구속 됐다가 7월 13일 석방됐을 때의 이 전 감사관. [중앙포토]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 비난도=2015년 서울시의회에서 하나고 입시 비리를 폭로한 전 교사는 “일부 동료 교사들은 여전히 내게 인사조차 안 하고, 상부에 결재 요청할 일이 있을 때마다 곤혹스러운 ‘왕따’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전 교사의 폭로로 하나고는 2015년 서울시교육청 감사 결과 3년간 학생들의 입학 성적을 부당하게 처리해 성적 미달의 학생 90명을 입학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자신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가 ‘카드깡’으로 시 보조금 1800만원을 횡령한 사실을 밝혀낸 권희청 전 집사는 “폭로 후 동료 신자들로부터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2012년 3월 21일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할 때의 장진수 당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모습. 그는 이명박 정부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을 제기해 검찰의 본격적인 조사를 이끌어냈다. [연합뉴스]

2012년 3월 21일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할 때의 장진수 당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모습. 그는 이명박 정부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을 제기해 검찰의 본격적인 조사를 이끌어냈다. [연합뉴스]

◆“안일한 위법보다 현명한 정의의 길”=그럼에도 이들이 내부고발을 선택한 것은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전 중위는 “당시 육사 출신의 내 중대장은 부하들에게 총선에서 여당을 찍게 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다가 끝내 꺾이고 말았다. 그러면서 ‘안일한 위법의 길보다 현명한 정의의 길을 간다’는 육사 신조를 울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며칠 밤을 새우며 고민을 하다 총선 이틀 전 서울로 가 언론 앞에 섰다”고 말했다.
 
2015년 ‘동국대 사태’ 당시 총장의 논문 표절과 이사장의 문화재 절도 등의 의혹을 제기하며 단식 농성을 했던 한만수 교수는 “학생이 표절하면 처벌받고 교수가 표절하면 총장 되느냐”는 한 학생의 말을 듣고 대꾸할 말이 없어 투쟁에 나섰다고 말했다.
 
2016년 12월 22일 노승일 전 K스포츠 부장이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5차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참석했다가 증인으로 신분이 바뀌어 선서하고 있다. 그는 최순실씨의 실무를 봐주면서 SD카드에 모아놨던 자료를 검찰에 제공했다. [중앙포토]

2016년 12월 22일 노승일 전 K스포츠 부장이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5차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참석했다가 증인으로 신분이 바뀌어 선서하고 있다. 그는 최순실씨의 실무를 봐주면서 SD카드에 모아놨던 자료를 검찰에 제공했다. [중앙포토]

◆사적 보복 수단은 경계해야=B중공업 영업팀의 김민규 차장은 회사와 3년 넘게 갈등을 빚고 있다. 담합, 특정 업체 밀어주기 등의 지시를 거부하다가 연봉도 깎였다. 그러나 그는 “나는 내 회사를 사랑하는 만큼 잘못된 일부 사람만 처벌받기를 원한다.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불의가 사실이고 공익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게 내부고발의 전제조건이다”고 덧붙였다.
 
현재 고교 국어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고 있는 전 교사는 “현재 우리나라 교육 성취 기준 범교과 목표엔 공익 제보와 관련된 게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러 공익 제보 사례를 비교해 보며 토론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중위는 내부고발자를 보호·보상하는 국가 주무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가 공무원으로만 이루어진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인권위원회처럼 다양한 민간 출신을 채워 서로를 견제하며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내부 제보를 ‘실패학’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 더 깨끗한 세상이 된다는 거다”며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S BOX] FIFA 집행위원, 스노든, 위키리크스 … 이어지는 세계의 내부 폭로
지난 13일 사망한 척 블레이저 전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은 FIFA가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각국에 뇌물을 요구해 받아왔다는 것을 2013년 폭로한 내부 고발자다. 그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개최 선정 대가가 1000만 달러(약 112억원)였다”는 등의 증언을 했다. 이 폭로로 FIFA의 고위 간부들이 대거 물러났고, 17년간 ‘축구 대통령’으로 군림했던 제프 블라터 당시 회장도 2년 뒤 사임했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 전 미 국가안보국(NSA) 파견 직원은 충격적인 문서를 공개했다. NSA가 2007년부터 전자 감시 체계 프리즘(PRISM)을 가동해 시민들의 e메일·메신저 정보 등을 훔쳐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도청 대상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최소 35개국 정상도 포함돼 있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미국과의 금융 정보 공유를 줄였다.
 
내부 고발자의 제보를 받아 폭로하는 위키리크스는 2011년 튀니지 정권의 부패 실상이 담긴 미 외교문서를 공개해 북아프리카 민주화운동을 촉발했다. 지난달엔 미국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가 위키리크스를 본떠 ‘트럼피리크스’를 만들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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