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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자기 몸 물어뜯는 말, 배우 졸리와 동병상련?

중앙일보 2017.07.22 01:00 종합 22면 지면보기
의사와 수의사가 만나다
바버라 내터슨-호러위츠

동물도 스트레스 받고 우울증 걸려
강박증으로 인한 자해 서로 닮아
유방암·성인병·정신질환 등 공유
인간의학·수의학 융복합 길 제시

캐스린 바워스 지음
이순영 옮김, 모멘토
 
시작부터 상식을 뛰어넘는다. 고양이 크기의 앙증맞은 타마린 원숭이가 동물원에서 심부전에 걸려 진료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불쌍하다는 생각에서 환자 원숭이를 빤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포획근병증’이란 치명적 급성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대목에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동물이 포식자에게 ‘포획’되면 극도로 흥분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이 위험할 정도로 과다 분비된다. 과량일 경우 근육에 독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이 호르몬은 혈액을 뿜어내는 심실 근육을 손상해 자칫 급사를 부를 수 있다. 겁 많은 사슴이나 다람쥐, 자극에 민감한 새나 작은 원숭이가 주로 당한다. 염두에 둘 점은 인간이 동정과 연민의 눈길로 애처롭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발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포식자의 포악스러운 눈빛으로 오해해서라고 한다. 반려동물과 마주할 때 염두에 둘 정보다.
 
인간에겐 다코쓰보 심근증이라는 질환이 있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심한 통증이 따르는 치명적 질환이다. 혈전 등으로 혈관이 막혔을 때와 증상이 비슷하지만, 검사를 해도 혈관 동맥은 막힌 곳 하나 없이 깨끗하기만 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왼쪽 심실 벽에 불룩한 부분이 생겨 심장의 규칙적이고 힘찬 박동을 방해한다. 신체에 물리적 이상이 생기는 질환인데도 원인은 다분히 심리적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은 신랑이나 신부, 도박장에서의 전 재산 탕진 등 심리적으로 지극히 고통스러운 일로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면서 심장벽 형태까지 변하는 것이다. 다코쓰보 심근증과 포획근병증은 일란성 쌍둥이나 다름없다. 인간에게나 동물에나 심장이 마음의 장기인 것은 마찬가지다.
 
인간의 건강과 동물의 건강은 놀랄만큼 유사한 점이 많다. 왼쪽부터 ‘천식’‘가정 폭력’‘비만’‘감염’에 시달리는 인간과 동물의 사진이다. [사진 모멘토]

인간의 건강과 동물의 건강은 놀랄만큼 유사한 점이 많다. 왼쪽부터 ‘천식’‘가정 폭력’‘비만’‘감염’에 시달리는 인간과 동물의 사진이다. [사진 모멘토]

문제는 포획근병증은 적어도 40년 전부터 수의사들에게 알려졌지만 다코쓰보 심근증은 2000년대에 와서 비로소 파악됐다는 사실이다. 각각 심장병 전문의와 과학 저널리스트인 지은이들은 동물의 병과 인간의 병이 서로 다르다는 생각은 편견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신체적 부문에선 물론 정신적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은이들에 따르면 야생의 침팬지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을 겪으며 시름시름 앓다 숨지기도 한다. 심지어 동물도 자살을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우울에서 시작해 식음을 전폐하며 자기 목숨을 위협하는 자기방임적 행동을 한다. 도구만 다를 뿐 원인부터 결과까지 인간과 차이가 없다.
 
안젤리나 졸리

안젤리나 졸리

수의사들은 동물 환자가 똑같은 행동·몸짓·울음소리를 무의미하게 장시간 반복하는 증상을 발견하고 상동증(Stereotype)으로 이름 붙였는데 이는 인간의 강박장애와 놀랍도록 닮았다. 심지어 종마와 문어는 자해도 한다. 흉기로 자해한 적이 있다는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빈이나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사진)가 자신의 신체를 이로 물어대던 말의 상동증을 치료한 수의사와 상담했더라면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을까.
 
지은이들은 유방암부터 생활습관병(성인병)까지 거의 모든 인간 질환이 여러 동물에서도 발견된다는 데 주목한다. 사실 인간과 동물은 수억 년에 걸쳐 함께 진화해왔기에 건강 문제가 비슷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감정도 진화의 산물이므로 정신질환까지 서로 공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은이들은 수의학·인간의학·진화의학이 서로 융복합하고 상호 협력하는 ‘원헬스(One Health)’ 시스템으로 인간의 건강 문제를 더욱 합리적으로 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과 본질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진화인문학적인 길이기도 하다. 지은이들은 고대 그리스어의 ‘동물(Zo)’과 라틴어의 ‘모든 곳(Ubique)’을 합쳐 만든 신조어 ‘주비퀴티(Zoobiquity)’로 이런 개념을 표현한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이기도 하다. ‘의사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만 치료할 수 있는 수의사’라는 농담의 숨은 의미가 느껴진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 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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