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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의 퍼스펙티브] 포스코의 생산성 동맹이 진짜 노조다

중앙일보 2017.07.20 01:00 종합 23면 지면보기
포스코 스타일 
영일만에 여름 해가 떠올랐다. 해무가 걷히자 근육질의 포항제철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로 내닫는 산맥처럼 보였다. 밤새 시뻘건 쇳물을 토해 낸 제철소는 굉음 속에 잠겨 있다. 쇳물이 슬래브(쇠판)로, 쇠판이 압연 코일과 고강도 첨단 강판으로 빠르게 변신하는 가치 증식의 소리였다. 제철의 출발은 고로(高爐)다. 오전 6시, 10층 높이 제철공장에 들어서자 육중한 고로가 필자를 맞았다. 높이 100m, 폭 30여m의 고로는 불덩어리 화로다.
 

경기 나빠지자 임금 동결 수용
임금 1% 할애해 사회봉사활동
노조 대신 노경협의회 통해
세계 최고의 생산성 달성

독일·스웨덴의 생산성 동맹같이
노동자 헌신에 최고의 대우 보답
자동차노조는 경영 악화에도
임금 인상 요구하며 파업 나서

고로는 1년 365일 불을 품어야 한다는 게 제철소 화공의 신념이다. 고로 옆구리 창에 선홍색 불꽃이 이글거렸다. 실내 온도는 40도 내외, 금세 땀이 맺혀 볼을 타고 흘렀다. 공장 밑바닥엔 두 줄기 깊은 고랑이 있는데 하나는 철광석이 녹아 흐르는 쇳물 천(川), 다른 곳은 탄재와 불순물이 흐르는 슬래그(찌꺼기) 천이다. 쇳물은 특수 용기를 탑재한 기차로 제강공장에 운반된다. 그곳에서 비로소 다양한 철강제품 생산공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밤새 방열복을 입고 작업한 고로반장에게 필자가 물었다. 고로가 서면 어떻게 되느냐고. 답은 간단명료했다. “대한민국이 서지요.”
 
입사 28년차, 그 긴 세월 고로와 함께 보낸 초로(初老)의 고로반장이 말했다. “고로가 어머니처럼 느껴져요. 흙덩이를 태워 저 귀중한 것을 주니까요.”
 
포항제철소에 열병한 5개의 고로는 결코 동작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공장을 나서자 초복 땡볕이 오히려 선선했다.
 
포스코와 현대자동차

포스코와 현대자동차

칭기즈칸 속도전
 
춘천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6월 ‘사회적 총파업’을 촉구하는 옥중서신을 보냈다. 친노동정책을 하루속히 실행하라는 계고장이었다. 재벌기업·기득권집단·반노동세력이 코너에 몰린 지금 한시라도 머뭇거릴 수 없다고 일갈하곤 결기에 찬 명령을 하달했다. ‘칭기즈칸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라’. 6월 30일 민주노총 대원 6만 명이 서울 광화문에 집결했다. 화물연대·건설노조가 행군했고 급식·청소·경비노동자가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다. 귀담아들을 내용이었는데 정작 민주노총 주력 부대는 등장하지 않았다. 현대차와 한국GM 노조는 ‘더 많은 임금, 더 긴 고용, 더 짧은 노동’을 위해 칭기즈칸 돌파력으로 밀어붙이는 중이다.
 
세계 노동사에 없는 전투 노조
 
한국 제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노동자의 헌신과 몰입이 주효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제조업 선두 주자인 자동차·조선·철강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미 그만큼의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중산층 진입 신고를 마친 지 오래다. 그런데 그게 협력사와 하청기업의 궁핍을 딛고 챙긴 독점 이익이라는 것이 문제다.
 
울산 현대차는 지난 14일 조합원 투표로 파업을 가결했다. 한국GM은 지난 7일 이미 파업을 가결해 투쟁 열기를 고취하고 있다. 중국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보복으로 현대차는 판매의 40%가 증발됐다. 지난 3년간 2조원 적자, 내수 판매가 16% 줄어든 한국GM 노조는 꾸준히 나도는 철수설에도 불구하고 고임금과 노동시간 축소를 향해 진군한다.
 
귀족노조·강성노조라고 손가락질하는 세간의 비난에 노조원은 이미 신경을 껐다. 경제환경이 열악할수록 노조의 투쟁 열기는 한곳에 수렴된다. ‘돈은 더 많이, 고용은 더 길게, 일은 더 적게’다. ‘대마불사’가 머리에 박혔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은 대마(大馬)도 즉사(卽死)시킬 만큼 냉혹하다.
 
풍요와 빈곤이 병존하는 양극화구조는 노동운동의 독(毒)이다.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화력(火力)인 연대(solidarity)를 저해한다. 대공장 노조는 독점 이익을 향해 기꺼이 독주(獨走)를 선택했다. ‘전투적 이기주의’가 탄생한 요인은 세 가지다. 수만 명이 운집한 거대 규모, 기능 차이가 적은 동질적 노동, 담장 밖 사회상황과 노동 사정을 외면한 도덕적 타락.
 
그런데 이런 노조가 세계 노동사에 존재했던가? 단언컨대 유럽 노동사에는 없다. 반면 절대 풍요와 빈곤이 뒤섞인 대륙, 남미에는 흔하다. 남미 경제가 설령 성장을 구가해도 비인간적 결과를 낳는 이유다. 자동차·조선·철강산업에 군림하는 한국의 강성노조는 남미형 변종이다. 원래 상승 산업과 노조의 만남은 ‘타협주의’를 낳는다. 경쟁력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노조는 적정 이익을 취한다. 한국의 노조에 경쟁력이란 단어는 없다. 최대 이익을 향한 돌격! 경쟁력은 경영자의 몫이다. 제조업 성장엔진은 이미 부식이 심각한 상태다.
 
나, 철의 노동자
 
권투로 치면 자동차공장은 경량급이다.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뽑아내고 1000t에 달하는 롤러로 시뻘건 쇠판을 압착해 압연 강판을 만드는 제철소는 헤비급이다. 근육질 공장의 철의 노동자다. 특수 군대처럼 푸른 제복에 전투화와 철모를 착용했다. 작업현장에 들어서는 공장장이 ‘안전’이라 외치면 부하 직원들은 엄지 척과 함께 ‘제일’을 복창한다. ‘안전 제일’인데, 그게 ‘세계 제일!’로 들린다. 포항제철과 광양제철 노동자 급여는 현대차 조립공보다 1000만원가량 적다. 포스코 직원들은 급여가 적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본을 앞질렀다는 자부심이 증기와 화기로 가득 찬 작업현장을 즐겁게 만든다. 일본의 식민 보상비용으로 건설된 공장이라는 역사적 자각이 포스코 직원들의 가슴에 공공의식을 심었다. 그래서인지 노조보다 더 나은 노조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노경협의회’다. 주인 없는 기업, 아니 진짜 주인인 국민을 대리한 경영진과 사원 간 임단협 협의체가 노경협의회다. 사민주의 국가에서 보는 진짜 노조다.
 
노조보다 나은 노경협의회
 
노경협의회 대의원인 김부일(가명·30년차 현장직)씨는 이렇게 말한다. “노조는 공장을 세울 위험이 있어요. 롤러에 놓인 철이 식으면 고철이 될 뿐이죠. 나는 고로의 불꽃을 지키고 생산설비가 힘을 내도록 신경을 씁니다”고. 대의원은 바쁘다. 매일 현장 노동자에게서 올라오는 민원을 처리하고 결과를 정보시스템으로 알려 준다. 현장에서 임금 인상률을 제안받아 적정안을 조율하고 노동조건 개선 일람표를 작성한다. 노경협의회 대의원은 현장직 2000명당 한 명꼴로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포항·광양제철소 합쳐 총 10명의 대의원이 활약 중이다. 파업할 겨를이 없다. 보은의식(恩)과 공공의식(公)으로 무장한 ‘신형 조직’이다.
 
왜 불만이 없겠는가? 인근에 위치한 현대제철소보다 급여가 적은데 왜 민원이 없겠는가? 설비 정비를 담당하는 서울 명문대 출신 젊은 관리직 사원이 말했다. “우리는 한국을 지키는 파수꾼이지요. 연봉 1000만원 적다고 불평할 상황이 아닙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관리직과 현장직이 만나 숙의한다. 노경협의회 네트워크가 관리직에서 작업현장까지 조밀하게 쳐져 있다. 파트-부서-공장-전사(全社) 순으로 매주 협의회가 개최되고 파트 간 횡적 협의회도 수시로 열린다. 임단협 쟁점을 포함해 안전 캠페인, 낭비요소 발굴, 기술 개선, 작업환경과 근무태도에 관해 폭넓게 숙의하고 정보시스템을 통해 결과를 공유한다. 올해 노경협의회는 ‘3UP 운동’을 전개했다. 의식 개혁(mind-up), 제도 개혁(system-up), 경쟁력 개혁(power-up)이 그것이다. 모두 나섰다. 결과는 영업이익률 세계 최고 달성. 경제잡지 포브스는 7월호에서 포스코 경쟁력을 아르셀로미탈 다음인 세계 2위로 평가했다. 올해 대학 졸업생이 가고 싶은 기업 1위에 등극했다. 알고 보면 철의 노동자들은 사내외 정보로 무장한 지식 노동자, 신분 차별 없이 종횡으로 의견을 나누는 숙의 노동자다. 야간 근무 현장직이 같은 또래 대졸 관리직보다 임금이 높다.
 
생산성 동맹, 포스코
 
독일과 스웨덴 공장에는 ‘생산성 동맹’이란 것이 있다. 경쟁력과 사회의식 공유로 똘똘 뭉친 작업팀을 일컫는데 노조가 주축이다. 노동자의 ‘최선의 헌신’에 경영진은 ‘최고의 대우’로 답한다. 작업현장에서 일어나는 ‘교환의 정치’다. 그 유명한 연대임금 정책도 여기서 탄생했다. 고임금을 양보해 기업 고용 능력을 높이고 공공 복지를 늘린다. 고용 창출과 복지가 선순환하는 구조다. 경영 실적이 좋지 않았던 2년간 포스코 임원은 임금을 자진 삭감했고 노경협의회는 임금 동결을 받아들였다. 임금 1%를 할애한 나눔재단 사회봉사활동을 오히려 확대했다. 포항시와 광양시는 물론 인근 농촌 지역까지 ‘철의 노동자’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전사 임직원이 매월 셋째 주 토요일을 비워 마을 봉사에 나선다. 봉사단 방문 날은 마을 축제일이다. 현장직 직원 박인해(20년 차·선재공장)씨는 약간의 중독성이 있다고 웃는다. 기업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기업 시민’의 전형이자 공장과 지역사회가 결합한 사회적 노동운동이다. 사민주의 노조가 그렇게 발원했다. 필자의 질문에 그는 서슴없이 답했다. “노조보다 나은걸요!”
 
사각지대가 있다
 
이 신형 조직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거는 것은 무리지만 중대한 쟁점이 남아 있다. 포항과 광양을 합친 협력사 직원 1만5000명은 ‘고임금과 고복지’ 바깥에 있으며, 노경협의회 대상이 아니다. 포스코 패밀리(Posco Family)라는 구호가 무색하다. 다른 대공장의 협력업체와 비교하면 인간적 대접을 받기는 하지만 한국 제조업을 관통하는 불평등구조에서 예외가 아니다. “협력업체 사원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는 노경협의회 대의원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최근 민주노총이 3개의 협력업체에 교두보를 구축했다. ‘제철소를 공략하라’. 민주노총의 올해 전략 목표다. 신형 조직과 구형 노조의 접전은 이제 시작됐다. 고로 불꽃을 누가 지켜 낼 것인가? 한국 제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후기: 포스코에도 정식 노동조합이 있다. 노조원은 10명. 1989년 노조 결성을 주도했던 모(某) 위원장은 몇 년 전 세상을 떴다. 
 
송호근 본지 칼럼니스트·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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