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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2) “두껍아 두껍아 너 때문에 식겁했다~”

중앙일보 2017.07.14 12:00
퇴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이 없는 도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이러다 죽는 날 아침에 “뭐 이렇게 빨라, 인생이?” 할 것 같았다. 경남 거창 보해산 자락, 친구가 마련해준 거처에 ‘포월침두’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평생 처음 겪는 혼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달을 품고(抱月) 북두칠성을 베고 자는(枕斗) 목가적 생활을 꿈꿨지만 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도시의 취향과 입맛으로 인해 생활은 불편하고 먹거리는 가난했다. 몸을 쓰고, 글을 쓰자. 평생 머리만 쓰고 물건 파는 글을 썼으니 적게 먹어 맑은 정신으로 쓰고 싶은 글, 몸으로 쓰는 글을 쓰자, 했다. 올 3월의 일이다. <편집자>
  
 
소머리를 닮았다는 거창의 우두산 바위. 그러나 어찌 보면 두꺼비 형상 같기도 하다. [사진 조민호]

소머리를 닮았다는 거창의 우두산 바위. 그러나 어찌 보면 두꺼비 형상 같기도 하다. [사진 조민호]

 
도시에서는 문을 열어 놓으면 안 된다고 배웠다. 모르는 사람이 벨을 누르면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설령 문을 열어 두어도 별일 안 생긴다. 모르는 사람이 벨을 누르는 일은 택배 아저씨가 올 때밖에 없다.
 
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 隨風潛入夜  潤物細無聲

좋은 비 때를 아니 봄이 되자 내리네  
밤새 바람결에 흩날리며 소리 없이 내 마음 적신다
 
두보(杜甫)가 시골로 거처를 옮겨 직접 밭을 갈고 씨를 뿌려 놓았는데, 때맞춰 내리는 봄비가 고맙고 흥에 겨워 읊었다는, 春夜喜雨다. 봄비 내리는 밤, 거창으로 삶을 옮기고 내리는 봄비에 홀로 흥에 겨워 있을 두보 같은 친구를 위해 서울에 있는 친구가 보내준 시다.
 
오랜만의 빗소리를 듣고 싶어 방문을 열어두었다.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로 내리는 봄비라니, 정말 잘 내려왔다 했다. 도시에서 어디 감히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했다. 난 참 복이 많다 했다. 좋은 소리도 오래 들으니 감흥이 옅어지고, 해발 400m는 문을 열어두고 침두하기에는 아직 추워서 문을 닫으려는 그 때!!!!!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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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c8hufuqkewfhkalhfdusf 이거 뭐야hcgvyftkgkkuuyudttdfuck”
 
공황기 주먹만한 시꺼먼 두꺼비가 방 안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내 놀라는 소리에 나보다 더 놀란 두꺼비가 펄쩍펄쩍,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공황기는 덩치가 내 두 배쯤 되는 친구다. 두꺼비는 개구리와 달리 원래는 펄쩍펄쩍 뛰지 못한다.
 
도시와는 달리 시골에서는 무심코 한 어떤 행동으로 인한 어떤 일이 생긴다. 반드시. 문을 열어두면 무엇이든 집안으로 들어오고, ㅠ. 열매 한 알을 따면 가시 하나가 몸속으로 들어온다. 반드시. ㅠㅠ.
 
소머리를 닮았다는 거창의 우두산, 아무리 봐도 소대가리는 없고 봄비 내리던 날 펄쩍펄쩍 뛰다가 다행히 도망갈 길을 찾아내고 뒤뚱뒤뚱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 그 두꺼비를 닮은 바위를 찾아 찍었다. 내 눈에는 우두산 바위들이 다~ 두꺼비 처럼 보였다.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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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필진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 퇴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이 없는 도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이러다 죽는 날 아침에 “뭐 이렇게 빨라, 인생이?” 할 것 같았다. 경남 거창 보해산 자락, 친구가 마련해준 거처에 ‘포월침두’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평생 처음 겪는 혼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달을 품고(抱月) 북두칠성을 베고 자는(枕斗) 목가적 생활을 꿈꿨지만 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도시의 취향과 입맛으로 인해 생활은 불편하고 먹거리는 가난했다. 몸을 쓰고, 글을 쓰자. 평생 머리만 쓰고 물건 파는 글을 썼으니 적게 먹어 맑은 정신으로 쓰고 싶은 글, 몸으로 쓰는 글을 쓰자, 했다. 올 3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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