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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좋아 한국 왔대요, 네덜란드 빙속 전설 ‘밥데용’

중앙일보 2017.07.12 01:00 경제 10면 지면보기
대표팀 선수들이 선물한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보프 더 용 코치. 젓가락을 들고 쌀밥을 맛있게 먹었다. 티셔츠 앞면에는 한글로 ‘스피드 스케이팅’, 뒷면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밥데용(더 용 코치의 한국식 발음·아래 사진)’ 이란 문구가 눈에 띈다. [최정동 기자]

대표팀 선수들이 선물한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보프 더 용 코치. 젓가락을 들고 쌀밥을 맛있게 먹었다. 티셔츠 앞면에는 한글로 ‘스피드 스케이팅’, 뒷면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밥데용(더 용 코치의 한국식 발음·아래 사진)’ 이란 문구가 눈에 띈다. [최정동 기자]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만m 경기가 열린 2010년 2월 24일, 이승훈(29·대한항공)은 경기장인 리치먼드 오벌의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었다. 그런데 남의 옷이라도 입은 것처럼 엉거주춤했다. 장거리 최강자 스벤 크라머(31·네덜란드)가 코스 착각으로 실격하는 바람에, 두 번째로 빨랐던 이승훈에게 금메달이 돌아갔다. 그게 좀 민망했다.
 
시상대 옆자리의 동메달리스트 보프 더 용(41·네덜란드)이 이승훈에게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는 은메달을 딴 이반 스콥레프(러시아)와 함께 이승훈의 다리를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네덜란드 팀 동료가 실격했지만, 더 용은 개의치 않고 이승훈을 축하해줬다. 그제야 이승훈도 환하게 웃었다.
 
대표팀 선수들이 선물한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보프 더 용 코치. 젓가락을 들고 쌀밥을 맛있게 먹었다. 티셔츠 앞면에는 한글로 ‘스피드 스케이팅(사진 위)’, 뒷면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밥데용(더 용 코치의 한국식 발음)’ 이란 문구가 눈에 띈다. [최정동 기자]

대표팀 선수들이 선물한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보프 더 용 코치. 젓가락을 들고 쌀밥을 맛있게 먹었다. 티셔츠 앞면에는 한글로 ‘스피드 스케이팅(사진 위)’, 뒷면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밥데용(더 용 코치의 한국식 발음)’ 이란 문구가 눈에 띈다. [최정동 기자]

더 용이 지난 5월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 코치로 부임했다. 태릉 선수촌에서 선수들과 함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최근 만났다. 취재기자를 보자마자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한국에 온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는 문화가 제일 신기하다”며 웃었다.
 
더 용은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에서 금메달 1개(2006년), 은메달 1개(1998년), 동메달 2개(2010, 14년)를 목에 걸었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금메달만 7개(1만m 5개, 5000m 2개)를 딴 ‘빙속 장거리의 전설’이다. 빙상 강국 네덜란드에서 오랜 기간 정상을 지켜 지도자로서도 큰 기대를 모았다. 그는 지난해까지 캐나다·영국에서 선수를 겸한 플레잉코치로 활약했다.
 
2010 밴쿠버 올림픽 당시 시상대에서 이승훈을 번쩍 들어올린 현역 시절의 더 용(오른쪽). [사진 밴쿠버 올림픽 공식 유튜브]

2010 밴쿠버 올림픽 당시 시상대에서 이승훈을 번쩍 들어올린 현역 시절의 더 용(오른쪽). [사진 밴쿠버 올림픽 공식 유튜브]

그런 더 용은 왜 한국을 선택했을까. 그는 “어디서 지도자 생활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코치직 제안 이메일을 보내왔다. 한국이 밴쿠버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3개나 따는 걸 보며 관심이 생겼다.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판단했고, 직접 실력을 보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아시아 문화권에서 생활하는 게 처음이라 걱정이 됐다. 그런 더 용 코치를 북돋워준 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에 올려놓은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이었다. 더 용 코치는 “히딩크 감독이 ‘너도 나처럼 마음을 열고 일을 한다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줬다. 그 전화를 끊자마자 한국행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더 용 코치는 빨리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는 “선수들 얼굴과 이름이 계속 헷갈려서 휴대폰에 사진을 저장해놓고 외운다. 한글을 배울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을 깔아 틈틈이 공부도 한다. 훈련이 없는 주말에는 광화문·경복궁 등 한국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에 찾아간다”고 소개했다. 그의 휴대폰 배경화면은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이었다.
 
한국음식에는 적응했다. 더 용 코치는 “한국에서는 나를 ‘밥데용’이라고 부르던데, 한국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밥’이 영어로 ‘라이스(rice)’라고 하더라. 실제로 밥을 참 좋아한다”며 웃었다. 미리 준비해간 쌀밥을 선물했더니 바로 열어 맛을 보고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젓가락질도 능숙했다.
 
빙판을 가르는 더 용. [사진 대한빙상경기연맹]

빙판을 가르는 더 용. [사진 대한빙상경기연맹]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주제를 훈련으로 바꾸자 더 용 코치가 진지해졌다. 그는 “한국 선수들은 하체를 활용한 폭발적인 스퍼트가 장점이다. 장점을 더욱 살리기 위해 허벅지 근육 단련 프로그램을 짜 훈련하고 있다”며 “다만 선수들이 훈련할 때 많이 굳어있다. 힘들거나 아파도 내색하지 않는 게 안타깝다. 조금만 더 자유롭고 즐겁게 훈련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 용 코치가 가장 인상깊게 본 선수는 모태범(28·대한항공)이다. 밴쿠버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깜짝’ 금메달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모태범은 이후 국제 무대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더 용 코치는 “모태범의 다부진 몸을 보며 ‘훈련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다. 평창에서 주목해야 할 선수”라고 평가했다.
 
더 용 코치는 평창올림픽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휴대폰 뒷번호도 평창 올림픽이 열리는 ‘2018’이다. 그는 “평창에서 적어도 금메달 3개는 따겠다. 이승훈·이상화(28·스포츠토토)·김보름(24·강원도청) 등 금메달 후보가 여럿 있다”고 말했다. 만약 한국선수와 네덜란드선수가 겨룬다면 그는 누굴 응원할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한국이다. 내 심장은 네덜란드에서 왔지만, 평창에서 입을 유니폼에 태극마크가 있으니 나는 한국 대표팀 것”이라고 대답했다. 
 
보프 더 용(Bob de Jong) 코치는 …
 
국적 : 네덜란드
출생 : 1976년 11월 13일(만 41세)

종목 : 스피드 스케이팅 5000m, 1만m

수상 : 1998 나가노 올림픽 1만m 은

2006 토리노 올림픽 1만m 금

2010 밴쿠버 올림픽 1만m 동

2014 소치 올림픽 1만m 동

취미 : 사이클

별명 : 밥데용 또는 박대영

(팬들이 이름을 한국식 발음으로 부른 것)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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