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대 범죄수익 환수율…검찰 ‘특급작전’ 통할까, 민사몰수제 '만지작'

중앙일보 2017.07.11 11:23
지난해 법원 판결로 확정된 범죄 추징금은 3조1318억원이다. 범죄자로부터  되찾아야 할 이 돈 중 환수된 금액은 841억원. 환수율 2.68%다. 
 

3조원대 범죄수익 중 환수는 800억원뿐
범죄수익 물건 상대로 한 소송 제도 필요
검찰, "2%대 환수율 높여 범죄 피해 회복"
제3자 재산권 침해 논란 생길 우려도

이처럼 저조한 '실적'을 낸 이유는 범죄자들이 숨긴 재산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제3자 명의로 ‘세탁’을 하거나, 해외로 빼돌린 범죄수익을 외국 사법기관이 환수하더라도 국내 법원에서 횡령·배임 확정 판결이 나지 않으면 돌려받기 어렵다.
 
이에 검찰이 범죄수익 환수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봉욱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은 최근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외국 사례를 검토해 법률의 미비점을 보완하라”고 지시했다. 대검 반부패부와 국제협력단이 제도 연구를 맡았다.
 
유력한 대안 중 하나가 민사몰수제다. 민사몰수제는 불법으로 취득하거나 불린 재산을 소송 대상으로 지정해 몰수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범죄수익을 몰수한다는 점에서 형사몰수와 같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되돌려 주는 점과 소유자가 아닌 범죄수익 물건에 대해 몰수 소송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소유자가 바뀌어도 몰수할 수 있다.  
 
문화재 환수로 확인한 ‘민사몰수제’의 위력
미국으로부터 환수한 문정왕후·현종 어보 [중앙포토]

미국으로부터 환수한 문정왕후·현종 어보 [중앙포토]

검찰이 민사몰수제에 주목하게 된 건 외국으로 반출된 문화재 환수 과정에서 효과를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조선시대 왕실 인장 2점(현종어보·문정왕후 어보)을 돌려 받았다. 
 
이 어보는 한국전쟁 때 미군이 가져간 것으로 2013년에 미국 LA카운티 등에서 소재가 확인됐다.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를 4년 만에 되찾은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2010년 프랑스로부터 장기 임대 형식으로 돌려받은 외규장각 도서는 소재를 확인한 때부터 반환이 이뤄지기까지 32년이나 걸렸다. 
 
비결은 미국의 범죄수익 환수제도 중 하나인 민사몰수에 있었다.
 
문화재청으로부터 정보를 받은 대검찰청은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에 수사 공조를 요청해 법적 환수절차에 들어갔다. 
 
미 수사 당국이 관할 지방법원으로부터 해당 어보의 몰수 선고를 받아냄으로써 환수 절차가 빠르게 진행됐다. 
 
검찰은 2013~2014년 호조태환권 인쇄 원판과 대한제국 국새 등 왕실 인장 9점을 미국의 민·형사상 몰수제도를 활용해 소재 파악 3년 내에 반환받은 경험이 있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피해자 권리 보호' 새 정부 검찰상에도 부합
검찰이 민사몰수제를 주목하는 이유는 또 있다. 검찰이 피해자 권리 보호에 앞장서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벌여 손해배상을 받는 수밖에 없다. 민사몰수제를 활용하면 검찰 등 정부 기관이 나서 숨겨 둔 범죄수익을 되찾아줄 수 있다.
 
가해자가 죽거나 재산을 빼돌리면 되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민사몰수제는 범죄수익이란 점이 확인되면 언제든 몰수할 수 있다. 
 
최근 검찰이 ‘인권 옹호기관’으로 변화를 꾀하는 것과 맥이 닿는다. 검찰은 지난 3월 금융다단계 사기범 곽모씨가 미국에 빼돌린 범죄수익 9억7500만원을 되찾아 피해자 691명에게 나눠준 적이 있다.
검찰은 민사몰수제가 도입되면 대형 금융사기범죄의 피해자 구제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앙포토]

검찰은 민사몰수제가 도입되면 대형 금융사기범죄의 피해자 구제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앙포토]

 
미국 수사당국이 곽씨의 부인 명의로 된 빌라를 찾아 몰수했지만 이를 한국 정부가 돌려받을 근거가 마땅치 않자 검찰은 피해자들의 법률 대리인 형식으로 미국법에 따라 몰수 재산을 돌려받는 우회적인 방법을 썼다. 
 
대검 관계자는 “만약 국내에 민사몰수제가 있었다면 해당 재산을 국가가 몰수한 뒤 피해자들에게 나눠주는 절차가 더 빠르고 간편하게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다단계금융사기범 조희팔이 중국에 숨겨둔 자금 2억8000여 만원을 찾아내 중국 공안당국과 범죄수익금 환수를 위한 협의를 벌이고 있다. 
 
피해액 2900억원 중 검찰이 확보한 금액은 추징금을 포함해 40억원에 불과하다. 조희팔 피해자 모임인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관계자는 "국내에도 조희팔의 범죄 자금이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부동산이 여러 개 있지만 소유권이 변동돼 민사소송으로는 환수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범죄수익 뿌리뽑아야" vs "재산권 침해 가능성"
현직 검찰 간부가 민사몰수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한 논문을 내기도 했다. 
권순철 대검 국제협력단장은 지난달 발행된 『형사법의 신동향』55호에 실린 ‘해외유출 범죄피해 재산의 피해자 환부사례 연구’ 논문에서다.
 
그는 미국의 민사몰수제도를 벤치마킹하자고 제안했다. 권 단장은 “금융사기 범죄는 피해 규모가 커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지만 개인이 해결해야 할 민사의 영역으로 취급받아 국가가 피해 보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제도 도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무르익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유병언·최순실 일가 등 관련자들의 범죄수익 재산 환수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이를 위해 민사몰수제 도입을 포함한 여러 개의 법안이 국회에도 제출돼 있다.
 
그러나 제3자의 재산권 침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걸림돌이다. 미국의 경우 범죄수익이라는 사실을 모른채 소유권을 갖게 된 제3자는 원래 거래 상대와 소송을 벌여야 한다.
 
IB법률사무소 김용욱 변호사는 "민사몰수제가 시행되면 금융범죄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면에서 효과가 클 것"이라면서도 "시행 초기에 재산권 침해에 대한 헌법소원 등 혼란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근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부회장은 여러 토론회에서 “민사몰수 제도는 유엔 부패기구와 유럽연합 등이 권고하는 범죄수익 환수제도의 세계적 추세”라며 “제도를 도입해 효율적이고 적극적으로 범죄수익을 몰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도 “재산 범죄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재산이나 이익의 획득’인데 사람에 대한 처벌만으로는 범죄의 목적 자체를 충분히 제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