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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1억 받던 51세, 실직 후 아둥바둥해도...2년 뒤 월180만원 보수 그쳐

중앙일보 2017.07.11 10:42

이훈서(51·가명)씨는 2014년 1월 14년간 다니던 증권사에서 구조조정의 찬바람을 맞았다. 연봉이 많을 때는 1억3000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를 떠날 땐 집 한 채뿐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투자에 실패하며 금융자산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실직한 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월 300만원 받다 구조조정되면 4년 지나도 243만원...18.7% 뚝
실직해도 생활비는 계속 늘어...결국 빚을 내 생활하며 부채는 쑥
재취업 시기가 명암 갈라...곧바로 취업하면 전 직장 임금 추월
재취업 늦어지면 실직과 취업 반복....10명 중 7명이 반복 실직
전문가 "실업대책 방점을 취업알선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둬야"

 
실직하던 해엔 구조조정에 따른 위로금 조로 전 회사가 보전해준 돈으로 버텼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5년부터 지난해 하반기까지 2년 동안은 소득이 거의 없었다. 자전거 대리점에서 3개월 정도 일하고 받은 월 180만원이 전부였다. 생활비를 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두 아이의 교육비로만 월 200만원 가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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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수가 없자 이씨는 아파트를 줄여 이사했다. 그래도 생활비 감당이 안 됐다. 결국 빚을 냈다. 현재 그의 빚은 3000만원 정도다. 지난해 말부터 그는 보험설계 교육을 받고 올해 2월 설계사로 취업했다. 아직 초보라 월수입은 200만원 정도다. "직전 직장에서 받던 수준으로 소득을 올리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씨처럼 직장을 떠난 회사원이 예전 직장 수준으로 소득을 회복하는데 얼마나 걸릴까. 거의 불가능했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실직한 근로자는 빚이 급속하게 늘어나 가계부실로 빈곤상황에 빠질 위험에 노출됐다.
 
다만 재취업 시점이 빠를수록 실직 전의 임금을 빠르게 회복하고, 능가하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정부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재취업 시점을 앞당기는 게 '실직-가계부실-빈곤'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란 지적이다.
 
이지은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이 실직자의 소득과 지출, 부채변화 등을 연구한 결과다. 1999년부터 2015년까지의 17년치 노동패널 자료를 분석했다.
 
분석기간 동안 20세 이상 60세 미만 근로자 가운데 매년 10명 중 두 명 꼴로 실직을 경험했다. 실직자 10명 중 7명은 실직을 반복했다. 2015년의 경우 실직 경험이 있는 사람 가운데 68%가 두 번 이상 반복해서 직장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실직은 곧바로 임금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어졌다. 명목소득을 기준으로 계산한 실질 월평균임금이 실직 첫 해 자발적 실직자는 34%, 비자발적 실직자는 53%나 줄었다. 이듬해엔 각각 21.4%, 26.4% 줄고, 4년 뒤엔 9.1%, 18.9% 줄어 시간이 흐르면서 다소 회복됐다. 실직 전 직장에서 월 300만원 받던 근로자라면 구조조정 파고에 휩쓸려 회사를 떠날 경우 1년 뒤 220만8000원, 4년 지나도 243만3000원을 수령하는데 그친다는 얘기다. 예전 임금을 회복하기엔 역부족이다.
 
 
 
수중에 돈이 줄면 생활비를 감축하게 마련이다. 한데 그 반대였다. 실직한 뒤에도 매년 생활비가 늘었다. 비자발적 실직자도 첫 해에만 3% 줄일 뿐이었다. 이러다 보니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빚을 내는 경향이 뚜렷했다. 실직과 동시에 부채가 100만원 가량 늘었다, 이후에도 부채는 계속 늘어 비자발적 이직자의 경우 실직 1년 전 1132만원에서 3년 뒤 1438만원으로 27%나 불었다.
 
 
 
이처럼 가계부실이 지속되면 가족 중 다른 사람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전체 가계소득을 떠받히기 마련이다. 김찬수(58)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건설 설비 분야에서 30년 넘는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2011년 건설회사를 나왔다. 그나마 자격증이 있어 소형 빌라나 오피스텔 건설현장 소장으로 일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나 간헐적 일자리여서 실직과 퇴직을 반복하고 있다. 일할 때는 월 300만원 정도 들어오지만 쉴 때는 한 푼도 없다. 지난해엔 7개월 가량 놀기도 했다. 결국 부인이 놀이공원 식당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부인의 월급은 120만원 정도다. 그나마 이 돈이 있어서 예전의 가계소득을 충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실직이 꼭 나쁜 쪽으로만 흐르는 건 아니다. 준비된 사람에겐 반전의 기회가 됐다. 재취업 시기에서 명암이 갈렸다. 실직한 그 해에 취업해서 계속 그 직장에 다닌 사람은 실업 1년 전 175만원에서 4년 후 202만원으로 15.4%나 임금이 뛰었다. 1년 후에 재취업한 경우도 재취업할 시점에만 약간 감소하고 다음해부터 바로 회복해 실직 전보다 늘어났다. 
 
그러나 취업하지 못하거나 취업과 실업을 반복한 사람은 실직과 동시에 63.5%나 임금이 떨어진 뒤 회복하지 못하고 그 상태를 유지했다. 실직한 그 해에 재취업한 사람은 자발적 실직자가 80.9%, 비자발적 실직자는 19.1% 불과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발적 실직자가 재빨리 재취업에 성공하는 것은 그만큼 준비돼 있기 때문"이라며 "갈수록 능력에 따라 대접받는 시대가 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따라서 구조조정과 같은 돌발적인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헤쳐가려면 회사원도 제2 인생을 위한 자기계발에 신경을 써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지은 전문위원은 "개인의 실직은 단기적인 임금손실의 문제가 아니라 상당기간 지속되며 가계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며 "재취업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 실직자 가정을 지탱할 수 있는 대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장원석 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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